둥지냉면
우리 부모님에게 드디어 집이 생겼다. 아버지 69세. 어머니 67세. 70세가 다 되어서야 처음으로 부모님 명의로 된 집을 갖게 되셨다. 오랫동안 내가 가장 바랐던 소망이 이루어져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우리 부모님도 드디어 집이 생겼다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불쑥 든다. 몇 년 전 처음 내 집이 생겼을 때처럼 마음이 설레어 잠이 오지 않는다. 행복이 철철 넘쳐 자꾸 웃음만 난다.
부모님의 첫 집이지만 지어진 지 15년 된 아파트이기에 약간의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부모님의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위해 나는 말 그대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집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가구 고르기, 에어컨 고르기, 보일러 고르기, 조명 고르기, 커튼 고르기, 이사업체 선정, 도배업체 선정, 욕실 공사 업체 선정, 입주청소 선정...고르고 선정하고 설치해야 할 일들이 파도처럼 몰려왔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엄마를 설득하여 짐을 줄여나가야 했다. 이사 전과 이사 후 아빠와 의기투합하여 엄마 몰래 버린 물건과 가구가 족히 1톤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엄마는 없어진 물건들을 지금까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모든 일이 끝났다. 부모님은 천안에서 수원으로 무사히 이사를 하셨고 헌 집이 새 집으로 변한 광경을 보시고 놀라워 하셨다. 엄마와 아빠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시며 ‘집 참 넓고 좋다.’ 말하시니 눈물이 났다. 이제 더 이상 이사하지 않으셔도 되니 부모님만의 따뜻한 둥지에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부모님이 이사를 하신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둥지냉면을 보니 괜히 마음이 울컥한다. ‘둥지’ 가 이렇게도 따뜻하고 아늑한 단어였다니. 2008년 농심에서 나온 둥지냉면은 일반 상온에서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개발한 제품이다. 왜 둥지냉면인가 하면 면발이 새둥지처럼 동그랗게 말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농심이 야심차게 개발한 네스팅(Nesting) 공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네스팅 공법이란 갓 뽑은 면에 뜨거운 바람을 쐬어 새 둥지 모양으로 건면을 만드는 기술이다.
푸른 색 바탕에 둥지 냉면 동치미물냉면이라는 글자가 반듯하게 적혀 있다. 뒷면을 보니 ‘국산 배와 국산 무를 넣어 더 시원한 동치미 육수’라고 설명을 달아놓았다. 동해 바다색을 띈 대접에는 냉면이 수북히 담겨져 있고 그 위에 소고기, 오이, 달걀지단이 사붓이 올라가 있다. 살얼음이 낀 육수와 말린 무가 둥둥 떠 있는 냉면 사진은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실제로는 그림처럼 맛있지는 않겠지만.
면을 끓여보자. 끓는 물에 면과 고명을 넣은 후 3분간 끓인다. 말린 무와 말린 오이가 들어 있는데 오이는 말린 단호박처럼 생겼다. 설명에 따르면 육수를 건면이 담긴 플라스틱 사각 통에 붓고 찬물 260ml를 넣어 섞으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유리 계량컵에 육수를 붓고 대충 찬물을 섞은 후 냉동실에 잠시 두기로 한다. 영양정보를 보니 당류가 21g이 들어있다. 각설탕 7개 분량이다. 다른 라면에 비해 당류가 훨씬 많은데 살펴보니 육수에 액상과당이 잔뜩 포함되어 그렇다. 국물 맛을 추측할 수 있겠군요.
면이 다 끓었다. 삶은 면은 찬물에 바락바락 씻어 헹궈야 한다. 면 표면에 있는 전분의 미끌미끌함을 완전히 제거해야 끈적거리지 않는 쫄깃쫄깃한 면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면기에 면을 넣고 냉동실에 있던 육수를 꺼내 붓는다. 호로록. 면발을 한 입 먹어본다. 쫄깃 쫄깃하다. 국물을 한 입 먹어본다. 달달하면서 짭짤하다. 고깃집에서 나오는 후식 냉면의 맛과 별 차이가 없다. 육수가 살짝 언 얼음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하면. 둥지 냉면아, 맛도 좋긴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100점을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