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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갈빵과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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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와 모과
Jan 1. 2024
“코요타스 만들어 줄게.”
“뭐? 코요테? 그게 뭔데.”
“멕시코 공갈빵이래.”
“그걸 왜 만드는데?”
“그냥.”
12월 31일 나른한 오후, 느닷없이 공갈빵이라니.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사이 남편은 반죽을 하고 발효를 끝냈다.
거실로 나와 보니 그새 빵을 굽고 있다.
코요타스는 멕시코 디저트라고 한다.
바람 빠진 공갈빵처럼 생겼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통밀, 박력분, 버터, 식용유를 넣고 반죽하다 깨를 첨가한다.
40분 발효 후 호떡처럼 소(원당 + 중력분)를 넣어 빚은 후 밀대로 얇게 민다.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나름 기술이 필요하다.
빵이 부풀지 않도록 윗면에 살짝 칼집을 낸 후 220도에 15분 굽는다.
기름 없는 호떡 같기도 하고 공갈빵 같기도 하다.
바삭하면서 고소하고, 심심하면서 달콤하다.
어라? 아빠가 좋아할 맛인데?
새해 떡국을 부모님과 전날 저녁에 먹기로 했다.
주섬주섬 공갈빵을 용기에 담고 부모님 댁으로 출발.
엄마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떡과 만두를 넣어 떡국을 끓이는 동안 나는 김을 구워 가위로 잘게 자르고 김치를 그릇에 담는다.
함께 떡국을 먹으며 한해를 되돌아본다.
공갈빵 시식 시간.
아빠는 고소한 맛이라며 좋아하신다.
엄마는 먹기도 전에 사위가 만든 빵은 다 맛있다고 선언하신다.
사위가 만든 건 좋은 재료만 써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달지도 않은 공갈빵 하나에 당이 30g이나 들어간다는 건 비밀.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다 졸면 안 되니까.
새벽 1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린다.
끼리 롤케이크, 생생 우동, 튀김 우동을 고른다.
2024년에 먹는 첫 음식.
이렇게 맛있기야!!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족과 지인에게 전화와 문자로 새해 인사를 건넨다.
오늘 아침은 크루아상(새해맞이 기념으로 주문)과 과일 샐러드.
쌀가루로 만든 크루아상 생지를 오븐에 돌리고 과일을 깍둑썰기한다.
토마토, 사과, 귤, 당근, 냉동 망고를 수북이 담는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남편 한 잔, 나 한 잔.
새해를 맞아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켠다.
남편도 새해를 맞아 그림을 그리겠다며 스케치북을 펼친다.
샛노란 참외를 색칠하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오늘 내가 떡볶이 해줄게.”
“갑자기 왜?”
“그냥. 새해니까.”
“새해에 왜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데?”
“떡국 떡 많이 남았잖아. 그걸로 해보려고.”
남편은 레시피를 검색한 후 요리를 시작한다.
우선 소스를 만든다. 고춧가루, 원당, 조청, 간장, 소금을 잘 섞는다.
고추장 없이 만드는 떡볶이라고 한다(왠지 불안하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몽땅 꺼내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양파. 대파. 샐러리. 새송이 버섯, 느타리 버섯, 양배추, 고구마, 숙주나물, 소시지.
물
(나는 평소 다시마를 넣어 풍미를 높이지만 남편이 한다니 그냥 놔둔다)
과 소스를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 야채 몽땅 투하.
야채가 반쯤 익으면 떡국 떡 투하.
떡국 떡 반쯤 익으면 라면 사리 투하.
라면 사리 익으면 끝.
15분이면 완성이다.
보기엔 그럴듯하다.
떡볶이인지 떡볶음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맛도 있다.
고추장을 넣지 않아도 떡볶이가 되긴 하네.
이제 떡볶이 담당은 너다.
저녁엔 냉동실에 있던 조기를 꺼내 오븐에 굽는다.
대전 시댁에서 가져온 거다.
소금 간은 되어 있다.
생선 구이는 따뜻한 날에 해야 한다.
오븐에 굽는다 해도 냄새는 난다.
둘 다 냄새에 매우 민감한 편이라 거실과 부엌 창문을 활짝 열고 굽는다.
향도 피운다.
생선에 레몬즙을 뿌리고 230도 오븐에서 20분 구우면 된다.
중간에 한 번 뒤집는다.
귀찮다고 올리브 오일을 바르지 않았더니 뒤집을 때 생선 살이 달라붙어버렸다. 이런.
어머님이 일일이 손으로 까서 보내주신 은행도 올리브유를 두르고 같이 굽는다.
간장에 생 와사비를 풀고 조기 살을 발라 찍어 먹는다.
식탁 위엔 밥과 조기뿐이다.
생선구이를 먹을 때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물론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카가와 리에코의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요리 만들기와 먹는 일
구리 구라, 구리 구라
신나게 노래 부르면서 빵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립니다‘
음식을 만들고, 만든 음식을 먹는 건 너무 일상적이라 가끔 그 가치를 잊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한 해의 마지막도, 새해 첫 시작도 요리를 해야 한다면(아무리 간단한 준비라 할지라도) 그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해에도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새롭고 다양한 요리도 시도하고 싶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어쩌면
요리하고,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누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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