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째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8월에 장마라니. 7월 말에서 8월 초는 여름 중 가장 무덥기도 하거니와 학교와 학원 방학이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춰 전국적으로 휴가를 떠나는 분위기이다. 코로나로 인해 집 바캉스를 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많은 이들이 국내 여행을 떠났다. 비가 오지 않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몸을 태우며 축 늘어져 있는 것이 가능한 지역이 있는 한편, 기록적인 폭우로 집이 무너지고 도로가 잠겨 어려움을 겪는 지역도 많다. 수해를 당한 분들도 걱정되고 이상 기후 변화를 보이는 지구도 걱정된다.
제습기로 빨래를 말리고 선풍기와 에어컨으로 집안의 눅눅함을 제거하다 보면 상큼한 오이지가 먹고 싶다. 오독오독 씹는 맛도 좋고 새콤달콤한 맛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김훈 작가는 <오이지를 먹으며>에서 오이지를 이렇게 평가한다. ‘오이지는 새콤하고 아삭아삭하다. 오이지의 맛은 두 개의 모순의 결합이다. 맛의 깊이와 맛의 경쾌함이다.’ 깊은 맛을 내면서도 경쾌함을 가진 오이지의 매력 때문에 매년 5월 말이 되면 집집마다 조선 오이(백오이)가 수북이 쌓인다. 나는 어머님이 담가 주시는 오이지를 먹으려 초조하게 기다린다. 어머님은 쪼글쪼글해졌지만 반듯하고 예쁜 모양의 오이지를 주시며 말한다. “이 오이지는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갔어. 오이 자체에서 수분이 나왔다니깐. 설탕 대신 물엿을 넣었는데 맛이 어떠니?” 당연히 끝내주게 맛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상큼한 오이지가 먹고 싶어졌고 오이지와 어울리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삼양에서 만든 나가사끼 짬뽕을 끓였다. 일본에 수많은 지역이 있는데 왜 나가사끼 짬뽕일까? 나가사키는 휘어 있는 오이지처럼 기다란 일본 땅에서 끝부분에 위치한다. 한국의 목포나 나주쯤 되는 위치라고나 할까. 어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으나 라면 뒷 표지에 적혀 있는 유래에 따르면 ‘19세기말 일본 나가사키 지역의 중국인 요리사가 동포 고학생들의 배곯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여’ 만든 국수라고 한다.
나가사끼 짬뽕은 한국의 시뻘건 짬뽕 국물과는 정반대인 하얀색이다. 한국식 짬뽕은 고추기름으로 재료를 볶고 고춧가루로 매운 맛을 내지만 일본식 짬뽕은 돈골 육수를 우려내어 깊은 맛을 낸다. 둘 다 해산물을 넣는다는 건 비슷하다. 한국의 일부 중식당에서는 백짬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라면을 끓여보자. 보글보글 라면 끓는 소리와 빗소리의 어울림이 좋다. 표지는 전체적으로 건빵색이다. 나가사끼 제목은 기다란 나무도마 같은 판자 위에 명패처럼 적혀 있다. 중앙 아래쪽에 있는 라면 그릇에는 홍합, 바지락, 새우, 목이버섯, 청경채, 양파가 올라가 있다. 원재료명을 살펴보니 표지 그림에서 보이는 재료 중 별다른 가공을 거치지 않고 자연에서 난 그대로 들어갔을 거라 추측되는 건 청경채와 목이버섯이다. 나머지는 새우엑기스분말, 채소풍미유 등으로 표시되어 있어 내용물을 눈이 아닌 혀끝에서만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라면이 다 끓었다. 닭 육수를 우려낸 듯 뽀얀 국물에 하얀 면발이 보인다. 한 입 먹어본다. 짭짤하다. 국물을 한 입 떠먹어본다. 짭짤하다. 매운 맛은 없지만 은은하게 얼큰하기도 하다. 밥을 말아먹으면 맛있겠다. 남편은 구운 오징어 맛이 난다고 한다. 면이 짬뽕 면처럼 쭉쭉 뻗은 게 아니라 구불구불한 면발이라 돈코츠 일본 라면을 먹는 것 같기도 하다.
나가사키 짬뽕을 먹다보니 조금 느끼해 지려 한다. 이래서 오이지가 필요한 거다. 오이지를 하나 먹어본다. 오독 오독. 상큼하고 발랄한 이 맛. 라면 한 입, 오이지 한 입. 맛의 조합이 좋다. 매운 짬뽕이 아니어서 오이지의 맛이 잘 느껴진다. 단점은 둘 다 짠맛이 강해 먹고 나면 자꾸 물을 마시게 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