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Aug 16. 2020

29. 둘이서 라면 하나 - 맛있는 라면

맛있는라면

‘고모는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중에 뭐가 젤 맛있어?’


‘응? 뭐가 제일 맛있냐고? 어....뭐가 제일 맛있냐면....“


부모님 댁에서 동생 가족과 점심을 함께 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현관에서 40개월 된 조카가 신발 신는 걸 도와주고 있는데 갑자기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다니. 피스타치오 아몬드? 망고탱고? 엄마는 외계인? 체리 쥬빌레? 슈팅스타? 초콜릿 무스? 무슨 맛이 ‘가장’ 맛있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짧을 시간 내에 답을 할 만한 질문이 아니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는 질문 되돌려주기.


‘우리 하율이는 뭐가 제일 맛있어요?’


‘응. 나는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명쾌하게 답을 하는 조카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31가지 맛 중에서 조카가 맛 본 아이스크림은 몇 개 되지 않기에 그 중 가장 맛있는 맛을 고르는 건 비교적 쉬울 것이다(동생에게 물어보니 딱 한번 데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명칭은 모두 다르나 맛은 비슷비슷한 31가지 맛을 모두 알고 있는 내가 그 중 하나를 고르는 건 쉽지 않다.


 자원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 무엇을 골라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시리얼 하나를 고르려 해도 비타민이 첨가된 시리얼, 칼로리를 줄인 시리얼, 건조 과일을 넣은 시리얼, 단맛을 줄인 시리얼, 쌀가루를 첨가한 시리얼 등등 종류가 수도 없다. 모든 면에서 기호가 확실한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나처럼 음식 앞에서 한없이 너그러워지고 호기심 많은 사람은 최선의 시리얼을 선택하기 위해 잠시, 혹은 오래 멈춰 서서 고민해야 한다. 고민이 깊어지면 가공식품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시리얼을 사지 않는 최악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남편이 무슨 라면 먹을래? 물어보았을 때 딱히 먹고 싶은 라면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때 삼양에서 나온 ‘맛있는 라면’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라면은 맛있을 테니 말이다. 남편이 대학에 다닐 때 후문에 밥집이 하나 있었는데 상호명이 ‘아무거나 식당’이었다고 한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가 뭐 먹을래 맛있는 거 사줄게 물어보았고 예의바른 신입생은 ‘아무거나’ 좋아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선배는 씩 웃으며 후배를 데리고 ‘아무거나 식당’에 갔고 그 식당은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이 다 있는 밥집이었다고 한다. 음식 맛은 괜찮았다고 하니 다행이다.


 맛있는 라면이라니. 제목에서 느껴지는 저 당당함이 좋다. 어째서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까 살펴보니 60여 가지 재료를 듬뿍 넣었단다. 6가지도 아닌 60가지라니. 사실이라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푸른빛이 도는 하얀색 바탕의 표지에는 ‘풍부하고 신선한 재료를 첨가한 프리미엄라면’이라 적혀 있고 그 아래 다양한 야채들이 그려져 있다. 현재까지 먹은 라면 중 라면 그릇이 그려져 있지 않은 유일한 라면이기도 하다. 수많은 재료들이 모여 라면이 된다는 걸 표현하고 싶은 게로군.


 라면을 끓여보자. 원재료명을 보니 본래 모습 그대로 가공된 야채는 6가지이다. 나머지 54가지 재료는 스프에 압축되어 있나보다. 면발에는 참깨분말과 감자전분을 첨가하였다고 한다. 라면이 다 끓었다. 남편이 한 입 먹어본다. 호로록.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안성탕면 맛과 비슷하다고 한다. 나도 한 입 먹어본다. 어떤 라면과 비슷한지는 모르겠고 맛있는 라면 맛이 난다. 맵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적당히 짭쪼름한 라면 맛. 다른 라면에 비해 건더기가 풍부하다. 라면에서 브로컬리를 발견한 것도 처음이다. 딱히 흠잡을 만한 데가 없다. 확실히 이름만큼 맛있는 라면이긴 하다. 기호가 각각 다른 여러 명이 함께 라면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고민하지 말고 맛있는 라면을 끓여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