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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ug 16. 2020

30. [마지막] 둘이서 라면 하나 - 쇠고기미역국

쇠고기미역국


30개의 라면을 선정하여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라면 표지를 그리기로 계획했다. 드디어 30번 째 라면 차례가 돌아왔다. 어쩌다 오뚜기 쇠고기미역국 라면은 마지막이 되었나? 정답은 별로 맛있을 것 같지 않아서이다. 왜 라면이 미역국 맛을 내려 한단 말인가? 라면이 감히 미역국 자리를 넘보다니. 암만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쇠고기 미역국 라면 먹는 걸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끝을 내야만 할 때가 도달했다.


 쇠고기 미역국 봉지를 뜯는 게 내키지 않는다. 표지 색감도 식욕을 떨어뜨린다. 미역이 주인공이라 어두운 초록색으로 전체를 덮어버렸는데 미역 느낌은커녕 늪지대에 발을 푹 담근 것 마냥 칙칙한 기분만 더해진다. ‘남해안 산 청정미역 가득!’ 문구와 ‘면 중 쌀가루 10% 첨가’ 문구를 봐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보글보글. 냄비에 물이 끓어 건더기 스프, 스프, 라면을 함께 넣는다. 스프는 액체 형태다. 액체 스프는 분리수거 하기 전 한 번 더 씻어야 해서 싫어한다. 게다가 액체 스프는 꾹 짜내면서 손가락에 묻을 가능성이 많다. 조심했지만 막판에 엄지손가락에 거무죽죽한 액체가 묻고야 만다. 아 진짜. 액체 색과 모양을 보면 무엇이 연상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면발이 매우 얇다. 뒤편의 조리방법을 보니 2분만 끓이라고 되어 있다. 겨우 2분만 끓이라고? 2분 만에 건미역이 어떻게 불어날 수 있는지 의심을 하며 조리법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본다. 1번에 물과 건더기 스프를 함께 넣으라고 되어 있다. 평소 제품의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편인데 라면이라고 무시했더니 이럴 수가. 미역이 덜 익은 채로 먹게 생겼군.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식욕은 없어진지 오래다. 라면이 다 끓었다.


 면기에 라면을 담는다. 구수한 미역국 냄새가 난다. 라면 면발 사이에 미역이 상당하다. 쇠고기는 옥수수 알 크기의 다진 쇠고기 몇 개가 보인다(이럴 거면 넣지를 마세요). 미역이 11.2%, 쇠고기 3.8%가 들어있다고 적혀 있다. 국물 색이 뽀얗다. 왠지 미역국 모양새가 난다.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본다. 오. 미역국 맛이 나는데. 라면을 한 입 먹어본다. 미역도 덜 풀어지긴 했지만 먹기에 나쁘진 않다. 나처럼 조리법을 읽지 않는 이들을 위해 최대한 단시간에 풀어질 수 있도록 연구를 했나보다. 라면인데 맛있는 미역국 맛이 난다(설마 3분 미역국에 라면 면발만 추가해서 라면으로 만든 건 아니겠지). 한국의 라면 기술은 정말 우수하구나.


 맛있는 미역국의 핵심은 미역이 얼마나 ‘잘 풀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만드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시간이 좀 걸린다. 재료는 미역만으로 충분하다. 옛날에는 고기가 귀해 생일이 되면 미역국에 특별히 소고기를 넣고 끓였다지만 미역과 소고기는 그리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불린 미역과 다진 마늘을 들기름에 충분히 달달 볶은 후 채소 꼬투리를 우려 낸 채수를 붓는다. 주물 냄비의 뚜껑을 닫고 약 불에 뭉근하게 끓여주면 되는데 면발이 풀어지려면 최소 1시간은 끓여야 한다.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이면 아련한 국물색이 우러나는데 이때 국 간장을 조금 넣으면 끝.


 고소하면서도 깊은 바다 맛이 나는 미역국은 언제 먹어도 반갑지만 푹푹 찌는 한여름에 1시간씩 가스 불을 켜고 국을 끓이려면 미역보다 내 몸이 먼저 흐물흐물 풀어질지 모른다. 쇠고기 미역국 라면은 평소 미역국을 좋아하지만 형편상 끓이기 힘들 때 간편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간편하고 맛있게. 세상의 모든 라면이 지향하는 신조가 아닐까? 2017년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는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 1위가 한국이라고 발표하였다. 일 년에 한국 사람은 평균 몇 개의 라면을 먹을까? 73.7개이다. 와우. 2위는 베트남으로 53.5개, 3위는 네팔로 51.1개이다. 2020년 현재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다. 라면. 몸에 좋지 않은 줄 알지만 자꾸 손이 가는 애증의 식품. 그동안 먹은 30가지의 라면 봉지를 펼쳐본다. 모두 맛있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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