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대에 책을 놓고 책장을 넘기는데 무언가 톡 떨어진다.
낙엽이다.
샛노란 주름치마를 활짝 펼쳤다.
와.
낙엽을 보니 웃음이 난다.
눈이 즐겁다.
낙엽을 곁에 두고 다시 책을 읽는다.
잠시 뒤 무언가 톡 떨어진다.
와.
또 낙엽이다.
본격적으로 즐거워진다.
누가 끼워놓았을까?
예전에는 책을 빌리려면 책 뒷장에 있는 대출카드에 이름을 적어야 했다.
손글씨로 자기 이름을 적어야 빌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모바일 카드나 핸드폰은 먼 훗날 얘기였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야한 책을 빌리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는 책을 빌릴 때마다 대출카드를 살펴보며 이름을 확인했다.
아는 남자아이 이름을 발견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서로 통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날로그 감성이 폭발하던 시절이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 태어난 걸 축복이라 생각한다.
삐삐에 담긴 숫자의 의미를 곱씹고 음성사서함을 확인하며 얼마나 설레었던가.
책읽기를 멈추고 책장을 하나씩 넘겨 낙엽을 찾는다.
한 장, 두장, 세장, 총 네 장이 있다.
책장 안에서 곱게 건조되었다.
책갈피 주인은 가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이 책을 읽었을 거다.
작년 가을일까?
노랗고 빨간 낙엽을 주워 하나씩 넣었겠지.
다음에 책을 빌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그 뒤로 몇 명이 이 책을 빌렸을까?
원래는 더 많은 낙엽이 끼워져 있었을까?
책갈피 주인 이후 내가 처음 빌린 걸까?
낙엽은 책 사이에 눌려 답답해했을까?
읽고 있는 책은 <땅의 예찬>이다.
책갈피 주인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여성이겠지? 남성이라면...누구일지 궁금하다. 동네 주민일 텐데.
책을 읽은 후 낙엽을 다시 꽂아둔다.
나와 같은 기쁨을 다음번 독자가 누릴 수 있도록.
땅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
샤프란 꼭 한 송이를 꺾어서 보드리야르의 책 <유혹에 대하여>에 꽂아두었다. 겨울밤 샤프란 크로커스는 그 자체가 유혹이다. 138쪽과 139쪽에 아름다운 꽃모양이 찍혔다.
<땅의 예찬> 한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