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보통 때보다 훨씬 맛있어진 과일이 등장한다.
수박일 때도 있고 한라봉일 때도 있다.
몇 년 전에는 복숭아였다.
그 해 여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복숭아를 먹었다.
이번 겨울은 배다.
맛있는 배를 고르기 쉽지 않기에 평소에는 특정 농장 것만 주문한다.
친구가 올해 배가 맛있다고 해서 설마 했는데 진짜다.
마트에서 파는 배도 물이 많고 달콤해 몇 달 동안 배를 실컷 사먹었다.
남편은 과일 씨는 무조건 발아시켜 본다(지겹지도 않니?).
작년 배와 마찬가지로 올해 배도 피해갈 수 없다.
발아한 씨앗을 요플레 통에 담고 흙을 덮어준다.
씨앗은 흙 속에서 잠잠하다.
하루 이틀. 일주일.
검은 흙 속에서 다른 색이 보인다.
미색에 가까운 줄기 등이 살짝 드러난다.
구부러진 허리가 조금씩 위로 올라온다.
줄기 끝에는 초록 싹이 달렸다.
새싹은 기어이 머리를 들어올린다.
중력과 싸우며.
마침내 허리를 펴고 꼿꼿이 선다.
아침마다 요플레 통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말한다.
“그 큰 나무도 이렇게 시작해.”
까만 씨앗 한 알이 새싹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매번 새롭다.
새싹이 움트고 나면 줄기는 무섭게 자란다.
하늘을 향해 잎을 활짝 열고 뻗어간다.
언젠가 줄기가 굵어져 나무가 되면 열매를 품을 것이다.
열매는 땅에 떨어져 썩거나 인간과 동물의 식량이 되겠지.
열매 중앙에 콕 박혀있는 씨앗은 다시 발아하고 새로 태어난다.
왜 우리는 소멸하는가.
인간의 생명은 한번뿐이다.
아무리 원하고 노력해도 다시 태어날 수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죽음과 가까워진다.
삶에 끝이 있음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소중해진다.
남을 미워하거나 부러워하는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된다.
새싹과 어린아이, 가족과 친구 얼굴을 바라본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자꾸 자꾸 말하고 싶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이의 웃음, 엄마와 함께 나눈 일상적인 대화,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지난 봄 심었던 씨앗에서 튼 작은 싹, 일상을 스쳐 지나가는 소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한다. 슬픈 날도 주고, 기쁜 날도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큰 의미다.
<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앤 라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