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노란 옥수수

by 유자와 모과
노란옥수수.jpg


“선생님, 다음 주에 옥수수 갖다 드릴게요.”

“와. 정말? 고마워. 맛있겠다.”

“먹는 건 아니에요. 할머니가 만든 거예요.”


일주일 후, 예배당에 들어오며 로운이는 옥수수를 내밀었다.

진짜 옥수수였다.

먹을 수 없는 노란 옥수수.


로운이는 손가방도 선물로 주었다.

샛노란 뜨개가방이었다.

옥수수알과 똑같은 진한 노란색.

1킬로 밖에서도 눈에 띌 만한, 존재감 넘치는 해바라기꽃잎 색 가방이었다.

로운이 어머님께 감사문자를 보냈다.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예쁜 뜨개용품을 만들 때마다 로운이가 선생님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고.

그동안 로운이에게 받은 수세미가 가득하다(할머니 죄송해요).

로운이 눈에는 노란 옥수수와 가방이 예뻐 보였나보다.


옥수수를 부엌에 걸어두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옥수수를 보며 웃는다.

로운이 마음이 고마워서, 행복해서 웃음이 난다.


한번 보면 눈길을 돌릴 수 없는 샛노란 가방은 새벽기도회 때 들고 다닌다.

성경과 작은 물병을 넣기에 알맞은 크기다.

잠이 덜 깬 성도들이 가방을 보고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오호).

다른 사람이 선물로 줬다면 결코, 절대 들고 다닐 수 없는 가방이다.

온 교회 성도가 ‘노랑 가방을 든 여자’로 인식할 때까지 들고 다닐 거다.


아이들은 가끔 내게 무언가를 내민다.

머리끈, 꽃반지, 끈팔찌, 손편지, 사탕 한 알, 껌 한 개, 과자 조금.

행복지수 급격 상승. 일주일 치 행복 충전 완료.

아이들이 나를 보며 웃을 때마다 축복받는 기분이다.

아이들을 안으며 이 사랑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한다.



이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 그게 내 생 최고의 일이고, 최선을 다해 사는 방법이다.

내가 가는 길에 푸르고, 높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때로 성스럽고 싶다.

<김용택의 교단일기> 김용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