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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외식

by 유자와 모과
해물파전.jpg


남편 회식이 잡혔다.

평일 저녁에 혼자인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친구를 만날까 하다 아빠 생각이 났다.

감기에 걸려 2주 동안 고생하시다 이제 막 회복된 상태였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아빠는 패딩을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있다.

엄마는 방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다.

“엄마. 감자탕 먹으러 가야지. 같이 간다며. 준비 안 해?”

“점심을 많이 먹어서. 그냥 아빠랑 둘이 가서 실컷 먹고 오면 안될까? 엄마는 배가 불러서 생각이 없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얼큰한 탕을 좋아하는 엄마를 낚기 위해 감자탕을 골랐다.

작은 사이즈를 시켜 셋이 나눠먹으면 된다고 했다.

엄마는 낚였다.

막판에 놓쳐버렸다.

절약이 몸에 베인 엄마와 함께 외식하는 건 평생에 걸친 미션이 될 것 같다.


엄마가 없으니 감자탕을 먹지 않아도 된다.

돼지갈비. 보쌈. 코다리조림. 짬뽕. 돈까스. 녹두전. 메밀국수...

아빠는 집 앞에 있는 전집을 택했다.

작년에 오픈한 식당인데 아빠와 한번 가본 적이 있다.


메뉴판을 끝까지 살펴본 아빠는 해물파전을 선택한다.

메뉴판은 전류, 안주류, 식사류로 나눠져 있다.

전류에서 가장 비싼 메뉴다.

모듬전보다 비싸다.

엄마와 함께 왔다면 시키지 못했을지도.


주먹밥도 주문한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김가루가 뿌려진 밥을 작게 뭉쳐 아빠 접시 위에 놓는다.

아빠는 아기새처럼 쏙쏙 집어 먹는다.

주먹밥을 다 먹을 무렵 해물파전 등장.

바삭하면서 촉촉하게 잘 구워졌다.


할머니가 파전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어제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거 하나도 못해줬어. 익으려면 17분이 걸리거든. 두꺼워서. 어젠 비가 와서 주문이 많아가지고는.”


아빠는 해물이 많다며 싱글벙글.

오랜만에 먹어본다며 싱글벙글.

메뉴판을 다시 살피더니 오삼 불고기는 뭐냐고 묻는다.

오징어와 삼겹살을 같이 구우면 정말 맛있냐고.

한 번도 안 먹어봤다고.

다음에 와선 이걸 먹어보자고 한다.

안주류에서 가장 비싼 메뉴다.

엄마와 함께 오긴 글렀다.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성경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고, 요즘 이슈가 되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밤에 잘 자는지 엄마가 요새 걱정하는 건 없는지에 대해 묻고 답한다.

30년 전에도 같은 풍경이었다.


나와 동생과 아빠는 방 안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맛동산과 새우깡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다 틈틈이 방문을 열고 그러다 이 다 썩는다며 혀를 찼다(예언은 정확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아빠는 자신도 좋아하고 우리도 좋아하는 과자를 매주 사서 함께 먹었다.

과자를 나누며 우리와 대화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엄마의 잔소리를 꿋꿋하게 이겨냈다.


아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뚜렷한 주관이 있다.

할 수 있으면 하려고 한다.

할 수 없으면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아빠의 그런 모습이 좋다.

그런 아빠와 함께 살면서 살림을 꾸려온 엄마도 존경한다.

우리도 다 컸으니 이젠 엄마도 마음 가는대로 살면 좋을텐데.


창밖에는 눈이 날린다.

남은 파전을 포장해 집으로 간다.

엄마는 파전 한 점을 먹더니 묻는다.

이건 얼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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