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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3. 2024

동해 여행


친척들이 강원도 곳곳에 포진해 있어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동해 바다를 보아왔다. 

어릴 때는 바다를 보면서도 좋은 줄 몰랐다.

언제부턴가 바다가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전에 알던 언니는 주기적으로 유적지가 있는 도시를 방문했다.

무슨 재미로 그런데를 가냐고 했더니 돌이 자꾸만 자기를 불러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뭔 말인가 했는데 이제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강릉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다가 그리워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반휴 낸 남편을 태우고 3시간을 꼬박 달려 도착한 곳은 동해 책방 ‘균형’이다.

남편은 바다 보러 왔으면서 바다는 안보고 책방이 왠말이냐며 입을 삐죽 내민다.

책방이지만 카페도 함께 운영한다.


주인이 공간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보통 솜씨가 아닌 걸. 

혼자 온 손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다.

음악 소리도 적당하고 커피도 맛있다.

남편이 그림을 그릴 동안 책방에 비치된 그림책을 살펴본다.      

<왜냐면> 이라는 그림책이 눈에 띈다.     

첫 시작은 이렇다.     


“엄마, 비는 왜 와요?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새는 왜 우는데요?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놀려서야.

왜 물고기가 새보고 더럽다고 해요?

물고기는 물속에서 계속 씻는데 새는 안 씻어서야.”     


이런 식으로 엄마와 아이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내용도 기발하고 그림도 재미있다.  

남편도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한다.


“물고기도 눈곱이 낄까?”

“인어공주도 비린내가 날까?”


그때마다 책속 엄마처럼 재치있게 대답하기는커녕 외계인 보듯 남편을 쳐다보았는데.

반성합니다.     


숙소는 현진 관광호텔. 

선운사 여행을 떠났다가 선운산 관광호텔에 머문 이후로 ‘관광’ 단어가 들어간 호텔은 절대 예약하지 않지만 동해는 예외다.

동해에서 가장 좋은 숙소는 현진 관광호텔이지 않을까?

객실도 욕실도 넓고 깨끗하다. 

위치도 좋고 오션 뷰를 선택하면 바다도 환히 보인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선다.

여행에서 맛집 탐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화요일에는 절대 동해를 방문하지 말기를.

인터넷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대부분의 맛집은 화요일에 쉰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비장의 장소가 있다.

예전에 산책하며 눈여겨보았던 냉면권가.


멀리서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지만 냉면을 찾아 먹지는 않기에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미루었던 곳이다.

3대 째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을 하나씩 시킨다.

와. 면발이 다르다.

국물은 또 어떠한가.

고기국물도 아닌 것이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한 그릇 더 먹고 싶다.

다음에 또 오겠다.     



다음날 숙소 근처 동해 제빵소에서 사온 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동해 지도를 펴고 어디를 갈지 살펴보다 무릉계곡에 가보기로 한다.

남편은 바다는 언제 보러 갈 거냐고 묻는다.

저기 봐봐. 창밖으로 바다 보이지?



걷기 좋은 화창한 날이다.

무릉계곡에서 용추폭포까지 천천히 걸으면 1시간이 걸린다.

가는 길이 완만하다.

막 푸른 잎이 돋아난 나무들, 깨끗한 계곡 물과 너른 바위, 사람 친화적인 다람쥐들(손에 과자를 쥐고 내밀면 쪼로록 달려와서 가져간다). 

동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

1박 2일이라 가까운 도시로 갈까 고민했는데 오길 잘했다.


무릉 계곡 주변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으려 했으나 단체손님들이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시내로 내려와 장칼국수를 먹는다.

칼국수에 고추장을 풀어 걸쭉하게 만든 건데 강원도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다.

장떡도 팔면 좋으련만.



논골담길 등대에 차를 세우고 등대 바로 아래에 있는 카페에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카페.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하다.

망상 해수욕장으로 이동해서 맨발로 해변을 걷는다.

모래는 따뜻하고 바닷물은 차다.

모래 위에 부서진 작은 조개들이 잔뜩 있어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강릉에 새로 생긴 솔올 미술관을 가려 했으나 전시 교체로 인해 임시 휴무다.

아쉬우니 시립미술관이라도 가자.

강릉 시립미술관은 규모도 작고 미술관 외부가 하나도 예쁘지 않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봄봄봄 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가들 그림이 전시중이다.

‘뒷모습’이라는 멋진 그림을 감상했으니 위안을 삼자.     


강릉시장에서 메밀전병과 감자전을 먹고 고래 책방으로 이동.

고래 책방은 처음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강릉에 이런 곳이?

정말 멋지군요.

빵집과 책방을 함께 운영한다.

그런데 어쩌나. 규모에 비해 책을 사거나 차를 마시며 책 읽는 사람이 두세 명 뿐.

이정도면 적자겠는걸.

우리가 때마침 사람이 적은 시간에 방문했기를 바랄 뿐.


밖이 어두컴컴하다.

집에 가자.     

다시 3시간을 꼬박 달려 집에 오니 밤 10시.

어김없이 남편이 묻는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디가 제일 좋았어?

잠시 생각하다 대답한다.

무릉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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