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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7. 2024

애정하는 물건


이틀째 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이른 장마인가 싶을 정도로.

55%의 확률로 빨래하는 날에는 비가 온다.

일주일에 한 번만 세탁기를 돌리기에 며칠 더 미루기도 어렵다.

비가 오더라도 마음 든든한 건 제습기가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가 없는 우리 집에 제습기는 햇살 같은 존재다.

작은 방에 빨래를 널고 제습기를 돌리면 방 전체가 보송보송해진다.

제습기는 봄과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가을과 겨울에 편히 쉰다.

몸집은 작지만 속은 깊어 꽤 무겁다.

제습기 없던 시절엔 비오는 날 어떻게 빨래를 말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습기는 소중한 살림 친구다.     


스탠드 다리미판도 애정하는 물건 중 하나다.

서서 다리미질을 하는 순간부터 삶의 질이 한 단계 올라갔다.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며 방바닥을 닦다가 똑바로 서서 밀대로 걸레질 하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스탠드 다리미판 위에 옷을 올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30분 동안 다리미질을 해도 다리가 저리지 않으니까.


무인양품 제품이 튼튼하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배송을 시키려 했는데 품절이었다.

서울에 있는 무인양품 매장을 돌아다니며 다리미를 찾았고, 두드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문이 열릴 것이요, 딱 하나 남은 걸 구매할 수 있었다.

실내복과 청바지를 제외한 모든 옷을 다려 입는다.

구김 없는 옷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돈 들 일 없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편백나무 욕조 덮개도 없어서는 안 될 물건 중 하나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아도 덮개가 없으면 금방 물이 식는다.

여름에는 괜찮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덮개가 있어야 제대로 된 반신욕을 할 수 있다.

환기와 온풍기 기능이 담긴 욕실 환풍기를 설치해도 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아이 있는 집은 설치하니 좋다고 하더라). 

덮개 한 장이면 해결되는 걸.


욕조에 물을 반쯤 담고 나무 덮개를 욕조 위에 얹어주면 물 온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물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목만 쏙 내밀고 노래 몇 곡 흥얼거리다 보면 사르르 잠이 오고, 그때가 바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욕조 덮개가 없었더라면 겨울엔 반신욕 하는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가구와 물건이 다 사라진다면 아쉬울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없으면 없는대로 적응하며 살 것 같다.

나중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지금 살림살이의 반 정도를 덜어낼 거다.

어디로 가건 제습기와 스탠드 다리미판과 나무 욕조 덮개는 함께하겠지.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자기 몫을 확실히 하는 물건들.

고장 나면 똑같은 제품으로 다시 사야지.

7년간 함께 한 소중한 친구들. 오래 함께 하자. 



무심코 있으면서도 말하는 힘이 있는 물건을 좋아해요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그 사람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어떤 장소에 어떤 식으로 있든 존재감을 발휘하기 마련이죠물건도 사람도 그 자체가 가진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분의 디자인아키타 미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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