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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09. 2024

편의점 단상


2005년도쯤 첫 일본 여행을 갔다. 그때만 해도 일본은 한국보다 부자 나라였다. 

엔화도 1200원 가까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일본은 ‘잃어버린 10년’ 시대를 막 지나온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겠지. 그 후로도 일본 경기가 살아나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을 추가로 맞이하리라고는. 

영화와 책으로만 접하다가 처음 일본을 두 눈으로 보았을 때 감탄했다. 

구석구석에 있는 편의점과 자판기. 작고도 아름다운 디저트. 정갈한 카페와 깨끗한 골목. 질 좋은 편지지와 정성스러운 포장. 친절이 몸에 베인 시민. 일본인을 보며 국력에 대해 생각했다.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선진국 국민이 되는 아이들. 

워렌버핏도 말했지. 자신의 성공은 주식시장이 최고로 발달한 현대의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 후로도 종종 일본 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공원과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여전히 놀랐지만 그 강도는 조금씩 약해졌다. 

조만간 한국이 일본 경제를 따라잡을 거라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말거나 한국은 꾸역꾸역 성장했다. 


몇 년 전 어느 해인가 일본을 찾았을 때 느꼈다. 

어? 물가가 한국이랑 비슷하네? 뭐야? 가격이 이것밖에 안한다고? 

어느새 한국이 일본만큼 국력이 커진 거다. 

세계 85국을 대상으로 한 국력 순위를 찾아보니 2023년에 대한민국이 6위, 일본이 8위로 나와 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오랜만에 야식을 먹었다. 시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셔서 점심을 잔뜩 먹었더니 배가 꺼지지 않았다. 

밤 9시. 미용실에 다녀온 남편이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컵라면을 사왔다. 

삼각 김밥이 이렇게 맛있었나? 컵라면과 와인의 조합은 말해 무엇하리. 

김밥이나 떡볶이 같은 걸 사오려 했는데 동네 식당이 다 문을 닫았다고 했다. 

편의점 수가 적었던 시절에는 이런 경우 술집에서 안주를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이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배달 앱을 켜도 되고). 

가지각색의 도시락과 빵, 튀김과 분식을 파는 일본 편의점을 보며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2023년 기준 일본 편의점 점포 수는 5만 6700개, 한국은 5만 5000개다. 

인구수는 한국이 훨씬 적은데 편의점 수는 비슷하다. 

편의점 왕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국도 몇 년 째 경제가 정체 상태다. 

설마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 초입에 진입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럼 너무 억울한 걸. 

가난한 국가에서 태어나 열심히 살아오다 이제 좀 국력의 후광을 누리려나 했는데 말이죠.          


꾸러미를 싸는 포장지는 본질적으로 아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면서도 귀중한 것으로 신성시된다단것이나 양갱조약한 토산품 등이 보석처럼 화려하게 포장된다그 안에 든 물건 대신 상자 자체가 선물인 것 같을 정도다포장의 기능이 공간상 보호하는 데 있지 않고 시간을 늦추는 데 있는 것인 양 포장이 에워싸고 기호화하는 의미가 훨씬 나중까지 오랫동안 연기된다.

 <기호의 제국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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