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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14. 2024

두리안


레몬을 사려고 오아시스에 접속했는데 대문 광고에 두리안 사진이 뜬다. 

두리안 과자를 파는 건가 했는데 통 두리안을 팔고 있다.

와. 오아시스에서 이런 것까지?

가장 작은 크기(1.5kg~2kg)가 37000원. 

비싸긴 하다. 

생두리안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남편을 위해 주문한다.

네게 놀라운 맛을 보여줄게.     


주일 새벽, 집 앞에 도착한 두리안을 세탁실에 넣어두고 교회를 간다.

돌아와 현관 문을 여는 순간 어디선가 풍겨오는 쿰쿰한 향기.

이런. 두리안 냄새를 생각 못했네.

며칠 후숙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급히 두리안이 담긴 상자를 안방 베란다로 옮긴다.

베란다 문은 활짝 열고 방문은 굳게 닫는다.

식물들아 미안해, 며칠만 두리안이랑 잘 지내렴.     


두리안은 20도 이상의 건조한 환경에서 후숙시켜야 한다.

장마철이나 한겨울에 두리안을 주문하면 끝장이다.

방안에서 두리안을 익혀야 할테니.


이틀이 지나자 철갑같던 두리안 껍질이 여기저기 벌어진다.

벌어진 사이로 노란 속살이 보인다.

이제 먹을 때가 되었다.     

두리안 가시는 엄청 단단하고 뾰족해서 찔리면 아얏 소리가 절로 나온다.

호기심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가 아얏 하며 기어코 상처를 입었다.

두꺼운 오븐 장갑을 끼고 갈라진 틈으로 칼을 넣는다.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질 때처럼 쉽게 잘린다.


과육은 수저로 쉽게 뜰 수 있다.

망고 같은 질감과 색감이다.

망고만한 크기의 과육이 네 덩이 나온다.

브라질너트만한 갈색 씨가 과육 당 하나씩(혹은 두개) 들어 있다.

과육에서도 쿰쿰한 맛이 풍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자르자마자 손으로 과육 하나를 입에 넣는다.


그래. 이 맛이었지.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풍미가 차오른다.

강철같은 껍질 안에 이토록 달달한 과육이 숨어 있다니.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냉장고로 달려가 두리안을 꺼내준다.

어때? 맛있지? 놀랍지?

남편도 생각보다 맛있다고 한다.

옥수수 크림 맛인데?

그렇다. 핸드메이드 옥수수 크림 맛이 난다. 

밤 맛도 난다.    


딱 이번 한번만 사려 했는데.

도저히 한번으로 끝낼만한 맛이 아니다.

통 두리안을 언제까지 팔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장바구니에 두리안을 담아 놓는다.

남편 월급 받으면 한번만 더 사보자(옥수수 크림빵을 사먹는게 나은 선택일지도).

    

두리안 씨는 어김없이 화분에 심겨 베란다로 옮겨졌다.

과연 싹이 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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