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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16. 2024

스승의 날


“이하림, 앞으로 나와. 안경 벗어.”

초등학교 5학년,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뺨을 맞아 봤다.

아프기보다는 속이 상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맞은 이유는 간단하다.


담임선생님께서 절대 틀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문제를 내가 틀렸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 문제를 틀리면 때린다고 경고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

뺨을 맞을만큼 중요한 문제였을까?

90년대였으니 그런 폭력이 가능했을 거다.   

  

얼마 전 초등학생 동창에게 10년 만에 연락이 왔다.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또래 남자아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책을 좋아해 단짝처럼 지낸 친구였다.

밤이 늦도록 각자 살아온 세월을 이야기하다 초등학교 시절 얘기가 나왔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담임 선생님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었다.

그분 성함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그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나보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그가 아주 좋았거나 아주 싫었거나 둘 중 하나이기에.

뺨을 맞기 전까지 그분은 내게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았다.

친구는 선생님 자식이 둘 다 아들이었다며, 그래서 남자아이들을 좀 더 편애하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자기한테도 그래서 잘해준 것 같다나.      


고등학생 때 만난 담임선생님은 모두가 시험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맨 뒷자리에 앉은 내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등 뒤를 만지며 브라 끈을 훑어 내려갔다. 

그 당시는 그게 성추행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시험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자꾸 뒤에서 걸리적거리는 게 신경 쓰여 어깨를 들썩거렸을 뿐이다.

그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접촉은 없었기에 그 선생님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선생님들도 있었다. 

가장 그리운 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조용훈 선생님. 

수업을 시작하거나 지루해질 때마다 옛날 얘기를 들려주어 우리들 혼을 쏙 빼놓았다.

늘 웃는 표정에 인자하셨던 선생님. 

담배를 많이 피우셔서 얼굴이 까맣게 될 정도였던 선생님.

엄할 때도 계셨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선생님.


중학생 때 친구 몇 명과 선생님 댁에 찾아가기도 했다.

20대 때 선생님이 생각나 찾아가려고 수소문했더니 그새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좀 더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스무 살 이후부터 교회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는 학원 혹은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쳤기에 20년 넘는 세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다.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 선생님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뛰어난 교수법과 능숙한 강의, 풍부한 지식과 직접 만든 자료로 무장한 선생님들을 보며 자극받았다.     


일찌감치 나는 내가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칭찬과 웃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다.

아무리 사고뭉치여도,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나는 그 아이를 격려하고 웃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아낌없이 웃어주고 아낌없이 안아주자고 매번 다짐한다.

아이들이 보기에 나는 만만한 선생님이고, 나는 만만한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쏙 든다.     


스승의 날마다 아이들에게 손 편지나 작은 선물을 받는다.

활짝 웃어준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이 기억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조용훈 선생님처럼 좋은 쪽으로.

선생님,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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