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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17. 2024

강화도 여행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강화도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단박에 여행지 확정.

당일로 다녀오자는 엄마를 설득하는 건 아빠 몫이었다.

간신히 엄마 허락을 받은 후 펜션을 예약했다.

리조트에 머물고 싶었지만 숙소도 몇 개 없고 가격도 비쌌다.     


수원에서 강화도까지는 100km도 되지 않지만 계속 고속도로를 바꿔 타야 해서 시간이 꽤 걸린다.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옛날얘기를 풀어냈다.

몇 번 들은 에피소드도 있었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중 하나를 말해보자면,


엄마가 고등학생 때 앞집 할머니가 계셨거든. 할머니 아들이 선장이었어. 얼마나 돈이 많았겠니. 그 아들이 평양 기생이랑 결혼했거든. 그분이 얼마나 곱고 날씬했는지 몰라. 그 시대에 신문을 읽었다니까. 그 시절에 여자가 신문을 읽다니. 얼마나 똑똑했겠니. 예의바르고 교양 있는 여자였어. 그때만 해도 머슴이 있었거든. 조선시대도 아니었는데 동네에서 상놈 집안이라고 부르는 집들이 있었다니까. 그분은 아이를 10명이나 낳았어. 엄마는 방에서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아이들이 물 길러 오고 그랬다니깐. 큰 부자였는데 언제부턴가 전답을 하나둘 팔더니 나중에는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하더라. 그분이 바느질 솜씨가 있어서 옷 품을 팔아 생활했던 것 같아. 고향 떠나고 나중에 소식을 들었는데 그분이 연세가 드셔도 얼마나 고왔는지 남자들이 계속 얼쩡거렸다더라. 지금은 돌아가셨겠지.      


엄마 얘기를 듣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강화도에 도착하니 12시. 

점심으로 묵전과 젓국갈비(물갈비)를 먹는다.

몇 년 전 강화도 여행 때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다시 주문.

양념한 돼지갈비를 국물에 넣어 끓여 먹는 방식이다.

돼지갈비는 이미 푹 익혀져 있고 두부와 나머지 야채만 숨이 죽을 때까지 끓이면 된다.


처음엔 그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예상외로 엄청 맛있다.

묵을 넣어 바삭하게 구운 묵전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날이 좋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계산할 때 보니 2024년에 블루리본을 받은 집이다.

왕자정묵밥.     


식당 바로 옆에 고려궁지가 있어 둘러본다.

역사적으로 강화도는 여러 왕들의 유배지로 당첨된 곳이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 휴양지가 되었지만.

400년 된 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엄마는 이렇게 오래된 나무가 있냐며 감탄 또 감탄.     


교동도로 이동한다.

강화도는 크게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섬인 강화도. 북한과 가까운 교동도. 그 아래에 석모도가 있다.

세 개 섬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교동도 다리를 넘어가면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예전에는 섬 통행증을 자동차 유리창 아래에 끼워야 했는데 이번에 가보니 번호판 인식 기계를 설치해 놓았다. 

신분증만 보여주면 된다.

신분증이 없다면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된다.     


화개정원은 화개산 아래에 꽃 정원을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화개 정원만 구경해도 되고 화개산 전망대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모노레일 표를 끊으려 했으나 2시간 기다려야 한단다.

평일인데?

모노레일이 워낙 느리게 움직이고 한 대당 수용인원도 적다보니 평일이고 뭐고 늘 붐빈다고 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다면 미리 표를 끊고 대륭시장 구경을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화개 정원 입장료만 끊고 화개산까지 천천히 올라가기로 한다.


원래는 여기 말고 석모도 수목원을 가려 했다.

인터넷으로만 찾아봤을 때는 왠지 조잡해 보이고 규모도 작을 것 같았다.

떠나는 당일에 남편이 화개 정원이 더 나을 것 같다고 권해서 계획을 바꾼 거다.

바꾸길 잘했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꽃과 나무를 풍성하게 심어놓았다. 

쉴 수 있는 다양한 공간도 곳곳에 만들어 두었다. 

인공 폭포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개울을 따라 흘러가도록 해 놓았다. 

화담숲 확장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공원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서해 바다를 메워 만든 논과 바다가 환히 보인다.


공원 곳곳에 솥뚜껑 모양 조형을 8개 설치해 놓았는데, 앱을 깔고 바코드로 스탬프를 6개 찍으면 강화도 쌀 500g을 주는 이벤트도 하고 있다. 

왼쪽으로 올라가면서 찍고 오른쪽으로 내려오면서 찍으면 된다.     

시니어 분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핸드폰에 앱을 까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핸드폰으로 스탬프 찍는 걸 지켜보던 한 어르신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셔서 앱을 깔아 드리고 도장 찍는 방식을 한참 설명했다. 

그분은 과연 성공하셨을까?


화개 공원을 찾는 관광객 대부분이 시니어인데 핸드폰으로만 스탬프를 찍게 한 이유는 뭘까?

여러 관광지를 다녀보아도 스탬프 투어는 대부분 종이에 도장을 찍는 방식이다(아니면 둘 다 가능하거나).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있고 아이나 어른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개공원처럼 시니어 층이 훨씬 많은 관광지라면 이런 부분에서 더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기념품으로 쌀을 받으면서도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매표소에 짧은 문구만 적혀 있어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 참여 방법을 찾았다) 수많은 시니어 분들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팜플렛에 도장을 찍는 방식이었다면 더 많은 관강객이 즐겁게 참여했을 텐데.     


한 시간에 걸쳐 정원을 구경하며 천천히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전망대에 서면 북한이 바로 눈앞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야외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놀라지 마시라. 붕어 싸만코가 한 개에 3천원이다.     

올라갈 때 모노레일을 타려면 2시간을 기다려 정해진 시간에 타야 하지만 내려갈 때는 그냥 줄서서 타면 된다.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티켓을 살 수 있는데 왕복 티켓밖에 판매하지 않는다.

다리 아픈 분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그렇게라도 표를 끊고 타시더라.



대륭시장이 바로 옆이지만 평일이라 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숙소로 가야지.

숙소가 강화도 맨 아래 동막 해수욕장 근처라 교동도에서 한 시간이 걸린다.

강화도 산들은 낮으면서도 둥글둥글하다.

한적하고 조용한 도로들.

강화도는 매번 새롭고 좋다.

주말에 막히지만 않으면 좀 더 자주 올 텐데. 

워낙 교통량이 많아 평일 아니면 방문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펜션에 도착하니 오후 5시.

정원이 아름답고 바로 앞이 바다라 선택한 숙소다.

숙소 사장님이 한창 정원을 가꾸고 있다.

바비큐 할 수 있는 야외 테이블도 있지만 누가 굽고 누가 치우나(남편이 그립다).

밀키트로 된 꼬치 어묵탕을 사왔다.

아빠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엄마와 나는 정원과 바닷가 산책.

바닷물이 들어온다.

바람도 함께 들어온다.


집에서 가져온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휴식.

아빠도 맛있게 드신다.

크림빵과 보름달 빵도 사왔는데,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책 읽으려고 두 권이나 챙겨왔는데 책은 무슨.

와인에 취해 9시에 잠들었다.     



마니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과 감자전을 먹는다.

건강한 재료로 만들어서 건강한 맛이 난다.

400년이 넘은 고택을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마니산 산채.

된장찌개가 특히 맛있더라.     


동막 해변으로 이동해서 맨발걷기.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여기저기 보수중이라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쇠락한 바닷가 느낌.

태양은 뜨겁고 바람은 시원하고. 살 타기 딱 좋은 날이다.

남편이 내 얼굴 못 알아보면 어쩌나.



분위기 좋다는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기로 한다.

좁은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카페다.

펜션을 리모렐링 한 거 같다.

입구는 매우 좁은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딴 세상이 나온다.

내부를 우아하게 꾸며놓았다.

방마다 에드워드 호퍼 그림이 걸려 있다.

내부를 통과해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데 정원은 또 얼마나 아늑한지.

비밀의 화원 같은 느낌.

바로 앞이 바다라 오션 뷰가 그대로 펼쳐진다.

야외에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잘해 놓긴 했네.

토크 라피.


엄마는 이렇게 세련된 카페는 처음이라며 좋아하신다(아니거든요. 그동안 좋은 카페를 수없이 모시고 갔는데 그런 섭섭한 말씀을).

어찌되었건 엄마가 만족했으니 다행이다.

자몽티가 8천원이지만 카페가 마음에 든 엄마는 그 정도는 받아야지 하신다.

빵도 맛있다.     


산과 바다 실컷 봤으니 집에 가자. 

돌아오는 길도 역시 복잡하긴 매한가지.

인천을 통과해야 하는데 큰 트럭들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우리 붕붕이처럼 작은 차는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인천 사는 남편 지인이 작년에 차를 BMW로 바꾼 이유도 항구를 오가는 트럭들이 워낙 많아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무사히 집에 도착하니 오후 5시.

1박 2일동안 엄마와 싸우지 않았기에 성공적인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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