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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21. 2024

유머


정선 아우리지 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중이었다.

시골길이라 오가는 차가 없어 느긋하게 가고 있는데 앞쪽에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가까이 가봐.

표지판에는 무언가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왜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는가? 

남자 머리 위로 돌멩이 몇 개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지금 강변을 따라 걷는 중이다. 

노을 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막 기분 좋아지려 하는데 바위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니 놀랄만도 하다.


‘뼝대 돌 떨어짐 주의’라는 글자가 검은 바위에 세로로 적혀 있다.

뼝대는 바위 절벽을 뜻하는 강원도 사투리다.

한마디로 ‘낙석주의’ 표지판이다.     

딱딱한 단어를 쉽게 풀이한 것도 마음에 드는데, 뭉크의 그림을 가져오고 돌까지 붙여 작품을 만든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누가 이런 멋진 표지판을 세워 놓았을까? 

표지판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웃음을 터트렸을까?     


어느 날은 안양 예술공원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앞차 중 하나가 우리와 차종이 같았는데 왼쪽 뒤꽁무니에 두 글자가 적혀 있다.

저거 뭐라고 적힌 거야? 좀 더 가까이 가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요를’ 이라고 적혀있다.

요를? 자기야 저게 무슨 뜻일까? 말하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요를’ 단어 아래에 차종이 적혀 있었다.

‘RAY' 

요를레이 요를레이 요를레히히~~


우리와 똑같은 자동차지만 그에게는 유머가 있었다.

차 뒤꽁무니에 단지 두 글자를 붙임으로써 일반 경차와는 차원이 다른 깜찍 레벨로 상승해 버렸다.     

뜻밖의 상황에서 재치 있는 문구를 만날 때 즐거움은 커진다.

유머를 작성한 당사자도 기분좋고 글을 읽는 상대방도 기분좋다.

누군가를 비꼬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면서, 유머까지 살짝 얹는 건 어려운 일이다.

유머는 타인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이다.

일상에 반짝반짝 윤기를 더해주는 유머, 다른 이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문장을 놓고 한번 더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려는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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