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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May 23. 2024

두더지 잡기


어느 종교나 모임이 있다. 

중등부 모임, 청년부 모임, 장년부 모임 등등.

대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주중 구역이고 매주 목요일에 모임이 있지만, 글을 쓴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번만 참석한다.


올해 5년 만에 구역이 바뀌어 새로운 분들과 교제를 시작했다.

그전 구역에서는 내 또래가 많았는데 이번에 속한 구역은 50대가 대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대화 주제도 육아보다는 본인 건강이나 부모님 간병 얘기가 많다.    

 

“아침마다 눈 뜰 때마다 생각한다니까. 오늘은 어디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려나. 어느 날은 발이 아프고, 어느 날은 팔이 아프고. 며칠 전에는 뜬금없이 등이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했어. 황당하다니까.”


듣고 있던 분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주에 자기도 똑같은 증상으로 누워 있었다면서. 

어머. 나도 그랬는데.

매일 매일이 두더지 잡기네.

50이 되면 몸이 한번 크게 꺾이는데, 거기에 갱년기까지 겹치면 끝난 거지.     

다른 구역원도 자신의 사례를 덧붙인다.


“맞아. 근데 아픈 게 눈에 보이지 않고 나만 느끼는 거니까 더 힘들어. 

남들이 보기엔 멀쩡하거든. 차라리 큰 병이면 사람들이 이해라도 하는데 아픈 게 달라지고 매일 어딘가 조금씩 아프니까 남들이 자꾸 그러는 거야. 

운동 해라. 고기 먹어라. 영양제 보충해라. 

안하는 게 아니거든. 남들이 보기엔 멀쩡한데 나는 몸 한구석이 불편하니까 우울감도 오고 그래. 아이들에겐 병약한 엄마로 기억되기 싫어서 일부러 쾌활한 척 한다니까.”     


최근에 치매가 온 엄마를 집에서 모시게 된 분도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시어머니가 치매 걸리셨을 때도 내가 모셨잖아.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 그래서 이번엔 정말 안하고 싶었어. 형제자매들도 요양원에 보내자고 하는데, 기도하다보니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마다 엄마 옆에서 자는데 새벽마다 깨워서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하니 잠 못자는 게 가장 힘드네. 그래도 내 한계까지는 도전해 보고 싶어.”   

  

사실 이런 건 그들에게 아무 일도 아니다.

더 큰 아픔과 인생의 굴곡이 있지만 함부로 적을 수 없을 뿐이다.

그분들은 나보다 10년 먼저 태어났을 뿐인데 사연을 듣다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인생의 밝은 쪽을 보며 살기 위해 매일 두더지를 잡는 그녀들.

한손으로는 끊임없이 두더지를 잡으면서도 다른 한손으로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그녀들.     


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며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불평금지     


모든 병을 극복할 수는 없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병에 굴복하여 생활을 흐트러뜨리고 만다그렇게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불굴의 힘을 갖추고 있는데도 스스로 그것을 망각하거나 약화시켜 버린다설령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고그런 가운데서도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웃음의 치유력노먼 커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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