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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l 30. 2024

제철엔 제철음식


올해 첫 빙수를 먹었다. 

쿠폰을 선물 받았는데 빙수 매장이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빙수를 먹으러 한여름의 열기를 가로질렀다. 

늦은 오후였다. 안양천에 사람이 없었다. 

물까치와 송사리, 물오리 몇 마리만 보였다. 걷기엔 더운 날씨였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모여 있었다. 먹구름이 해를 가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바람에 밀려 구름이 동에서 서로 떠내려갔다. 


어제 밤에 우산 없이 학의천을 산책하다 물벼락을 맞은 터였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나와 남편은 아직까지 네이버 날씨를 신뢰하는 사람들에 속한다. 

우리는 먹구름이 흘러가는 방향을 주시하며 빠르게 걸어갔다. 


빙수가게는 호황이었다. 테이블마다 북적였다. 

배달을 하는 라이더 분들도 쉴새없이 들락거렸다. 

치즈케익과 애플망고가 잔뜩 올라간 빙수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강렬한 단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토록 단 음식은 오랜만이었다. 

스타벅스 조각 케이크나 허쉬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은은한 조청이라면 설빙 망고빙수는 달고 달고 달고 단 설탕 그 자체였다. 

이마에 맺힌 땀이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한여름의 습기를 빙수가 싹 가져가버렸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마신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신혼 초에는 집에서 빙수를 만들었다. 

핸드밀처럼 생긴 수동 빙수기계를 사용했다. 

빙수 통에 얼음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하얀 얼음이 그릇에 수북이 쌓였다. 

얼음 위에 젤리, 떡, 팥, 후르츠, 연유를 얹으면 근사한 팥빙수가 되었다. 

직접 팥을 삶기도 했고 떡집에서 산 인절미를 잘라 넣기도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얼음을 갈고 있었고 빙수 기계는 고장이 났다. 

그제야 우리는 빙수를 과하게 섭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후로 빙수는 밖에서 사먹는다. 


절기와 제철에 맞는 음식을 챙겨먹으면 사는 게 좀 더 재밌어진다. 

초복에는 수박을 먹었고 중복에는 삼계탕을 먹었다. 

말복에는 누룽지 백숙을 먹을 예정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주에 먹을 빙수의 종류와 크기에 대해 의논했다. 

나는 빙수를 두 그릇 먹자고 제안했고 남편은 한 그릇만 시킨 후 사이즈를 한 단계 올리자고 했다. 


여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여름이 가기 전에 맛봐야 할 빙수가 많이 남았다. 

비산동 팥선생도 가야 하고 롯데리아 팥빙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마가 길다보니 빙수 첫 개시일이 늦어졌다. 마음이 급하다. 

빙수가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놓치지 마시길.      


좋아하는 것들 앞에 제철을 붙이자 사는 일이 조금 더 즐거워졌다제철 산책제철 낭만제철 여행제철 취미제철 만남제철 선물제철 휴식제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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