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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Aug 01. 2024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중년 남성이고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 

그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화분에 물을 주고 세수를 한 후 작업복을 입는다. 

집 앞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시며 봉고차 시동을 켠다. 

카세트에서는 히라야마가 고른 올드 팝이 흘러나오고 도쿄의 아침은 막 시작되고 있다.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는 수도승처럼 보인다. 

더러워진 마음을 명상으로 씻어내듯 얼룩진 변기를 닦고 또 닦아 깨끗하게 한다. 

점심은 편의점 샌드위치와 우유다. 

매일 같은 장소에 앉아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며 빵을 먹는다. 

필름 카메라를 꺼내 나무를 찍는다. 

나무를 찍는 행위 역시 그가 매일 하는 의식 중 하나다. 

퇴근 하면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간다. 

몸을 씻은 후 그가 향하는 곳은 지하도에 있는 저렴한 선술집이다. 

간단한 안주 요리를 벗 삼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동일한 루틴으로 하루를 산다. 


주말엔 좀 다르려나? 

주말에 히라야마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방 청소를 한다. 

일주일간 쌓인 빨래를 들고 코인 세탁소에 간다. 

사진관에 들려 필름을 맡기고 헌책방에서 책을 고른다. 

저녁엔 여주인이 운영하는 단골 선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일주일을 마무리한다. 

그는 21세기를 살아가지만 삶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다. 

그가 관계 맺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며 하루 중 대부분을 침묵 속에서 살아간다. 

유튜브도 보지 않고, 쇼핑몰도 가지 않고, 친구나 애인도 없는 그의 삶은 지루하면서도 만족스러워 보인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기에 태평하다. 

화려함의 도시 도쿄에서 히라야마는 고독을 선택했다. 

그는 ‘순간’에 집중하며 ‘완벽한 날들’을 살아간다.


핸드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에겐 지루한 시간이 많았다. 

친구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기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독서밖에 없었다. 

책이 없다면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공상에 잠겨야 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 침묵이 어색하다면 아무 말이라도 던져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골목이나 숲길을 산책할 때 할 수 있는 건 걷는 행위뿐이었다. 

필름 카메라를 챙겨오지 않은 이상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해도 마음속에 간직할 뿐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직접 식당에 가야했다. 

집에서 전화로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은 짜장면과 통닭, 피자 정도였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도 많지 않았다. 

영화를 보려면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와야 했다. 

집 컴퓨터로 간단한 게임을 할 수는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어울리려면 오락실이나 PC방에 가야 했다.

TV를 보다 지루해지면 책을 펼쳤고 책을 읽다 지루해지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는 끝말잇기나 가위바위보 정도였다. 

창밖의 농촌 풍경을 보며 지루해했고, 부모님은 아이들이 지루하도록 놔둘 뿐이었다. 

지루함과 심심함은 일상의 일부였다. 


이제 우리 손에는 작은 컴퓨터가 들려 있다. 핸드폰은 지루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블로그, 쇼핑몰, 이메일, 모바일 게임, 챗 GPT가 24시간 우리를 반겨준다. 

어서 오라고, 또 오라고, 보고 싶다고 애원하고 재촉한다. 빈틈을 주지 않는다.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핸드폰은 손에 들려 있다.

운동을 하거나 길을 걸으며 핸드폰을 본다. 

다들 바쁘고 멋지고 정신없고 활기차게 살아간다.


내 하루는 가끔 지루함과 여유 사이에 머문다. 

‘순간’에 머무르며 삶을 음미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무료함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핸드폰을 쓰지 않으려 애를 쓴다. 

핸드폰을 의지할 때도 있다. 요리나 청소 할 때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귀로 들으며 움직인다. 

야채를 다듬고 음식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는 집안일을 하며 재즈나 클래식을 들었다. 이제 음악은 식사 때만 듣는다. 


새벽 배송을 받을 때마다, 쇼핑몰에서 고른 물건이 다음날 도착할 때마다, 순식간에 돈을 송금할 때마다, 티켓 예매를 할 때마다 핸드폰이 있음을 감사한다. 

하지만 핸드폰이 인간의 지루한 상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그 기회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해서 걱정이 된다. 아이 때만이라도 지루한 시간을 경험해야 할 텐데. 

심심하다는 느낌을 맛봐야 할 텐데. 단조로움을 견디며 상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텐데. 

스크린 속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직접 바깥에 나가 경험해 봐야 할 텐데. 

요즘 사람들은 지루할 틈이 없어 걱정이라고 하니 남편이 대답한다.


“30년 뒤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마 우리보고 그럴 걸.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때 뭐하고 노셨어요? 엄청 심심하셨겠어요.”          



예전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의 순간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삶은 지루했고지루함이 삶이었으며지루함은 밀밭에도 물레방아에도 내려앉아 있었다. ---

우리의 마음이 방황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따라간다출력을 생성하려면 입력을 꺼야한다그러나 입력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패멀라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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