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Aug 06. 2024

중년 이후의 삶


오랜 친구 두 명이 40대가 넘어가니 퇴직 이후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퇴직하면 무얼하지?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둘 다 성실하게 일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 돈에 대한 염려는 적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관한 질문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니? 배우고 싶은 건? 좋아하는 게 뭐야? 

친구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은 찾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한다. 

일만 하다 정신 차려 보니 이렇게 나이 들어버렸다고, 아이들은 이제 부모보다 친구와 학원이 더 중요해졌다고, 아내와도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 사는 게 늘 똑같다고.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의 주인공들은 결혼한 40대 남자이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는 화자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공허함이 있다. 

가족의 안전에 대한 불안, 가장으로서의 중압감, 지나가버린 젊은 시절을 향한 안타까움,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는 욕망, 꿈을 이루지 못한 슬픔. 

화자들은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면서도 뭔지 모를 상실감을 느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것을 깨닫다니.’(라인벡) 


앤드루 포터는 중년의 심리를 담담하면서도 예리하게 묘사한다. 

마흔세 살 된 내 친구들도 소설 속 화자와 같은 마음일 거다.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난감함, 40년 넘게 살았는데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으로 서성이고 있다. 


포터는 동시대인의 삶을 놀랍게 포착했지만 그가 바라보는 중년의 삶과 실제 내가 느끼는 삶의 결은 살짝 다르다.

젊을 때도 좋았지만 20대나 30대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오늘 하루가 소중하다는 걸 아침에 눈뜰 때마다 생각한다. 예전엔 깨닫지 못했던 감사함이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쳤던 불안, 질투, 욕망, 초조함도 가라앉는다. 

나이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고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도전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후회 대신 지금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소설을 지배하는 전반적인 감정이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애도라면, 내 삶을 지배하는 전반적인 감정은 ‘다가올 것들’에 대한 희망이다.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열심히 살아왔기에 아이들을 키워내고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고. 

일할 수 있는 튼튼한 몸이 있으니 행운이라고, 지금이 새로운 꿈을 꾸기에 가장 좋은 나이라고, 

배우자와 공통된 취미를 가져 보라고, 좋아하는 걸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 이것저것 경험해 보라고, 

지금부터 추억을 만들면 그것이 새로운 과거가 될 거라고.


우리에겐 아직 수많은 날들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고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상실과 발견캐스린 슐츠

매거진의 이전글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