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자와 모과 Aug 08. 2024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사당역에 파스텔시티 라는 건물이 있다. 

지하 2층에 영풍문고가 있는데 광화문 교보문고처럼 지하철 역사와 연결 되어 있다. 

서점 앞 로비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만남의 장소다. 

서점 안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지하 1층에 유니클로가 있다. 

1층에는 4군데의 카페가 있고 2층부터 6층까지는 전문 식당으로 채워져 있다. 


가게마다 공간이 널찍하고 천장이 높다. 

식당은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어 탁 트인 느낌이 든다. 화장실도 깨끗하다. 

각 층마다 중앙에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책 읽고 밥 먹고 차와 술 마시는 게 한 건물 안에서 해결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춥거나 더울 때 친구를 만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도 없다. 

위치도 좋다보니 파스텔시티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특히 어르신들 비중이 높은 편이다.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이 카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에게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음식 값을 지불할 여유가 있으며,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세 가지 중 하나만 부족해도 삶이 휘청거린다. 


어느 날 친구를 만나 3층에서 밥을 먹고 1층에 있는 카페로 내려갔다. 

샹들리에가 달린 카페 안은 이미 어르신들로 가득했다. 보기 좋은 광경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말했다.


“아까 화장실 갔는데 화장실 청소하시는 분이 청소도구함 놓는 칸에서 핸드폰 보시며 쉬고 계시더라. 그런 모습 보면 왠지 마음이 아파. 여기 있는 어르신들 보니 생각나네. 같은 연배일텐데. ”


친구가 어떤 의미로 얘기하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그 건물 청소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동정이 담겨 있었다. 

미화팀도 시설관리팀처럼 하나의 직군이다. 

같은 건물 안에서 서류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요리 하는 사람도 있고, 청소하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건 괜찮고 화장실에서 일하는 건 창피한가? 청소는 하찮은 일인가? 

월급이 적어서? 그렇게 따지면 무명 작가만큼 부끄러운 직업이 또 있을까? 


직접 경험한 일들을 논픽션 형태로 써내는 한승태 작가가 이번에 새 책을 냈다. 

<어떤 동사의 멸종>이다. 입담이 대단하다. 

이 책에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일터 중 일부를 소개한다. 

전화 상담사, 물류센터 작업원(까대기), 주방 보조원, 건물 청소원이다. 

청소 일을 구할 때 그는 나이 때문에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40대인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대부분 60대를 원했다. 면접은 ‘이거밖에 못 주는데 괜찮겠어요?’ 라는 분위기로 시작해서 마무리되었다. 

면접 때 작가는 이런 말을 들었다. 


“근무시간은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인데 중간에 쉬는 시간이 많아서 일이 힘드시진 않을 거예요. 사실 여기 젊은 친구들이 청소 일 한번 해보겠다고 왔었어요. 왔는데...여기 일 뭐 힘들 거 없어요. 청소기 돌리고 유리 닦고 그런 건데 이제 어린 친구들이 이런 일 하기 좀 부끄럽고 쪽팔리고 그랬던 거겠지. 하루이틀 하고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책에서도 적어놓았듯 청소일 하시는 분들은 절박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배운 게 없어 오는 것만이 아니다. 

퇴직하고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해서 오는 사람도 있고 크게 사업을 하다 망해서 오는 사람도 있다. 

내 친구 어머님도 평생 일을 하시다 70세에 은퇴 하셨다. 

이제는 쉬셔도 되는데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다며 건물 청소 일을 구하셨다. 

청소하러 가면 친구도 많고 일도 편해 좋다고 하신다. 

휴게실에서 각자 가져온 간식과 점심을 나눠먹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눈다. 

친구 어머님은 청소해서 받은 월급으로 레스토랑도 가고 카페도 가고 해외여행도 간다. 장도 보고 저축도 한다. 


건물 청소는 나도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쓸고 닦고 정리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지저분한 공간을 땀 흘리며 깨끗하게 치웠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 있다. 

호텔에 머무를 때마다 객실 청소하는 분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미래에 내가 청소일을 하게 된다면 친구는 나를 안타깝게 여길까? 


지인 중에 노가다를 하는 분도 있고 공장에서 일하는 분도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보며 불쌍하다고 혹은 젊을 때 성실하게 살지 못해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충실히 살고 있다. 나나 잘하자. 

그리고 공공 화장실에서 우리가 할 일은 휴지를 휴지통에 넣고 변기 뚜껑을 잘 닫고 손에 묻은 물기를 아무데나 탁탁 털지 않는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청소가 우리에게 부단히 일깨워 주는 것은 성취의 감각이다청소는 뒤돌아볼 때 의미를 찾게 되는 일이다내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부끄러울 순 있겠지만 열심히 해서 끝마친 후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자괴감은 들지 않는다우리는 그날그날의 결과물에 떳떳할 수 있었고우리가 속한 작은 세계 속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어떤 동사의 멸종>

매거진의 이전글 중년 이후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