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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by 유자와 모과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그림.jpg


최근 이사한 집이 광화문과 멀지 않다. 어제 모과가 당직이라 혼자 잤다.

아침에 회사에서 퇴근하면 뭘 하고 싶은지 모과가 물었다.

떠오른 건 팬케이크. 세종문화회관에 오리지널 팬케이크가 있잖아.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나갈 준비를 한다.

냉장고에서 놀고 있는 딸기, 한라봉, 사과, 당근, 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함부로 배를 채워서는 안 된다.


햇살이 내린다. 매화는 피지 않았지만 찬 바람 속 봄이 느껴진다. 손에 잡힐 듯하다.

출근 시간이 지나 거리는 다소 한가하다.

환자복을 입고 서성이는 환자, 건강검진을 받으러 들어가는 부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을 지나친다.

관광객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신호등 3개를 건너 식당에 도착한다. 30분이 걸렸다.


평일 오전이라 테이블이 한적하다.

기다리지 않고 입장한 건 처음이다. 쾌적하다.

펜케이크 하우스답게 가장 맛있는 메뉴는 팬케이크.

기본 메뉴는 팬케이크 6장이다. 다른 음식을 골라도 팬케이크 3장이 사이드로 나온다.

나는 혼자 4장까지 먹을 수 있다.


버터밀크 팬케이크 6장을 고른다.

모과는 팬케이크 3장에 달걀, 베이컨이 포함된 잉글리시 블렉퍼스트를 선택한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는 체인이다.


30대 초반, 가로수길점에서 처음 맛보았다.

이른 주일 아침이라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잘못 찾아온 건 아닌가 걱정하며 식당 문을 열었는데 사람들로 복작복작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기줄이 생겼다.

더치 베이비와 팬케이크를 먹으며 생각했다.

그동안 먹었던 팬케이크 중 최고구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 맛을 기대하며 팬케이크를 주문하곤 했지만 어디서도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사람 입맛은 다양하니 내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온 지 2년 되었다는 남자 청년과 얘기를 나누었다.


- 서울 와서 뭐가 맛있었어요?

- 맛있는 데가 진짜 많더라고요. 그중에서 선배가 사줬던 팬케이크가 있었는데 그게 제일 맛있었어요.


그게 어디인지는 잘 알겠지.

감격한 나는 그에게 오리지널 팬케이크를 대접했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는 1953년 미국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고 한다.

지금도 본점은 여전히 운영중이다.

팬케이크 반죽의 핵심 재료인 사워도우 스타터는 감자를 5일 동안 발효한다.

거기에 달걀, 우유, 밀가루 등을 넣고 48시간 숙성 과정을 거친다고 적혀 있다.

그 정도로 노력하니 맛있을 수밖에.


여기서는 메이플 시럽도 따뜻하게 제공한다. 세심함이 마음에 든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따뜻한 메이플 시럽을 둥근 팬케이크에 둥글게 뿌린다.

말랑해진 버터도 바른다.

입안 가득 넘치는 풍미.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빵이 사르르 녹는다.

커피도 무한 리필 되지만 한 잔이면 족하다.

베이컨 수준도 남다르다. 적당한 두께의 고기를 적당히 바삭하게 구웠다.


이삿짐을 풀고 정리하느라 애를 썼던 몇 주가 지나갔다.

고생 끝에 팬케이크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가 있다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마음 같아선 주말마다 이 행운을 누리고 싶다.


그러기엔 가격이 만만찮다.

둘이 먹으려면 4만원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들처럼 살 수는 없으니 가끔 여행가듯 방문하기로 한다.

맛집도 자주 방문하면 더 이상 맛집이 아니다.


식사를 마쳤다. 비어 있던 테이블이 어느새 가득 찼다.

오전 11시. 모과와 팔짱을 끼고 밖을 나선다.

서울 시립미술관에 들린 후 청계천을 걷기로 계획했었다.

광장시장까지 산책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최고의 팬케이크를 먹었으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미술관은 다음에 가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하우스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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