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녀가 된 기분이다.
다음달은 꼭 절약해야지 적어놓고 다음달 되면 변명하기 바쁘다.
내 돈 내가 쓰는거니 아무도 참견하지 않지만 마음 속에서 가끔 외침이 들려온다.
‘너 소비단식 한다며. 이번달도 망한거니?’
변명하자면 오월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봄을 향한 애정도 커진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꽃 피고 새 노래하는 계절, 걸어도 좋고 앉아도 좋은 계절이 오셨다.
귀한 손님 맞느라 바빴다. 책 읽을 시간도 아까웠다. 글은 마음속으로 썼다.
아까시 꽃이 떨어지며 찔레꽃이 피어났다.
길가에 핀 장미 향도 맡아야 했다.
버찌와 오디 열매가 바닥을 얼룩덜룩 물들이는 모습도 구경해야 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지나는 사람들만 봐도 좋았다.
저녁이 되어도 여전히 환해 느긋하게 놀 수 있었다.
모과 손을 잡고 골목골목 돌아다녔다.
오월에 가면 좋을 야외 카페 몇 곳을 발견했다. 맛집은 그보다 많았다.
서촌과 용리단길 상권이 몇 년 사이 규모가 커져 활기 넘쳤다.
익선동과 경의선 숲길은 여전했다.
삼청동과 신촌은 옛 추억을 끌어안은 채 불꽃만 아른거릴 뿐이었다.
도쿄 여행도 다녀왔다.
20인치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끌고 갔다. 갈 때 무게가 14kg였는데 올 때 무게도 14kg였다.
먹는데 돈을 다 썼다는 얘기다.
가장 큰 지출은 숙박비로 나갔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놓인 방이 4일에 60만원이었다.
모과는 도쿄가, 아니 일본이 너무 익숙해졌다며 10년 뒤에 오자고 했다.
체크카드를 만드는 데 3주가 걸렸다.
오월을 정성껏 모시느라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됐다.
6월부터 시작해 보겠다.
절약한 부분은 장보기.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아 장보기를 최소화했다.
과일만 샀다. 냉장고에 달걀 한 알도 남아있지 않다.
냉장고가 텅 비니 시각적으로는 아름답다.
냉동실에는 말린 옥돔 두 마리, 말린 표고버섯이 있다.
냉장고에는 치즈, 참치캔, 김치, 과일이 남았다. 한끼 정도는 먹을 수 있겠다. 장을 볼 때가 되었다.
결혼 후 식재료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구입해 왔다.
대형 마트에 가면 압도적인 물건에 지칠 때가 많아 가격이 더 비싸도 온라인으로 샀다.
이번에 이사 온 집이 시장과 가깝다.
그동안 과일 몇 번 산 게 전부다.
시장에서 장 보는 건 어떨까?
온라인보다 더 절약될까? 더 신선하고 맛있을까? 좋은 정육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장바구니를 들고 가보려 한다.
유월 한 달 시도해 보겠다.
유월도 오월만큼 귀한 계절이라 나들이 계획이 많긴 하지만 오월만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