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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소비단식

by 유자와 모과
평촌 시나몬롤.jpg


해야 할 일 많은 한달이었다.

친척 결혼식과 장로 임직식 참석을 위해 2주 연속으로 대전과 양양을 내려가야 했는데 주말이라 차가 막혀 고생했다.

양양에서는 호텔에서 1박을 했음에도 시간이 나지 않아 바다 한번 보지 못하고 올라왔다.

친척들을 만나 반갑긴 했다만.


주중에는 밴드 공연 연습으로 바빴다.

공연을 앞두고는 매일 합주 연습을 했기에 피로는 점점 쌓여만 갔다.

11월 절반이 지나고서야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되었고 그때부터 일주일간 약한 몸살로 꼼짝없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어야 했다.


모과는 모과대로 회사일이 바빠 휴가도 내지 못했다.

주말에는 둘 다 에너지 방전으로 집에만 머물렀기에 외식비로 나간 돈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왜 카드값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답은 추운 날씨 때문이다.

날이 추워지니 몸이 그에 맞는 에너지를 원했다.

피곤하면 피곤한데로 먹고 싶은 게 있었고 아프면 아픈대로 먹고 싶은 게 있었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찐빵, 붕어빵, 우동, 떡, 아이스크림, 치즈 같은 군것질로 가득찼다.

단호박, 표고버섯, 고구마, 알배추 같은 작물을 쪄먹거나 구워먹기 좋은 계절이라 평소보다 야채 구입량도 늘어났다.

홍차도 얼마나 맛있던지 평소보다 많이 마셨더니 모아 두었던 차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찻잎도 좀 사야 했다. 추우면 밖에 나가지 않아 돈을 덜 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을수록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졌다.

도서관에서 요리책도 잔뜩 빌려왔기에(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도해 볼 요리도 여럿이었다.

그러니 수시로 새벽 배송이 도착할 수밖에. 움직이고


싶지 않은 날에도 뒷산을 오르거나 걸었기에 가까스로 뱃살 증가는 막을 수 있었다.


코트를 입어야 할 계절이 되면 사고 싶은 게 딱 하나 있다.

베이지와 카멜 사이의 색감을 지닌 롱코트 한 벌이다.

몇 년째 ‘올해는 꼭 사야지’ 하지만, 매번 마음에 꼭 뜨는 재질과 디자인의 코트를 찾기 어려워 다음 해로 미루었다.

베이지 코트는 매장에서 직접 입어봐야 한다.

본인 얼굴색과 어울리는 색감을 찾아야 한다.

밝은 색이라 몸매가 잘 드러나기에 디자인도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검색하다 그야말로 마음에 딱 드는 코트를 발견했다.

이월 상품인데도 160만원.

이렇게까지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옷은 없다.

하지만 이 코트는 몇 년간 내가 원했던 디자인과 품질, 색감을 갖추었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카멜 코트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다.

거기서 내가 원하는 라인은 300만원은 줘야 한다.

그러니 저 가격이 비싸다고 말할 수는 없다.


10월에 갑자기 내야 했던 큰 비용만 아니었다면 매장에 가서 입어라도 봤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살 돈이 없다.

할부로 긁으면 되지 않냐고? 할부는 쓰지 않는다.

모든 금액은 일시불로 결제한다.

그래야 일시불로 살만큼 감당이 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게 된다.

먼 훗날 자동차를 바꾸게 될 때도 전액 현금을 지불하고 사려 한다.

양가 부모님이 늘 그러셨듯이.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코트는 2주가 지나자 품절 되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나보다.

글을 쓰다보니 베이지 코트는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내게 주는 선물로 갖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식 계좌에 목표로 한 금액이 있는데 그 금액을 달성했을 때 사는 건 어떨까?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얼죽코’에 속하는 사람이다.

꿈에 그리던 코트를 갖게 된다면 매년 겨울마다 즐거워하며 꺼내입겠지만, 없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다.

이미 멋진 코트가 몇 벌 있다.

그게 문제다.

없어도 되는 걸 갖고 싶은 마음.

몇 년째 겨울만 되면 갖고 싶어지는 마음.

욕심은 끝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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