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자전> 이병철
*어떠한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리느냐에 있다.
*사업이란 무엇인가.
한 개인이 제아무리 부유해도 사회 전체가 빈곤하면 그 개인의 행복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 그것이 사업이며 따라서 사업에는 사업성이 있고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또한 사회적 존재다.
*근거지를 경북 대구시 서문시장 근처의 수동으로 잡고, 250평 남짓한 점포를 사서 ‘삼성상회’의 간판을 걸었다. 자본금은 3만원이었다. 1938년 3월 1일, 28세 때의 일이다.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이 박사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약 1년 후인 1948년 8월의 일이었다. 민족의 독립에 이 박사는 한평생을 바쳤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요불굴의 신념, 60만 국군의 창설, 한 미 방위조약의 체결, 능숙한 대미, 대일 외교 등 탁월한 정치가로서의 역량과 공적은 일일이 매거할 필요가 없지만, 특히 6.25 동란에서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구한 이 박사의 공적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일각에는 기업가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기업가가 큰 뜻을 세워 사업보국의 사명감을 갖고 새 일을 착수해도 한쪽에선 사시의 눈으로만 보고자 한다. 기업가들은 탐욕에 빠져 부도덕한 일을 한다고 헐뜯으며 비판하려 드는 것이다.
예술가의 사명감이나 정진에는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으면서, 기업가에 대한 사회의 눈이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두고 빈곤에 시달려 왔다. 그 때문인지 사회규범이나 가치판단의 기준을 빈곤과 결부시켜 빈곤을 청렴과 혼동하고, 오히려 이를 자랑하는 사조와 함께, 마치 폐의봉두가 청렴의 상징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빈곤에 젖은 사조는 시기의 병발을 막을 수 없어, 속담대로 사촌이 논 사는 것을 배 아파하며, 갖은 노력 끝에 입신 양명한 사람에 대해서도 면전에서는 아부하고 뒤돌아서면 험담하게 된다. 희망과 의욕의 상실에서 오는 정신적 허탈 속에서, 남을 위해 희생한다든가 봉사심을 발휘한다는 여유란 찾을 길이 없다. 반면 시기, 모략 등 타인에 대한 가해행위는 널리 횡행한다.
*기업은 자선후생의 단체가 아니다.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 이익으로 종업원에게 충분한 급료를 지불하고,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고, 주주에게 배당하고 그리고 재투자를 한다. 기업이 이익을 얻는 방법에는 적부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이윤추구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기업이 적자를 내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악이라 할 것이다. 자본, 자재, 사람 등 사회의 귀중한 자원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기업부실화의 부담은 결국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내 나이 73세, 비록 인생의 만기이지만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어렵더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이처럼 반도체 개발의 결의를 굳히면서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
1984년 5월 17일, 삼성반도체통신 기흥 VLSI 공장 준공식을 맞이했다. 관계 임직원들에게 나는 충심으로 고마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해방전, 식민지 통치하에서 뚜렷한 국가의식도 없이, 안이한 생활에 젖어 있던 시절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편한 시기였다. 조국의 주권이 회복되고, 사업을 통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식과 신념이 확립되면서부터, 기업가로서의 고초는 시작되었다.
1950년 6.25 동란 중 기업의 회생을 위하여 겪었던 갖가지 고생, 1960년 4.19 후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히면서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나날, 사회가 겨우 안정을 되찾는 듯하더니 또다시 1961년 5.16 등으로 모든 경제인은 죄인시되고 재산의 국가환수 조치가 있는 등, 온갖 정치적 수난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험난한 과정을 끝까지 극복한 사람은 아직도 기업경영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적> 엠마뉘엘 카레르/ 윤정임
*“그가 뭣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모르겠어요. 아니, 알 것도 같아요. 그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죠. 그게 그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지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연극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신한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거짓말쟁이가 그에게 연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속에 찾아올 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그의 뺨에 눈물을 흘리게 할 때, 그것은 여전히 그를 속이고 있는 적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글로 써내는 일은 죄악이나 기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때> 오은
*기억은 기록으로 정확해진다. 기록은 기억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때’를 ‘지금’으로 소환하는 데 기록만큼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없다. 기록은 무엇을 쓸지, 어떻게 말할지, 언제 어디로 갈지, 왜 사는지, 내가 누구인지 등의 질문부터 그때와 지금 무엇이 같고 다른지 내력까지 알려준다.
기록을 들추면 육하원칙이 가득하다. 내가 여기까지 온 궤적이 선명해진다. 고작 단어 하나, 사진 한 장뿐인데도 실타래가 풀리듯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뒤렌마트 희곡선>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김혜숙
*교장 – 정신이 번쩍 드는군. (비틀거리며 일에게 다가간다.) 당신 말이 옳소. 전적으로. 당신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소. 이제 나는 당신에게 한마디 해야겠소. 알프레드 일 씨, 원칙이라 할 만한 말들요. ( 일 앞에 꼿꼿이 선다. 아직 약간은 몸이 흔들린다.) 사람들이 당신을 죽일 거요.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당신 역시 이미 오래전에 알았고. 귈렌 사람치고 그걸 인정하려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유혹은 너무 크고, 우리의 가난은 너무 혹독하오. 나는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소. 나도 그 일에 가담할 거란 사실이오. 서서히 살인자로 변해 가는 나 자신이 느껴지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힘이 없어요. 그걸 알기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소. 나는 두렵소 일 씨. 당신이 그랬듯 두려워요. 아직은 압니다. 우리에게도 한 번은 저런 노부인이 오게 되겠지오. 언젠가는 말이오. 그러면 지금 당신이 겪는 일을 우리도 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아직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곧, 아마도 두세 시간만 지나도 나는 그런 사실을 망각하게 될 거요. (침묵.) 슈타인헤거 한 병 더. <노부인의 방문>
*뫼비우스 – 결코 감수해서는 안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인류의 멸망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세계는 이미 소유한 무기만으로도 피해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내 연구 결과가 불러올 피해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난 고심 끝에 행동한 것입니다. -------
이성이 요구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학문의 세계에서 인식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혔어요. 몇 가지 정확하게 이해 가능한 법칙을 알고 있고, 파악되지 않는 현상들에 나타나는 몇 가지 기본 관계를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지요. 나머지 엄청난 부분은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력으로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어요. 우린 올 수 있는만큼 온 겁니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거기까지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제일선에 서서 힘든 길을 왔지만 아무도 우릴 따르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진공 상태에 빠졌습니다. 우리의 학문은 끔찍해졌고, 우리의 연구는 위험해졌으며, 우리의 지식은 치명적이 되었어요. 우리 물리학자에게 남은 길은 현실 세계 앞에 무릎꿇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우리를 감당하지 못해요. 현실 세계는 우리로 인해 몰락할 것입니다. 우린 지식을 파기해야 합니다. 난 연구 결과를 없앴어요. 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요. <물리학자들>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민승남
*메리 –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 안병률
*“나는 왜 당신이 무조건 곰스크로 가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소리쳤다.
“내 인생 전체는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는 꿈이었다고!” 아내는 침묵했다.
“당신은 고집센 아이처럼 말하는군요.” 그녀는 끝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인생이 의미를 가질지 아니면 망가질지는 오직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이게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왜 직시하지 않는 거죠?”
* “가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을 거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마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의 말은 묘하게도 믿을 만하게 들렸다. 마치 나 자신이 생각해낸 말 같았다.
“보시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겁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햇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
의미없는 삶이 아니에요. 당신은 아직 그걸 몰라요.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맞서 들고 일어나죠.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반항했어요. 하지만 이제 알지요. 내가 원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만족하게 되었어요. <곰스크로 가는 기차>
*“만약,” 화가가 말했다.
“내가 울타리를 넘지 않았다면 나는 작은 소녀를 못 봤을 걸세. 그 소녀를 못 만났다면 소녀의 언니와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겠지. 그녀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강물에 빠지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야. 강물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도 보지 못했을 거고,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더 이상.....”
“이 초라한 집에 앉아 떨지도 않았겠지!” 철학자가 끼어들었다.
“아니야,” 화가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게 아닐세. 그랬다면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지 못했을 거야.”
“살아 있다고?” 철학자는 물었고, 뭔가가 머못속에 갑자기 떠오른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그렇지, 살아 있지.” <철학자와 일곱 곡의 모차르트 변주곡>
<불과 글> 조르조 아감벤 / 윤병언
*숄렘은 유대 신비주의에 관한 그의 책(<유대 신비주의의 주요 학파들>) 마지막 부분에서 요세프 아그논에게 전해 들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하시디즘의 창시자 바알 셈 토브는 아주 힘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면 숲속을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어느 한곳에서 불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면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뀐 뒤 그의 뒤를 이은 마지드 메세리치도 같은 상황에 봉착하면 숲속의 그곳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더이상 불을 어떻게 피워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면 모든 것이 그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시간이 더 흐르고 그의 뒤를 이은 랍비 모세 라이브 사소프도 힘든 상황에 처할 때면 숲속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불도 피울 줄 모르고 기도도 어떻게 드리는지 모르지만 이 장소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처럼 장소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그의 희망은 곧장 현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세대가 또 바뀐 뒤에 랍비 이스라엘 리신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자 성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도금된 의자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불도 피울 줄 모르고 기도도 드딜 줄 모르고 기도 드리는 숲속의 장소도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을 글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랍비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생각하는 여자> 줄리엔 반 룬/ 박종주
*2015년 1월, 올해의 호주인상 시상식에서 로지 배티는 상을 받으려 일어사며 어떤 깨달음에 충격을 받았다. 후보자 명단에 오른 다른 뛰어난 시민들-더 ‘생산적’인 신경과학자, 잘 알려진 여배우, 그리고 입양운동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걸어나가며 왜 자신이 거기 오게 되었는지 정확히 떠올랐다.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단상 앞에 선 순간 선명하게 이를 느꼈고 슬픔에 휩싸였다.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다. 그 일을 곱씹으며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적었다. ‘제가 이 트로피를 들고 박수를 받으며 여기 서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제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종류의 비극을 이겨냈다는 점 때문입니다.“
*궁금해한다는 것은 경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앎이나 앎의 가능성 자체에 스스럼없이 놀라워하는 존재의 가능성을 허락해 준다.
<굳세고 다정하고 가능한 한 많이 웃으며> 마야 안젤루/ 김희진
*우리는 누구나 눈앞에 놓인 길들과 우리가 지나온 길들을 평가해볼 권리와 책임이 있다. 앞날의 길이 불길하거나 가망 없어 보이고, 되돌아가는 길은 마음내키지 않는다면, 의지를 끌어모으고 꼭 필요한 짐만 챙겨 그 길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새로운 선택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난처해할 것 없이 그것 또한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생을 예술로 살아가려면 선뜻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을 기꺼이 참아 넘겨야 한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단점들을 되새겨보고, 결점이 있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당연한 듯 그 언짢은 사람을 영원히 끊어내지는 말라는 얘기다. 몇 번 숨을 들이쉬고 심기를 거스른 그 행동을 당신이 막 저질렀다고 상상해보라.
<사랑의 조건> 제임스 홀리스/ 김현철
*하지만 다름(otherness)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담대한 일이다. 타자를 정말로 타자 그 자체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자신의 개성화를 완수하는 책임을 용감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런 용감한 모습이야말로 사랑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랑이란 그 사람이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받는 일‘과 ’사랑할만한 사람이 되는 일‘을 비교하며 생기는 역설과 씨름하던 내 친구 피터는 나우웬에게 이런 논평을 남겼다.
신이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를 굳이 다른 사람에게 확인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으로 그대로 ‘남은 채’ 그저 손을 내밀기만 하면 타인도 갖고 있을 사랑과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약해지면 우리는 사실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못 되며 타인에게서 사랑을 얻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모든 사랑이 처음부터 신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타인과 사랑을 주고받는 의미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된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고병권
*장애해방 운동이란 게 그렇습니다. 저는 역사에서 장애해방 운동만큼 소박한 요구를 담은 해방 운동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운동이 그리는 해방된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가. 목마를 때 물 마실 수 있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자유롭게 이용하고, 학교에 가서 수업받고, 취업하고, 동네에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그런 세상이 장애인들이 꿈꾸는 해방된 세상입니다. 비장애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일상’을 차별 없이 누리는 것, 이것이 장애해방의 목표입니다. 지금까지 장애인들은 겨우 이런 일들을 위해 죽었고, 겨우 이런 일상을 해방이라고 불러온 겁니다. -----
너는 장애인이니까,집에 남아 있어. 너는 장애인이니까, 시설에 남아 있어. 너는 장애인이니까, 시설에 남아 있어. 너는 장애인이니까, 너는 걷지 못하니까, 너는 듣지 못하니까, 너는 말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제는 훈계하듯이 말합니다. 너는 장애인인 주제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니까, 너는 장애인인 주제에 출근하려고 드니까, 이제부터는 너를 태우지 않을 거야. 너는 승강장에 그대로 있어.
우리가 받은 것은 ‘노력한다’는 말뿐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장애인이 탈 버스는, 열차는 오지 않는데, 기다리면 그 버스, 그 열차가 올 거라는 말을 수 십년이나 들었습니다. ------
우리가 살 곳은 어디인가요?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언제인가요? 바로 지금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서 무려 400일의 아침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400일 동안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시간에, 우리가 있어야 할 장소에, 우리가 말을 건네야 하는 사람들 앞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환영받지 않았지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습니다.
<재채기하다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 깨달은 것들> 악셀 하케/ 배명자
*늦게나마 고통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미쳐버리지 않고 나 자신을 가장 잘 다스리는 방법을 이해하게 되었다. 미쳤다는 것은 정상궤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 자기 자신에게서 비켜나 있는 것, 미치지 않았다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인생이란 자기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진실을 인정하고, 사실을 직시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인정하는 것 또한 인생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내 경우에는 내가 아무리 기자로 살고 싶더라도 그것은 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몸은 그 일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왜 그럴까? 그토록 기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어쩌면 내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다른 누군가가 내가 기자로 살기를 바랐던 걸까?
*몸 없이 어떻게 하겠는가?
몸은 인생을 전체적으로 보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인생은 아름다우면서도 역겹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몸에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몸이 적절히 기능하도록 살 수 있으며, 몸의 기계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정혜용
*처음으로 남자애들과 나 사이에 무시무시한 구렁이 생겨났다. 그때까지 나는 적어도 이런 순간에 그들과 비슷한 것 같았는데, 내가 뭔가를 놓친 것이었다. 난 항의했고, 그에게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다고 거의 소리 지르다시피 했다. 얀. 난 설명할 수 없는 뭔가를 느낄 때 소리를 지르고, 그럴 권리는 없어, 그런 말밖에 못한다. 그놈의 얀이 내게 도덕을 가르치려 들었다. 사람들이 널 그렇게 취급하는 게 싫으면 너 스스로 이 손 저 손 타는 물건처럼 여기지를 말든다. 대번에, 당연히 모든 일이 후회스러워졌다. ---------
그들 역시 규범을 갖고 있었고, 난 그걸 몰랐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훌쩍거렸다. 그런 규범이 있다는 낌새조차 못 알아챘는데, 규범의 바깥에 놓이는 건 몹시 가혹하다. 이와 비슷한 일이 남자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분격한 여자애들이 남자애에게 돌아 버릴 정도로 모욕을 주는 일이?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의미들> 수잰 스캔런/ 정지인
*내가 아프지 않았던 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그 무엇도, 특히 우리가 병리라 부르는 것 중에는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부서지기 쉬우며 유동적이라는 것은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그러나 진실은 그 나이 대의 내가, 심지어 그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삶의 도전들에 대처할 채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하루를 보내는 데 필수적인, 일상의 사소하고 따분한 많은 일에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 내가 환자가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도움을 청할 줄 몰랐고, 친구 사이를 유지할 줄도, 나 자신에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할 줄도 몰랐다. 나 자신을 극복할 줄 몰랐다.
*나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완벽한 도피야, 그렇지 않아?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 미쳐버리는 것. 무너져 내리고, 돌아버리는 것., 전부 다. 환자가 되는 것.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받는 것. 보살핌을 받는 것.
또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완벽한 도피가 덫이 되는 거야. 너도 아주 금방 알게 돼. 탈출하고 나면 그 다음엔 탈출하는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한다는 걸. 그리고 일단 네가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네가 연기하는 역할에 걸맞게 너에게 반응해. 그렇게 너는 덫에 갇히는 거야. 그 덫이 네 삶이 될 수도 있어.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지고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아!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김동훈
*당신이 사리를 분별하여 오늘 할 일에 전심전력하고, 열성적으로,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마치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고 올곧게 유지한다면, 그리고 무엇을 바라거나 피하지도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오늘의 일을 하고, 자신이 한 말을 영웅의 말처럼 진실한 언어로 지켜나간다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니 그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지난 일들에 분노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 지난 일들은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몸이 대가를 치르고 몸이나 마음에 나쁘지만, 반드시 자신만의 침착과 평정을 유지하며 그것을 재앙으로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판단, 충동, 욕구, 혐오는 전부 안에서 생기는 것이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맞지 않으면 행하지 말고 진실하지 않으면 말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