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라탱과 생크림

by 유자와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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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고구마, 단호박은 고마운 식재료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찌거나 구우면 그 자체로 한 끼 식사가 된다.

셋 중 하나는 늘 장바구니에 담긴다.


뒷 베란다 선반을 확인하니 감자가 잔뜩이다. 냉장고엔 치즈가 잔뜩이다.

얼마 전 친구 따라 코스트코에 갔는데, 거기서 내가 사는 건 치즈와 와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자와 치즈를 더하면 그라탱이 된다.

그래서 그라랭을 만들기로 했다.


그라탱(gratin)은 치즈를 덮어 표면을 노릇하게 익히는 상태를 뜻한다.

재료는 간단하다.

감자, 생크림, 우유, 하드 치즈만 있으면 된다.

생크림은 없으니 사러 가자.


동네 마트에 갔더니 생크림을 안 판다.

휘핑크림만 갖다 놓는다고 한다.

휘핑크림은 생크림에 유화제, 설탕, 첨가제를 더한 거다.

풍미가 약하고 맛도 가볍다.

베이킹이나 음료 토핑으로 쓰인다.

다른 마트를 갔더니 이미 다 팔렸다.

찾는 사람이 적어 소량만 갖다 놓는다고 한다.

세 번째 찾은 마트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오면 살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아니 우리 동네 왜 이래? 생크림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임무였다니.

다들 집에서 저희처럼 토마토 파스타만 해 먹나요?

혹시나 해서 편의점도 들렸지만 역시나 없다.

유통기한이 3~4일 밖에 되지 않는 생크림을 갖다놓긴 어렵겠지.


생크림이 없어도 그라탱을 만들 수는 있다.

좀 번거로울 뿐이지.

루를 활용하면 된다.

루는 버터와 밀가루를 1대 1로 약불에서 볶은 걸쭉한 반죽이다.

여기에 우유를 섞으면 베사멜 소스가 된다.

이걸 식빵에 발라 구우면 크로크무슈가 된다.


생크림 없이 감자 그라탱을 만들어보자.

감자 5개, 버터 10g, 밀가루 10g(한 숟가락), 우유 150ml, 하드 치즈 100g이 필요하다.

먼저 감자를 삶아 껍질을 벗긴다.

완벽하게 삶을 필요는 없지만 대충 으깰 정도는 되어야 한다.


냄비에 버터를 약불로 녹이며 밀가루를 넣어 섞는다.

덩어리지지 않게 풀어준 후 우유를 붓는다.

소금과 후추도 톡톡 뿌려준다.

베사멜 소스가 완성되었다.


넓은 용기에 으깬 감자를 편편하게 담는다.

베사멜 소스를 그 위에 바른다.

치즈를 강판에 갈아 소복이 얹어준다.

나는 그뤼에르 치즈와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감자 칼로 깎아 넣었다.

감자만 먹기 아쉬워 달걀 두 알도 그 위에 깨뜨린다.

180도에 30분 구우면 끝이다.


그뤼에르의 쫄깃함과 파르마지아노의 쿰쿰함이 심심한 감자와 잘 어울린다.

왠지 건강해질 것 같은 담백한 맛이다.

베사멜 소스가 생크림처럼 부드럽고 촉촉하다.

달걀도 잘 익었다.

둘이 나눠 먹기 딱 좋은 양이다.

‘생크림 안 넣어도 맛있네, 앞으로 이렇게 해 먹자’고 했는데 다음날 마트에서 딱 하나 남은 생크림을 발견했다.

이 동네에서 귀한 생크림이니 일단 사야지.


이제 생크림을 넣은 그라탱을 다시 만들어보자.

수고가 훨씬 줄어든다.

오븐에서 오래 굽기에 감자를 삶지 않아도 된다.

우선 감자 다섯 개를 껍질 벗겨 얇게 썰자.


냄비에 생크림 150ml와 우유 150ml를 섞어 약불에 끓인다.

둘 사이의 양은 대충 조절하면 된다.

나는 계량컵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냄비에 부었는데 생크림을 더 많이 넣은 것 같다.

소금 후추도 톡톡 뿌리고.


넓은 용기에 감자 슬라이스를 켜켜이 깔아준다.

마늘 몇 알도 편으로 썰어 감자 위에 올려주자.

구운 마늘은 맛있으니까.

끓여놓은 소스를 감자 위에 붓고 치즈를 잔뜩 덮어준다.

180도에 50분에서 60분 구우면 된다.

치즈 표면이 노릇노릇한 갈색으로 변하면 딱 꺼낼 타이밍이다.


생크림 그라탱을 먹어볼까?

와~ 완전 크리미하다.

베사멜 소스보다 깊은 맛이 느껴진다.

훨씬 더 부드럽고 녹진하다.

느끼해서 그냥은 못 먹고 와인을 곁들여야 한다.

지난여름에 만든 매실 절임을 반찬으로 하니 딱 좋다.


그라탱은 집에 제대로 된 하드치즈만 하나 있으면 언제든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손님 접대용으로 근사하다.

하드치즈는 밀봉만 잘하면 오래 두고 사용할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다.

추천하는 치즈는 세상 모든 요리에 쓸 수 있는 파르마지아노 레지아노.

작은 조각으로 잘라 그냥 먹어도 맛있다.

마트에서는 보통 12개월 숙성된 걸 판다.

24개월 숙성된 치즈가 훨씬 쿰쿰하고 맛이 진하다.


오븐에 굽는 요리를 자주 한다면 그뤼에르 치즈도 좋다.

그뤼에르 치즈는 스위스 3대 치즈 중 하나로 퐁듀나 라클렛을 만들 때 꼭 들어간다.

오믈렛이나 파스타를 만들 때도 넣어보자.

에멘탈이나 고다도 훌륭하지만 이런 건 잘 아는 맛이니 새로운 치즈로 시도해 보자.


아참, 집 앞 마트에 생크림을 파는지부터 확인하자.

온라인으로 주문할 거라 상관없다고?

그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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