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오토캠핑을 생각하다

by 유자와 모과

2017년 5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감기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직 여행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가 예약한 다코타 호텔은 족히 100년은 된 4층짜리 건물이라 닭장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도르래가 움직이며 로프를 끌어당기는 방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바깥 문을 열고 다시 안쪽 문을 열어야 작동이 되었다. 내부 또한 어찌나 고풍스러운지 창가 옆 나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19세기 작가였던 제인 오스틴이 된 기분이었다. 고전적이고 우아하게 낡은 숙소는 평소 컨디션이라면 최고의 호텔 중 한 곳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막 감기에 걸렸고 오래된 건물은 샌프란시스코의 매서운 바람을 전혀 막아주지 못했다. 가져온 옷을 모두 껴입고 밤새 끙끙거리며 날을 지새웠지만 아침만 되면 몸을 일으켜 관광에 나섰다. 막판에는 편도선이 심하게 부어올라 남편과 손짓으로 대화를 할 정도였지만 끝까지 계획한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여행이라면 몸이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떠날 수 있지만 자동차나 텐트에서 잠을 자야 한다고 하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화장실이다. 밤에 자다 깼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어찌되었건 밖으로 나가 한밤중에 혼자 공동화장실까지 가야 한다.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도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두툼한 에어매트라 해도 침대 메트리스만큼 푹신하지 않다. 내 뼈는 매우 예민해 아주 두꺼운 매트가 아니면 온몸이 배겨 잠을 잘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캠핑장에서 차박을 하거나 텐트를 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가격이면 아늑한 침대와 화장실이 딸린 숙소를 구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캠핑장에서 잠을 자야 하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일어나 약수를 길어오고, 산속을 하루 종일 걷고, 땡볕에서 장작을 패고, 뗏목을 만들고, 불을 피우고, 물고기를 잡아 요리하는 건 얼마든지 즐겁게 참여할 수 있지만 잠만큼은 침대와 화장실이 있는 방에서 자고 싶다.


1872년 미국 엘로우스톤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자 다른 국가들도 국가 차원에서 자연을 보호자며 국립공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190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캠핑이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1933년에는 최초의 국제캠핑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캠핑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행 방식이다. 캠핑의 사전적 의미는 ‘동지끼리 협동생활을 하자’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 낚시, 등산, 수영 등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서로 도와가며 인간관계를 맺는 활동이다. 캠핑은 집에만 머물던 혹은 갇혀 있던 사람들이 자연에서 호흡하며 정신적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원래 캠핑이라 하면 배낭을 메고 떠나는 백패킹이 원조였지만 자동차가 보편화된 지금은 오토캠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토캠핑은 말 그대로 자동차와 야영의 합성어다. 캠핑을 간다고 하면 자동차에 텐트, 버너, 식기 등 온갖 짐을 잔뜩 실고 캠핑 장소에 도착한 다음 다시 짐을 정성스럽게 풀어 임시 주거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간신히 잠을 청한 다음 또다시 짐을 열심히 포장하여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뜻이다. 짐을 잔뜩 실을 수 있고 험한 길도 잘 달리는 SUV 보급이 확산되며 한국에서도 오토 캠핑족이 늘기 시작했다. 모든 짐을 배낭에 집어넣어 어깨에 짊어지고 떠났던 전통적인 캠핑이 오토캠핑으로 옮겨가면서 캠핑장비 종류도 놀랍도록 발전했고 필수품 범위도 점점 확대되었다. 작년 2월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어 모든 차종을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게 된 이후 캠핑카 튜닝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조리대와 배수시설을 모두 갖춰야 캠핑용자동차라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취사, 세면, 개수대, 탁자, 화장실 중 한 개의 시설만 더 있으면 캠핑카로 인정이 된다.


얼마 전 수원 메쎄 고카프(GOCAF)에서 열린 국제 아웃도어 캠핑 박람회에 다녀왔는데 남들처럼 캠핑을 가려면 우리 집 부엌살림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김수자 설치미술가의 ‘보따리 트럭’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예전에는 이사를 위해 보따리를 바리바리 쌌다면 요즘은 야외에서 하룻밤을 자려고 짐을 바리바리 싼다. 텐트 안에서 프로젝터로 영화를 보고 게임기로 게임을 한다. 텐트 안에 난로와 에어컨도 설치한다. 차에서 잠을 자는 차박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잠을 자기 위해서는 평탄화 작업부터 시작하여 각종 물품이 필요하다. 자동차 창문에 커튼도 달고 꽃병에 꽃도 꽃아 놓아야 한다. 붕붕이도 차박이 가능한 레이밴이 있는데 기본 옵션만 달아도 천 만원을 더 내야 한다. 오토 캠핑이 언제부터 이렇게 화려해졌지?

남편 후배 중 캠핑을 좋아해 자주 캠핑을 떠나는 친구가 있다. 하루는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는 데 옆집 텐트가 너무 근사하더란다. 텐트 안에서는(들리는 소리로 추측해 보건대) 남자가 산책을 가자고 조르고 있고 여자는 귀찮다며 혼자 가라고 한창 다투는 중이었다. 후배는 옆집 텐트 정보가 너무 궁금해 혹시나 싶어 인스타그램 태그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캠핑장을 검색했는데 최근 글에 바로 그 텐트가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텐트 안에 있던 여자는 일분 전 이런 글을 올렸다. ‘남친이 너무 잘해줘서 행복하다.’ 텐트는 협찬 받은 것이었다.


캠핑장에 있으면 주변에 보이는 게 온통 텐트와 캠핑 용품뿐이기에 원하든 원하지 않던 비교 대상이 되고 비교를 하게 된다. 살림도구가 훤히 노출되는 캠핑장은 내가 가진 걸 은근히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고 최소한의 물건만 챙겨 캠핑을 간다 해도 나에겐 2인용짜리 텐트 하나 없다. 텐트에서 잠을 자려면 에어 매트도 필요하다. 텐트와 에어매트를 사면 일 년에 몇 번이나 사용할까? 캠핑장에 자리를 예약하고 낮에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밤에는 근처 숙소로 이동해 자는 건 어떨까? 그럴 경우 텐트는 없어도 되지만 휴대용 의자 두 개는 구입해야 한다. 만약 내가 아이가 있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필요한 건 몽땅 구입해 떠날 것이다.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건 아이에겐 굉장한 추억이 될 테니까. 하지만 내겐 동갑인 남편밖에 없기에 6개월 넘도록 이래저래 생각만 할뿐 오토캠핑은 한 번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언택트 여행이라 하여 오토캠핑이 인기가 많은데 명당이라 불리는 캠핑장은 오픈하자마자 마감이 된다고 한다. 예약하기도 어려운 판국에 고민하는 사치를 부리다니. 이래저래 캠핑 떠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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