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휴게소를 내 집처럼

by 유자와 모과

“에이 C발, 누가 내렸다고 그래요? 다 내릴 사람들이었는데. 상관하지 마요.”

버스는 급히 출발했다.

“아니 기사 양반, 그게 아니라요.”

중년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 차를 추월하려 기회를 넘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아줌마가 화장실 갔다 오라고 선 줄 알고 내렸다니까요.”

“에이 XX, 그 아줌마는 대체 왜 내린거야? XX 바빠 죽겠는데. 에이 퉤. 알아서 다음 차 타고 오겠지.”

버스는 멈칫하다 다시 속도를 높였다.

“아니, 그러면 안 되죠. 타야 될 사람이 있는데 그냥 가는 게 어딨어요? 여기 지갑이랑 짐이 그대로 있는데. 차 세워야죠.”

아저씨가 큰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달리던 버스는 신경질적으로 갓길에 멈춰 섰다.

사람들 몸이 앞으로 쏠렸다.

나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시계를 봤다. 3시 47분이었다.

“아니 왜 내리고 난리야? XX. 바빠 죽겠는데. 갈아타는 사람들이 내리는 걸 지가 왜 내려? 에이 퉤. 대체 어쩌자는 거야."

기사는 욕을 하며 버스 문을 연 후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갔다.

차들이 아슬아슬하게 버스 옆을 지나갔다.


단편 ‘강릉가는 길’ 중에서

2014년 설날 당일, 나와 남편은 천안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릉 할머니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말없이 휴게소 들어가는 입구에 차를 세웠고 승객 몇몇이 내렸다. 그곳이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환승 휴게소라 잠시 멈춰선 건데 승객 한 명이 휴게소에 도착한 줄 착각하고 내린 거다. 기사가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았기에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승객을 태우러 되돌아가는 게 당연한데도 기사는 욕만 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승객 몇 명이 차도 막히니 그냥 가자고 기사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버스는 한바탕 난리가 났고 20분 후 그 아주머니는 휴게소 직원 차로 버스가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용서를 구하며 자리에 앉았다. 맨 뒷좌석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강릉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단편을 써 놓았다.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내 마음대로 휴게소에 들릴 수 없다. 화장실이 아무리 급해도 정신력으로 버텨야 할 때도 있고, 버티다 못해 기사님께 세워달라고 요청해야 할 때도 있다. 몇 년 전 곤지암에서 스키를 탄 후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버스를 탄 순간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기사님께 물어보니 가는 길에 휴게소가 없다고 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버스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양재 쪽으로 들어섰고 남편은 아무데나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버스는 우리를 어느 빌딩 앞에 버려두고 쌩하니 사라졌다. 화장실 굴욕이 어디 이것뿐이랴.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행을 다닐 때 웬만하면 기차를 타고 다녔다. 어쩔 수 없이 고속버스를 타야 할 때는 화장실을 제때 못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몇 시간 전부터 물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굴욕이여 잘 가거라. 나는 이제 붕붕이를 타고 다니기에 차 안에서 마음껏 물과 커피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고 언제든 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에 갈 수 있다. 더 이상 조급하게 우동 면발을 삼키지 않아도 되고 호두과자를 사러 초조하게 뛰어가지 않아도 된다. 휴게소에서 온갖 잡화와 의류를 구경하고, 주위에 꾸며놓은 공원을 산책하고, 놀이터를 기웃거리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도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 얼마나 느긋한 자유인가! 버스 안에서 정신력으로 버텨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 기쁨을 알지 못하리. 휴게소는 자동차의 쉼터이자 나의 안식처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적으로도 수준이 높다. 나는 휴게소를 사랑한다. 언젠가 휴게소의 모든 간식을 모두 정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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