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운전할 때 들었던 특별한 음악이 있었어. 너도 그런 거 있냐?’ 도둑 중 한명이 이어폰을 끼며 음악을 듣던 주인공에게 묻는다. ‘그럼요. Brighten rock이요.’ 주인공 ‘베이비’가 대답한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운전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 주인공 ‘베이비’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은행을 터는 범죄자들의 도피를 돕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은 운전할 때마다 그날의 상황과 기분에 맞춰 신중하게 음악을 고른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정신없이 자동차 사이를 질주한다. 음악이 없이는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흔한 범죄영화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액션을 가장한 음악영화였다.
온종일 음악을 듣는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내 곁에도 항상 음악이 있다. 동행이 있다면 음악을 틀지 않지만 혼자 운전할 땐 클래식 채널인 FM93.1을 듣는다. 집에서도 같은 채널이 고정되어 있다. 여행을 떠날 때는 USB에 음악을 담거나 CD를 챙겨간다. 멜론 스트리밍이나 유튜브를 이용하는 요즘 시대와 비교하면 살짝 뒤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차 안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들었다. 어렸을 적 탔던 교회 봉고차에서는 <쏠티와 함께>라는 어린이 찬양 모음곡이 항상 흘러 나왔다. 1집과 2집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기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몇몇 곡은 끝까지 부를 수 있다. 쏠티는 내 유년 시절을 장식한 배경음악이었다(찾아보니 <쏠티와 함께>는 현재 7집까지 발매 되어 있다).
몇 주 전 여수 여행을 떠나며 들었던 음악들이 있다. 여수 밤바다, 고속도로 로망스, 스탠 바이 미. 해안 길을 따라 운전을 하며 들으니 음악이 술술 넘어간다. 남편은 다양한 장르의 재즈도 담아왔는데 그 중 크리스마스 캐럴이 잔뜩 담긴 재즈 앨범도 있었다. 제목이 모두 영어로 적혀있어 전혀 몰랐다고 한다. 산타 이즈 커밍~ 아이 러브 디스 타임 오브 더 이어~ 만개한 벚꽃이 흩날리는 도시를 운전하며 듣는 캐럴이라니. 끝내준다. 남편과 함께 부르는 특별한 배경음악도 있다. 비틀즈의 ‘I want to a hold your hand’(너의 손을 잡고 싶어). 경쾌하면서도 단순한 멜로디, 따라 부르기 쉬우면서도 아름다운 가사 덕분에 우리는 차를 탈 때마다 이 음악을 틀고 목소리를 높여 열심히 따라 부른다.
한창 흥이 올라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전방에 과속방지턱이 있습니다.’ 혹은 ‘300미터 앞 60킬로미터 속도제한 구역입니다’라고 내비게이션이 음악 소리를 낮추며(누구 맘대로 줄이래!) 경고할 때면 내비를 던져버리고 싶다. 내비게이션 기계음을 최대한 듣지 않으려 웬만한 경고 소리는 다 빼버렸고 볼륨도 낮춰놓았다. 과속방지턱과 속도 제한 경고만 어쩔 수 없이 살려 놓았는데 가는 곳마다 왜 그리 경고를 하는지 모르겠다.
드라이브 할 때 듣는 팝송, 출퇴근 하며 듣는 클래식, 여행 갈 때 듣는 가요, 산책하며 듣는 재즈, 마음이 힘들 때 듣는 CCM 등 상황과 기분에 따라 자신만의 배경음악을 만들 수 있다. 누군가의 차에 탔을 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그의 취향을 짐작한다. 자신과 맞는 곡이 나오면 차를 타는 내내 기분이 좋다. 오래전 처음 보는 분의 차를 얻어 탄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존 레전드의 ‘Do you wanna ride'가 흘러나왔다. 한강 대로변을 달리며 함께 곡을 듣고 나니 서먹했던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반대 경우도 있다. 나는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 록 같은 록 음악은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자동차를 탈 때 친한 사이라면 원하는 음악을 부탁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운전자의 선택을 존중하여 묵묵히 듣는 편이다. 만약 운전자가 볼륨을 높여 록 음악을 듣는다면 그 시간이 괴롭게 느껴질 것이다. 버스를 타는 경우는 더 난감하다. 꼼짝없이 앉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운전자가 선택한 라디오나 음악을 들어야 한다.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버스를 오래 타야 하는 경우에는 잊지 않고 이어폰을 휴대한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슬플 때는 음악을 듣기보다는 조용히 노래를 부른다. 20대부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방에 홀로 앉아 부르는 찬양이 있는데 차 안에서 혼자 운전할 때 시도 해보니 역시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운전할 때 음악을 들으면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경고한다. 나는 초보 운전자이기에 길이 복잡한 곳이나 낯선 장소를 운전할 때는 음악을 틀지 않는다.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에 깊이 빠져 내비의 지시를 놓치거나 주변을 살피는 걸 소홀히 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여 달릴 때에도 라디오를 틀지 않는다. 고급 차들은 아무리 쌩쌩 달려도 음정 하나 창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지만, 우리 붕붕이는 속도를 내면 음악소리가 창밖 소음에 묻혀 버려 라디오 볼륨을 엄청 높여야 한다. 귀가 아파 오래 들을 수 없다. 경차의 최대 단점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