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조카 하율이는 자동차를 좋아한다. 하율이는 송도에 살기에 가끔 가족과 함께 영종도에 있는 BMW 드라이빙 센터에 놀러간다. 입장은 무료다. 건물 안에는 각종 BMW 차와 오토바이가 전시되어 있고 고객들은 마음껏 내부를 구경하거나 시트에 앉아 볼 수 있다. 센터에 들어가면 조카는 능숙하게 미니 쿠퍼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비상 버튼을 누르며 출발하겠다고 말한다. 어디로 갈 거냐고 물으면 공항에 가거나 캠핑하러 가겠다고 한다. 나는 조카의 명령에 따라 조수석에 앉아 벨트를 매고 운전을 지켜본다. 하율이는 잠시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한 후 이제 다른 차를 타보러 가자고 한다. 하율이는 5살이고 맞은편 컨트리맨 S 운전석에 앉아 있는 아이 역시 조카 또래다.
아이들은 자동차 안에서 아무 버튼이나 마음껏 눌러 볼 수 있고 신발을 신은 채 뒷좌석에 드러누울 수도 있다. 하율이는 2층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 파스타를 먹고 창문 너머로 테스트 드라이브를 하는 차들을 구경한다. 조카는 드라이빙 센터에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아간다. 언젠가 조카가 어른이 되어 차를 구입한다면 BMW가 순위 안에 들 가능성이 높다. 미래의 잠재적 고객을 위해 BMW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고객과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현대 자동차에서도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충남 태안에 국내 최대 규모의 드라이빙센터를 짓고 있는데 완성되면 가보고 싶다.
아이들은 자동차 뒷좌석에서 부모님이 운전하는 걸 지켜보며 병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여행을 간다.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자동차는 자연스럽게 추억의 일부가 된다. 지인 중 한분은 벤츠를 탄다. 8년 전 구입하였는데 연식이 오래되니 하나 둘 고장이 나고 수리비도 많이 나와 새 차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지인은 그 차에 정이 들어 차마 처분을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된 큰 딸도 가족의 추억이 담긴 차를 어떻게 팔 수 있냐며 자기가 크면 끌고 다닐테니 그때까지 가지고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나는 차종도 분간할 줄 몰라 ‘무릎 꿇은 차(레이)’, ‘뒤꿈치 든 차'(쿠페형 SUV) 등 모양으로 차를 분류할 정도로 차에 무관심했다. 따라서 예전 같으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을 거다. 그깟 차가 뭐라고. 생명도 없는 고철 덩어리일 뿐인데 애착을 느끼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을 거다. 하지만 붕붕이를 만난 지 반 년 만에 내 마음은 완전히 바뀌었다. 나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고 주차장에서 묵묵히 서 있는 고마운 붕붕이. 내가 산과 바다 구경을 할 동안 붕붕이는 뜨거운 태양 볕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린다. 우리 붕붕이도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을 텐데. 먼 길을 달린 붕붕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쉬지도 못하고 달렸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니? 너도 좀 쉬어라. 나도 모르게 붕붕이에게 말을 걸고 차체에 티끌만한 얼룩이라도 묻은 걸 발견하면 얼른 침을 묻혀 닦아주려 한다.
유리창에 먼지가 뿌옇게 쌓이면 붕붕이가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에 마른 수건으로 열심히 유리를 닦아주고 붕붕이가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바람을 맞아 힘들어하지 않도록 어디를 가든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려 노력한다. 왜? 붕붕이는 우리 가족이니까. 붕붕이 뒷자리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 저기 나들이를 떠난다. 부모님 댁에서 가까운 오산 물향기 수목원이나 수리산 삼림욕장을 자주 방문한다. 붕붕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할 때마다 엄마는 뒷좌석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아빠는 조수석에 앉아 뻥튀기를 드시며 우리 대화를 들으신다. 남편과는 차 안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런 저런 계획을 짠다. 붕붕이는 우리 가족의 대화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다.
붕붕이를 탄지 일 년도 안 된 내 마음도 이렇게 바뀌어 가는데 10년간 함께 추억을 나눈 차와 이별하려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할까?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 안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견디었던 적이 있을 거다. 차를 몰며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을 거다. 차 안에서 연인이나 가족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터뜨렸을 거다. 자동차 구석구석마다 우리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차를 바라보며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현대 자동차가 인도 시장 진출 2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2018년 캠페인 영상 ‘아버지와 아들’편은 그 당시 유튜브 조회 수 2억 1500만을 돌파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현대차는 자동차 외형이나 성능에 대한 내용이 담긴 광고 대신 ‘가족과 함께한 차’에 초점을 맞춰 이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냈다. 광고에서 어른이 된 아들은 가족과 함께 20년을 보낸 현대 자동차 엑센트를 중고로 판매하려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가족의 추억이 담긴 차를 쉽게 팔려하는 모습이 탐탁지 않다. 아들은 차를 보러 온 구매자에게 차의 내부를 구경시켜주다 글로브박스에서 오래된 장난감을 발견한다. 아들은 장난감을 만지며 엑센트와 함께했던 즐거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그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마지막에 아버지가 아들을 끌어안는 장면을 보며 눈물이 났다. 대체 자동차가 뭐길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빼앗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약하고 정이 많은 존재라 때론 복잡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기계에게조차 마음 한 켠을 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