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건 서점이었지, 도서관이 아니었다

by 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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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에 작은 독립 서점이 하나 있다.


들어서면 책이 많지 않다. 대형 서점처럼 수만 권이 빼곡히 꽂혀 있는 게 아니라, 소량의 책이 한 권 한 권 골라 놓은 듯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서점 주인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 어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지가 선반 위에 고스란히 보인다.


작지만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서점 주인이 재밌게 읽었을 소설도 있었고, 에세이도 있었고, 인문학 책도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그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항상 책이 빼곡한 큰 서점만 가보던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게 있었다. 어지간한 베스트셀러는 대형 서점이라면 다 있기 마련인데, 이 독립 서점에는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서점 주인의 취향과 맞는 책들만 있었다. 꽤 유명한 책인데 여기에는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게 오히려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모든 책을 다 갖춘 곳이 아니라, 누군가가 골라낸 책만 있는 곳.


그 선반을 구경하다 보니 재밌을 것 같아 보이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형 서점에서 수천 권 사이를 헤매며 고르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누군가의 취향을 믿고 책을 집어 드는 느낌. 그날 몇 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만약 그 서점 주인의 취향이 나와 완전히 맞았다면 어땠을까. 그 선반 위의 책들을 하나하나 믿고 집어 들 수 있었을 것이다. MD 추천보다, 베스트셀러 목록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그 서점의 책들은 나에게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서점 주인의 취향과 내 취향이 딱 맞지는 않았다. 그 서점에 놓인 책들이 나쁜 책이어서가 아니다. 그 주인이 사랑하는 책들이고, 그 취향에 맞는 누군가에게는 보물 같은 공간일 것이다. 다만 나에게는 아니었을 뿐이다.


좋은 책, 나쁜 책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책이 따로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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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독서 서비스와 온라인 서점은 도서관을 지향한다.


모든 책을 다 담고, 모든 리뷰를 다 모으고, 모든 사용자의 별점을 종합해서 평균값을 보여준다. 방대하고, 정리되어 있고, 체계적이다. 하지만 거기서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건 결국 내 몫이다. 수만 개의 리뷰를 읽어도, 그 리뷰를 쓴 사람이 나와 취향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도서관이 아니라 서점이 필요했다.


그것도 대형 서점이 아니라, 독립 서점.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작은 공간. 다만, 그 주인의 취향이 나와 맞는 서점.


이 생각에 이르니까, 그동안 느꼈던 것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기록하고 싶은데 블로그는 너무 무겁고, 노션은 나만 보니까 동기가 안 됐다. 가볍게 "이 책 좋았다"를 남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추천 목록만으로는 절반밖에 성공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이 "이거 재밌었어"라고 말해주는 게 가장 정확한 추천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였다.


각자의 작은 책장이 있고, 거기에 자기가 읽은 책과 가벼운 감상을 올려놓는다. 멋진 리뷰가 아니어도 된다.

"이 책 좋았어요"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책장을 구경하다가, 나와 비슷한 책이 꽂혀 있는 책장을 발견한다. "이 사람은 나와 취향이 비슷하구나." 그러면 그 책장에서 내가 안 읽은 책을 꺼내 읽어볼 수 있다.


독립 서점 거리를 걷는 것처럼. 각 서점마다 주인의 취향이 있고, 내 취향과 맞는 서점을 찾으면 거기서 고른 책은 거의 실패가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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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잘 쓰는 게 아니라, 이 책 좋았다는 기분을 남기고 싶었다. 대단한 서비스가 아니라, 작은 책장 하나면 됐다. 커뮤니티가 아니라 개인의 공간. 소셜 네트워크가 아니라 취향의 큐레이션.


그게 내가 원하던 것의 전부였다.


그럼 원하는 마음 그대로, 내가 한 번 만들어보면 되지 않을까.


무모한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분명해졌으니까. 가볍게 기록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취향을 구경할 수 있는, 작은 온라인 책장. 독립 서점 거리의 온라인 버전 같은 것.


그걸 만들어보기로 했다.


당신은 어떤가요.

읽은 책을 가볍게 남길 수 있는 곳,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곳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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