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값 프로젝트〕 2020. 12. 04. Fri. 초겨울호
함께 글 쓰는 동료는 읽고 싶은 글이 있느냐는 질문에 글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남겼다. 그는 글을 잘 쓰고 나는 잘 쓰고 싶다.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처럼 쓸 수 있느냐고 글 한 편 읽을 때마다 안면몰수하고 물었지만 묻는다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토익 구백구십 점 맞은 이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점수를 받을 수 있느냐 물어봐야 뾰족한 수는 없고 그저 한 달 안에 700점 완성! 써져 있는 내 문제집이나 열심히 봐야 하는 것처럼. 나도 내 것이나 열심히 하기로 한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질투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질투가 건강한 감정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술 마시며 밤새도록 토론할 수 있다. 질투가 난다는 건 갖고 싶다는 거고 욕망한다는 것이고 열정이 있다는 것인데 흔히 열정은 곧 사랑으로 치환되어 불리곤 하므로 내가 글에 관한 한 늘 질투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한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실 열등감이랄지 자격지심이랄지 하는 말보다는 사랑과 정열이 모양새가 조금이나마 덜 민망하지 않겠나. 솔직하게 말해야 덜 추하다. 그래, 나는 질투한다.
세상에 좋은 글이 넘쳐난다는 건 써도 써도 줄지 않는 잔고처럼 감사하고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그 대열에 손날이라도 비집고 넣어 보려면 아주 갈고 닦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멋진 글을 읽으면 나는 마치 영원할 것 같은 숨을 들이쉬며 심장 부여잡는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표현을 쓸까. 그건 양날의 검도 된다. 캔들 켜둔 침대 맡에서, 질 좋은 커피색 원목으로 만들어진 도서관 책상에서, 햇빛 좋은 공원 잔디밭에서, 라떼가 맛있는 가게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 세상에는 내가 쓸 수 있는 단어의 조합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은 저런 말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 같고, 그 감정은 이 신체부위로 묘사해야지만 착착 맞아떨어지고. 절망했다. 이런 문장들을 쓰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며 굳기 전의 언어를 체험할 수 있는 난 참 행복한 놈이로구나 생각했지만, 이 사람이 이 글을 씀으로써 내가 쓸 수 있는 단어가 사백 오십 개쯤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사랑하는 모든 문장들을 미워하던 밤도 있었다.
어느 작가님은 수업 중에 악인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같이 글 쓰는 또 다른 언니는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내야 한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대상을 악인, 나를 선인으로 설정하기보다 내가 솔직하고 신랄한 눈을 가지고 말함으로써 내 밑바닥을 까뒤집어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유튜브 영상 속 요가 강사는 따라하라며 몸을 꾸깃꾸깃 접더니 화면 밖의 나와 눈을 맞추며 생각보다 쉽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딱 그 꼴이다. 당신들은 말하자면 무림의 고수잖아요... 맥주잔을 엎어가며 그의 글쓰기 철학을 설명하는 언니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게 없어요. 내게는 사람들을 헉 하고 놀래킬 만큼 지저분하고 짜릿한 밑바닥이 없고 신랄하게 묘사할 깡마른 남편이 없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과거가 없다. 적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언니, 저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껄끄러운 면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존나 산뜻해요. 언니는 말했다. 응, 그게 니 밑바닥이다. 니가 남부끄럽지 않다고 믿는 그게 바로 너의 모순이란다...
아, 나는 얼마나 나를 모르는가. 그리하여 나는 그의 밧줄을 타고 내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저는 남한테 참 관심이 없는데 이상하게 저 분은 궁금하더라고요. 언니는 계란후라이 뺀 볶음밥을 씹으며 말했다. 난 너처럼 남한테 관심 많은 애를 본 적이 없다. 그래, 결정했다. 이제부터 내 밑바닥은 모순이다. 나는 나를 내 쓸개 모양만큼도 몰랐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뭐든지 간에 알아야 한다고 하니 이제부터 속속들이 들여다 볼 요량이다. 그는 그밖에도 꾸준히 밧줄을 내려주고 있다. 언니, 저는 수필 세 장 쓸 만큼 할 말이 많지 않아요. 얘야, 나는 너처럼 할 말 많은 애를 본 적이 없단다. 언니, 나 그만 포기할게. 수빈아, 넌 계속 써야 한단다.
더는 못 쓰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욕망의 항아리를 불태우고 있는 것도 내 모순이다. 돈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실은 돈에 미친 거라는 세간의 잠언이 틀린 말이 아니듯. 그래서 나는 말끔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안감에 묻은 얼룩과 곰팡이들을 들여다보고 남들 보여주기 부끄럽다고 말하면서 그걸 어떻게 잘 보여줄지 요리조리 펼쳐본다. 더 기막힌 자국은 없나 좀 더 운명적인 우연은 없나 들춰보고 헤집어보면서. 얼마 전 들은 수업에서 상담사는 자신의 과거와 무의식을 먼저 낱낱이 알아야 건강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내담자를 이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나를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며 구석구석 짚어 보일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해서 가지게 된 눈으로 틈새를 파고드는 글을 영사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下) 편에서 계속 ...
추신. 상하편 어디에서도 글을 잘 쓰는 방법은 찾을 수 없다.
김수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