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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Nov 21. 2022

글을 잘 쓰는 방법 (下)

〔커피값 프로젝트〕 초겨울호 2020. 12. 07. Mon.

   리베카 솔닛은 말했다. 작가가 된 많은 이들이 그렇듯, 자신 역시 어린 시절부터 책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고. 그는 마치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가듯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내가 어린 시절이라고 부를만한 때 책을 많이 읽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친구가 없어서 책을 읽었거나, 책만 읽어서 친구가 없었거나. 가장 처음의 기억이 아무도 없는 한옥집 정중앙을 차지하던 장난감 방에서 오른편에 책꽂이를 두고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던 장면인 것을 보면, 나의 친구 없음은 아마 일찌감치 예정되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많은 경우 앞뒤를 분간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나의 경우 아마 후자였던 것 같다. 아니, 전자였을 수도. 또래라고는 없는 면 단위 시골 한옥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양 옆집에 놀러 가면 고모나 할머니뻘 되는 이웃들이 스테인리스 볼 가득 포도 청사과 복숭아 담아 보내곤 했으니. 다섯 살이 그곳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책장 가득 꽂힌 동화책들을 읽고 또 읽고, 그러다 지치면 상상과 손끝을 연결하여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그때 읽은 책들 속에 나오는 비스킷과 목도리, 폭풍이 부는 언덕과 생쥐가 만든 양초를 지금도 기억한다. 전자키보드에 딸린 마이크에 대고 떴다 떴다 비행기 노래를 부르면 뒤에서는 노래도 못 하는 게, 하는 조소가 들려오고 독후감을 써 가면 온 가족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더욱 책으로 파고들었다. 공책에 친구의 생일파티에 다녀왔을 때의 감정을 쓰면 너무 유치하고 제대로 된 독후감이 아니라는 평을 받았고, 아낌없이 주는 미루나무처럼 나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모범답안을 내밀면 참 유려한 문장을 쓰는 10살이 되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남들에게 내 것을 떼어 주고 싶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독서 후에 쓰는 감상문인데, 나는 느낀 대로 쓰지 못하고 적절하고 보기 좋은 글을 생산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택했다. 

 

  어린 시절 나는 표정이 많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고 온종일 책을 읽었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몰랐고 자기 세계가 있다는 말을 들으며 모욕으로 알았다. 무시당할까봐,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만 보여준 세계가 들통날까봐 나를 표출하고 보여주는 대신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학교에서 한 권, 집에 돌아와서 네 권을 단숨에 집어삼키고 이야기들과 문장들을 몸에 쌓아올렸다. 한 달에 70권이 넘는 독서목록을 적어 내기도 했다.  


  종종 그런 질문을 받는다. 글 쓰는 방법 어디서 처음 배웠냐고. 되묻고 싶은 질문이지만 대답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역사책 두 권을 통째로 필사한 적이 있고, 그렇게 책들에 둘러싸인 나만의 세상에서 살았다고. 그리고 나이보다 높은 수준의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높은 수준의 책이라는 게 사람들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정의란 무엇인가 정도인 줄 알겠지만, 실은 그냥 성인 소설이었다. 초등학생에겐 아주 수준 높은 문학이 아닐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교실 학급책장에 청소년 소설이나 권장도서가 아니라 어쩐지 그림이 없고 여백이 좁은 일반 소설책이 한 권 꽂혀있었다. 대부분의 동급생들은 WHY 시리즈 사춘기와 성 또는 마법천자문을 닳도록 읽었고, 그도 아니면 공기놀이를 하거나 공을 차고 놀았기에 그 소설을 포함한 다른 모든 책들은 전부 내 차지였다. 어쩌다 하필 그 책을 뽑아들어 쉬는 시간에 읽고 있었는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그 활자 빽빽한 책을 수업이 시작하기 직전 쉬는 시간에 읽고 있었고, 하필 이제 막 섹스신이 나오는 페이지로 돌입했다.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이 유일하게 자극적인 콘텐츠였던 열한 살에게 어른의 언어란 아주 매콤하고 짜릿했다. 나는 다른 모든 칠십 권의 책을 읽을 때보다 격정적으로 정신없이 책 속에 빨려 들어가 신세계를 맛보았고, 정확히 그 문단을 두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저들이 정확히 무슨 행위를 하는지도 모르는 와중에 그건 남들과 함께 보아서도 안 되고 남들이 보여주지도 않을, 무언가 은밀한 비밀이라는 것만은 완벽히 이해했다. 이 책을 지나가고 나면 우리 학교 도서관에서 다시는 비슷한 글을 만날 수 없다는 것도.  


  무아지경의 독서에 휘말려 이제 막 첫 번째 문단을 두 번째 읽어갈 때, 나와 같은 페이지를 보는 듯한 그림자가 책 위로 드리워졌다. 담임선생이 책상 분단 사이 통로를 지나 내 책상 앞에 서서 내가 읽던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망했다. 나는 조용히 책 읽고 공부 열심히 하는 4학년 2반 12번인데. 뱃속이 철렁하고 등골이 차게 식을 때 선생은 책상에 펼쳐진 책 귀퉁이를 집어 들어 라이온 킹의 그것처럼 교실 높이 쳐들었다. 조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은 소리쳤다. 얘들아, 이것 좀 봐라. 수빈이가 뭘 읽고 있는지 아니? 아, 선생님....... 참사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나의 들척지근한 욕망이 만천하에 공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볼일 보라고 있는 화장실에서 큰 일만 보아도 전교에 소문을 내고 뛰어다니는 열한 살들에게 내가 이런 글을 교실 한복판에서 소리죽여 읽고 있었다는 걸 들킨다면 그날로 나는 사물함 짐을 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어 말했다. 너희들이 만화책이나 읽고 있을 때 수빈이는 이렇게 글자 빽빽하고 그림 하나도 없는 책을 읽고 있어. 너희도 좀 본받아야 하지 않겠니?  


  신이시여. 등줄기에 다시 피가 돌았다. 선생은 활자를 읽은 게 아니라 내가 읽던 페이지를 덩어리 그림으로 본 것이었다. 일주일 후 아침 조례 시간에 나는 방송실 카메라 앞에서 상을 받았다. 흰 스키니 진에 다홍색 티셔츠를 입고. 상장 제목은 다독 상이었고 나는 그날로 공식적인 모범 어린이가 되어 조용하고 책을 많이 읽으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명분으로 이듬해 모범 어린이 상도 받았다. 초집중하여 섹스신 읽던 초딩은 어쩌다 모범생이 되어 방송 작가와 동화 작가의 꿈을 거친 뒤, 모범생에서 다시 백 이십 발자국쯤 멀어져 이곳에서 낄낄거리며 그날을 복기하고 있다. 그 학교를 졸업하고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는 귀여니를 비롯한 여러 인소(인터넷 소설)들과 럽실소(러브 실화 소설) 작가들을 만났고, 베개를 적시거나 다리를 배배 꼬는 밤들을 지나 드디어 성인 소설을 숨어 읽지 않아도 되는 성인이 되었다. 럽실소 작가가 되고자 네이버 카페에 뛰어들었다가 쓴 글들을 양육자가 눈앞에서 소리 내어 읽어 보이는 수모를 겪고 접었던 적도 있었다. 이른 청소년기를 들켜서는 안 될 것들을 무아지경으로 읽고 쓰며 보낸 뒤, 남들이 권장하는 때를 빗겨간 이제야 건전한 교과서 문학으로 걸어 들어가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담담하게 쓴 글로 이따금 야하다는 평을 받으며 내심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묻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걸 쓰냐고. 건전한 걸 읽으라고 할 때 수상쩍은 걸 마음껏 가까이 하세요. 이렇게 대답한 적 아직은 없다. 그러고 보면 그때 학급문고에 꽂혔던 그 책이 정말 청소년 권장도서가 맞았나 싶기도 하다. 누군가 설계한 이야기 속으로 달려 들어가 건너편으로 나왔으니. 다음에는 수상한 것 쓴 이야기 해볼까.      



<글을 잘 쓰는 방법> 끝. 



김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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