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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CAT Sep 28. 2018

영화 읽기 : 북촌방향

옛날 메모들 끌어올리기 - 2016년


북촌방향그 뒤섞인 시간들에 대하여


처음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난 이후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가? 왜 인물들은 하루를 반복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고, 갑자기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는가? 이 영화는 일반적인 인과관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이해해보기 위해 일단 영화의 순서대로 영화를 따라가 보았다. 영화의 첫 쇼트는 헌법재판소 앞의 사거리 표지판이다.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그리고 창덕궁과 광화문으로 나눠지는 사거리의 표지판 쇼트로 먼저 공간적인 배경을 제시한다. 이 쇼트는 아마도 성준(유준상)의 시점쇼트이자 영화가 앞으로 흘러갈 여러 가지 방향성들에 대한 은유의 쇼트이기도 하다. 다음 쇼트에서 성준(유준상)이 등장한다. 성준은 도보를 걸어오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또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기다린다. 성준의 복잡한 동선에서 우리는 앞 쇼트에 이어 성준의 이번 서울 행보가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가 가는길을 굉장히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성준은 영호(김상중)가 전화를 안 받는다고 말하며 3-4일 동안 서울에서 머물 것임을 나레이션으로 소개한다. 성준은 마치 서울을 금방 슉슉! 스쳐지나갈 것처럼 말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결국 성준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이 이어지지 않는 커트간의 연결미로의 생성


우린 다음 쇼트와의 연결에서 우리는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공간들간의 연결이 거의 점프컷처럼 진행되면서 성준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게 설계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이 쇼트에서 성준이 향하는 공간의 끝에 있는 오르막길은 다음 쇼트에 등장하는 오르막길과 다른 공간이다. 마치 관객들이 동준이 저 오르막길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고, 다음 커트에서 다른 오르막길을 비추며 다른 길로 향하는 성준을 보여준다. 분명히 인물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지만 그 공간의 연결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인물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동선을 지운 것이다. 영화는 이제부터 미로의 공간을 생성하기 시작한다. 이 미로의 공간에 기여하는 또 한가지 요소는 바로 성준이 절대 화면에서 프레임 아웃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준은 화면 안에서 움직이지만 화면 밖으로 나가진 못한다. 들어오지만 나갈수 없는 미로의 속성을 감독은 프레임 안에서도 분명히 지킨다. 성준은 항상 어디론가에서 들어와서 어디론가로 향하지만 어디론가 나가진 못한다. 이 두가지 방법을 통해 감독은 미로를 만든다. 이 미로적인 공간은 공간적 연결성은 물론 시간적 연결성도 파괴한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연결된 성준의 순차적 동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적인 순서는 확실치 않다. 과연 이 쇼트가 전 쇼트 다음의 시간을 순차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증거는 영화 안에서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이 ‘미로화’의 관점에서 영화의 첫 쇼트였던 표지판을 보자면, 사거리는 미로의 한 부분이다. 성준은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 거주하는 인물이고, 성준에게 서울은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떠난지 오래되어 생경한 도시다. 그에게 서울의 공간이란 이미 표지판이 없으면 찾기 힘든 곳이고, 표지판을 보더라도 길을 잃고 마는 미로와 같은 곳이다. 성준에게 사거리는 바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 없는 미로의 공간의 시작점이다. 이미 사거리 앞에 서서 표지판을 보았을 때부터 성준은 길을 잃은 상태였고, 영화는 길을 잃은 성준이 서울이라는, 북촌이라는 미로를 헤매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시간 경과를 보여주지 않는 흑백 화면 


영화는 흑백으로 상영되었고 이 흑백의 공간은 앞서 이야기했던 이 시공간을 미로화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흑백의 영상 때문에 영화의 낮시간대의 시간은 전혀 예측하기 힘들다. 보통 시간대별로 가지는 색감이 존재하지만 <북촌방향>에서는 그 색감을 찾을 수가 없다. 이 공간에는 낮, 그리고 밤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지점들은 시간의 경과를 알수 없게 만든다. 같은 날인지, 아니면 같은 날 중에서 아침인지, 해질무렵인지 흑백화면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어지는 영화학도의 술자리 이후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이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던 동준의 이상행동을 접함으로써 이 이야기의 진행방향에 대해서 완벽하게 길을 잃게 된다. 동준은 택시에서 내리면서 자신이 말했던 전 쇼트에서의 인과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인과관계를 깨는 행동들은 이후의 영화 전개에도 이어진다. 


경진과의 만남 


미로를 헤매다 성준이 향한 곳은 전 여자친구로 보이는 경진의 집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한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경진의 방에서 경진과 찌질하게 해후를 나누던 성준을 보여주는 쇼트에서 섹스의 장면이 빠진 채로 성준이 집을 떠나는 쇼트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일단 섹스의 장면이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장면을 건너뛴 부분에서 우리는 이상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마치 섹스를 나누자마자 바로 동준이 집을 떠나는 장면처럼 느낀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둘의 관계가 갑작스레 변화하는 인과의 지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쇼트의 배치를 거꾸로 놓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이 쇼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집을 떠나는 성준의 쇼트는 2년전의 쇼트다. 경진을 그렇게 떠난 성준이 2년 뒤 앞 쇼트에서처럼 집에 찾아왔기 때문에 경진은 화를 내고 성준에게 모질게 대할 수 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진과 성준의 변화를 섹스 이후의 관계가 변화한 것으로 오인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다. 자칫 잘못 보면 성준은 섹스만 하고 떠나는 굉장히 파렴치한 남자로 보일수 있지만, 영화에서 시간순서가 뒤바뀐 쇼트의 배치는 이렇게 계속해서 오해의 지점들을 만들어 낸다.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시간의 순서다. 두 쇼트는 둘 다 밤이지만, 집을 나온 성준의 쇼트는 낮이다. 만약 성준이 다시 경진을 찾은 쇼트 > 성준이 떠나는 쇼트 > 집을 나온 성준의 쇼트의 순으로 시간이 구성되었다면 이 시간의 변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성준이 떠나는 쇼트를 제일 앞으로 구성한다면 경진에게 안기는 성준의 이후의 시간이 생략된채로 아침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 관객들을 계속 미로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3여배우와의 만남 


영화에서 성준은 총 세 번 여배우를 만난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연극 하나를 막 끝냈다고 말하는 여배우와 어색한 대화를 나누다 헤어지고, 두 번째에서는 배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자신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성준에게 조언을 구한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같이 술을 마셨던 영화학도들을 함께 만난다. 이 세 번의 만남은 분명 중복되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세 번의 만남을 유일하게 이어주는 것은 성준이 커피집을 찾는 행동인데, 그것 조차도 너무나 일상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그 사실이 이 세 번의 만남을 이어주긴 어렵다. 세 번 만났는데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성준은 커피집을 찾고 있고, 영호를 만났고, 배우는 연극을 하고 영화를 하다가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배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부분 또한 확실하게 시간이 지났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세 번의 만남. 관객들은 이 세 번의 만남이 하나하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켜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내가 본 이 여배우 쇼트의 목적은 최소한 이 영화의 시간구성을 위한 일종의 배열이다. 여배우가 등장하는 씬들을 통해 감독은 이 영화의 시간순서를 뒤섞어 몇 개의 덩어리로 배치해 놓았고, 이 여배우 씬이 그 경계의 역할을 한다. 이들의 만남은 굉장한 우연성에 기대고 있다. 또한 그들의 대화나 만남은 특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만나서 매번 처음보는 것처럼 다른 이야기를 한다.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여배우가 성준을 대하는 방식인데, 그 또한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배치, 즉 3번에 걸쳐 같은 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그 장면 안에서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관객들이 발견할 수 있게 만든다. 파편화되고 미로화된 이 장면들을 세 번에 걸쳐 보았을 때 비로소 관객들은 이 이야기의 원형에 대해 조금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결국 전체를 보아야 하는 영화이고, 쇼트의 순서만을 따라가다 보면 뒤죽박죽 되어 영화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이유는 전 쇼트의 정보들이나 인물들간의 대화등이 파편화되어있기 때문에 관객들 스스로 그 정보를 누적시키지 않고, 방향성이나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방식은 기존의 영화들과 조금 다르다. 


소설 속 보람과 성준


소설에서 성준은 영호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보람을 만난다. 첫 번째 (영화의 진행 순서대로의) 만남의 쇼트에서 보람은 성준에게 연애에 대해 묻는다. 이 쇼트에서 우리는 영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보람이 영호보다는 성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성준은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며 완곡한 거절의 행동을 내비치고, 오히려 술집 주인인 예전에게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보여주는 씬에서 계속 반복되는 몇가지 쇼트들이 있는데, 일단 첫 번째로는 소설의 주인인 예전이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는 것에 대한 보람의 반응이 보이는 쇼트고, 두 번째로는 성준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는 쇼트, 세 번째로는 성준이 피아노를 치는 쇼트다. 첫 번째 장면에서는 성준이 담배를 피러 갔을 때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는다. 다만 예전을 보고 ‘똑같다.’ 라고 말하며 앞서 찾아갔었던 여자, 경진을 떠올린다. 예전은 경진의 1인 2역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성준의 마음처럼 보여진다. 성준의 마음 속에 경진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마음을 주게 되는 여자 또한 경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는 언급하겠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결국 성준의 주관적인 시점의 등장인물인 셈이다. 성준은 처음엔 혼자 담배를 피고 들어가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를 치는 성준을 통해 감독은 이 영화를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에 힌트를 준다. 악보가 없는 연주. 즉 왼손 연주와 오른손 연주만을 파편화 시켜 보여주고 그것을 합쳐서 듣는 것은 영화를 보는 이의 몫이다. 영화는 이렇게 악보가 없는,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의 선율을 들려준다. 이어지는 쇼트는 세 사람이 소설을 나오는 쇼트인데, 이 쇼트에서 보람은 성준이 살이 빠졌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전 쇼트에서 처음 본 관계처럼 소개되었는데 바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쇼트가 전쇼트에서 시간적으로 이어지는 쇼트가 아니라 훨씬 뒤의 시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쇼트가 연결되지만 시간적 연결성이 사라진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은 두 번째 소설을 방문하는 쇼트들을 통해 이 영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 제시한다. 영화 안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수없이 일어났던 일상들 중에서 몇 개를 모아서 취사 선택해서 생각의 라인을 만든 영화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모든 컷들 간의 시간은 시간적 연결성이 아니라 생각의 연결성을 가지고 연결된 컷들이다. 우리는 시간적, 그리고 더 나아가 시각적 연결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어 두 번째 소설의 장면에서는 보람이 성준에 대한 관심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성준을 따라나와 담배를 나눠피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기서 성준의 이중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보람에게 성준은 똑똑한 사람인데, 성준은 영호를 두둔하며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적인 매력이 먼저인 그녀에게 있어 이 말은 결국 그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이상한 지점은 역시 보람과 예전의 자리의 역전이다. 과연 성준에게 있어 누가 보람이고 누가 예전인 것인가? 피아노를 치는 성준의 모습을 마치 첫 번째 소설의 장면에서 보람이 보는 것처럼 표정을 짓고 보고 있는 예전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인물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그리고 바로 다음쇼트에서 이것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담배를 피러 나간 성준에게 예전이 만두를 사러 나오고 성준은 그녀를 따라 나간다. 보람과 예전이라는 두명의 여자가 번갈아 등장한 이 담배피는 쇼트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왜 성준이 예전을 따라 나가는가에 관한 부분인데, 사실 이 쇼트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즉 보람을 예전으로 치환한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첫 번째 담배를 피는 쇼트에서 따라나온 여자가 사실 그 본질은 보람이 아닌 예전이었고, 소설 안에 영호 옆에 앉아 있는 예전이 보람이었다면, 그러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예전이 성준과 함께 만두를 사고 키스를 하는 장면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어 세 번째 소설의 장면에서는 이 관계가 또 한번 역전된다. 한정식 집에서도 꾸준히 성준에게 호감을 표하던 보람에게 영호는 언성을 높이고, 이것은 영호가 이미 성준과 보람의 관계에 대해 눈치를 챘다는 지점이다. 다시 성준이 담배를 피는 반복되는 쇼트로 향하면 예전은 이 전의 만남에 대해 아무런 누적된 감정이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성준을 대한다. 성준또한 그렇다. 먹을 것을 사러간다는 예전이 나가고 성준에게 경진의 문자가 오는데, 이 장면은 언뜻 예전과 경진이 시각적으로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예전의 내면을 반영하는 쇼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두 번째 소설에서의 장면을 고려해 볼 때 밖으로 나가는 예전과 문자를 보내는 경진, 그리고 보람이 같은 인물로 읽혀질 수 있다. 예전과 경진을 보람이라는 인물로 치환한다면 계속해서 성준에게 관심을 표하는 보람 때문에 영호가 화를 냈고, 뻘쭘해진 성준이 담배를 피러 나왔지만 보람이 그를 따라나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과 성준의 관계가 어색하고 처음 만난 것처럼 소원해 보이는 것도 예전이 보람이고, 성준은 보람이 방금 안에서 영호와 싸운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성준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는 것도 보람으로 인물을 치환했을 경우 기묘하게 이야기가 이해되는 지점이 생긴다. 이어지는 쇼트 초반부는 예전과 먹을 것을 사오면서 예전에게 사과를 하는 성준인데, 여기서 예전의 연기는 마치 보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어 둘의 키스가 이어지고 예전에게 성준은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보내고 오겠노라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바로 영호를 보내고 오겠다는 말이다. 이 쇼트를 더욱 분명하게 하는 것은 바로 다음 쇼트다. 다음 쇼트는 소설에서 나오는 보람과 성준,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있는 영호의 쇼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영호는 성준과 보람을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관찰한다. 바로 이 셋의 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어서 일행을 보낸 성준은 예전을 찾아가 하룻밤을 보낸다. 개인적인 경험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이불에 누워 예전과 성준을 보여주는 이 쇼트에서 예전의 모습은 놀랍게도 보람과 일정부분 닮아있다. 성준은 예전과 섹스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보람과 섹스를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성준은 예전의 집에서 나온다. 그리고 둘이 하는 대화에서 다시 한번 이러한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 성준은 예전에게 우리는 더 이상 만난다면 안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예전이 보람이고, 보람이 자신과 절친한 영호가 좋아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준은 예전을 말로 설득한다. 그리고 영화의 두 번째 쇼트, 성준이 도착했던 쇼트와 동일한 앵글로 시작하는 쇼트가 나온다. 다른점은 성준이 이번에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준은 북촌길 표지판 앞에서 자신의 팬이라고 이야기하는 보람의 얼굴을 한 또 다른 인물을 만난다. 그는 사진을 찍으며 이상한 표정으로 팬을 쳐다보는데, 그것은 마치 예전을 처음 보았을 때 성준의 놀란 표정과 흡사하다. 여기까지 영화를 따라오면, 결국 여기 나오는 모든 여자들은 각자 다른 인물로 묘사되지만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경진에서 시작해서 보람, 보람에서 예전, 그리고 다시 팬(보람)으로 연결되는 이 선에서 우리는 인물들이 실재하지만 실제로는 성준의 생각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성준의 연애를 시간 순서대로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극중 인물의 이름으로 그 선을 연결하자면, 보람의 성준에 대한 관심 > 영호를 의식한 성준의 거부 > 성준의 수용 > 예전과의 하룻밤 > 예전을 떠남 > 경진을 다시 찾아감 > 경진을 다시 떠남 > 팬(보람)을 만남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북촌방향>에서 두 명의 인물이 1인 2역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역할이 이야기 속 인물, 즉 성준에게 다르게 비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이 영화에서 시각적인 동일성, 시각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증거기도 하다. 


영호와 성준영화의 시간적 순서 


마치 서울에 왔던 한번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사실상 성준이 여러번 서울을 오는 여정을 담는다. 이를 성준과 영호의 만남의 장면들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영호와 성준이 만나는 쇼트들을 정리해보자. ⓵ 성준은 계속해서 영호에게 전화를 하지만 받지 않는다. ⓶ 성준은 영호의 사무실 앞에서 영호를 만나고 함께 보람을 만날 약속을 잡는다. ⓷ 소설에서 보람과 함께 술을 마신다. ⓸ 정독도서관에서 영호와 성준이 만난다. ⓹ 영호의 집에서 성준이 함께 계란후라이를 먹는다. ⓺ 중원과 함께 술을 마신다. ⓻ 중원과 보람과 함께 술을 마신다. ⓼ 보람을 쫓아 택시를 타고 간다. ⓽ 커피를 함께 마시며 거리를 걷는다. ⑩ 커피를 마시다가 여배우를 만나고 제자들을 보고 도망간다. ⑪ 보람과 함께 다정에서 술을 먹는다. ⑫ 보람과 함께 소설에서 술을 마신다. ⑬ 성준은 영호에게 전화를 하지만 영호는 바쁘다고 만나주지 않는다. 이 쇼트들의 순서들을 모두 유추할 수는 없겠지만 몇가지 연결되는 부분은, ⓸가 영호도 자신이 별거중임을 밝히고 ⓽⑩에서 함께 걷다가 여배우를 만나는 부분인데, 일단은 이 장면에서는 두 인물이 갹 쇼트에 모두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연결이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한 ⑪에서 보람과 식사를 한 후에 ⓷이 배치된다. 이는 ⓷의 한정식집 이후에 보람의 주도로 소설에 가게 되었다는 나레이션을 통해서 알수 있는 부분이다. 이 쇼트에서 예전의 부재에 대한 보람의 반응이 가장 약하다는 점도 이 쇼트가 가장 시간적으로 앞서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어서 술을 먹고 나온 세 사람의 쇼트에 이어지는 장면은 바로 마치 잠에서 막 깬듯한 성준에게 영호가 계란후라이를 해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이 장면이 시간적으로 그 다음날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둘은 중원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아마도 중원과의 술자리에서 보람의 얘기를 꺼낸 성준 때문에 보람이 합석을 해서 두 번째 소설의 술자리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취한 상태에서 보람과 영호는 함께 떠나며 성준의 첫 번째 서울방문이 끝난다. 두 번째 서울 방문이 바로 영화의 처음 서울에 올라온 성준의 시점으로 설명된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전화의 내용과 뒤에 이어지는 영호와의 대화, 그리고 보람을 한번 봤었다는 영호의 말을 통해서 이것이 두 번째 만남이고, 이어지는 보람과 성준의 불륜이 이루어지는 세 번째 소설의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뒤섞인 퍼즐같은 시간 순서를 이해한대로 배열해보자면 ⓸⓽⑩⑪⓷⓹⓺⓻⓼ > ⓵⓶⑫ > ⑬ 순으로 진행 될 것이다. 결국 영호는 세 번째 술자리, 즉 세 번째 소설에서의 술자리가 지나고 보람과 성준의 관계를 눈치채고 성준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기묘하게 같은 공간, 같은 앵글로 찍힌 쇼트들을 시간적 순서를 섞어 배열함으로써 이 파편처럼 흩어진 사건들을 재구성해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해하려 하지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들을 해석한 관점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이 영화의 시간을 또 다른 시간대로 해석을 했을 것이고, 이 뒤죽박죽한 시간대를 이해하는 방법도 모두가 각자 다를 것이다. 이것이 마치 시와 단어들의 나열 같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확한 인과관계에 기반하여 관객들이 정확한 사실과 배우들의 감정들을 전달받는 기존 영화들과 조금 달이 <북촌방향>은 의도적으로 파편화된 장면들을 관객들이 스스로 조합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간다. 이 영화가 다분히 찌질한 성준의 며칠간을 다룬 이야기라고 이해할 수도 있는 반면, 몇 년에 걸쳐서 몇 번 서울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소설에 들려 술을 먹다 결국 친한 형의 여자와 바람이 나버린 성준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영화가 진행되는 문법은 열려있다.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의 시간적인 배열은 누구도 확신 할 수 없을 만큼의 조그마한 인과만을 가지고 파편화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좋고 특출난 영화적 가치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볼 때 매번 다른 영화. 그것이 <북촌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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