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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Nov 20. 2024

인생의 갈림길에서 울고 있다면

삶은 녹록지 않다만

  수능이 끝나자 사교육업체나 언론에서 "쉬웠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이 한마디에 누군가는 허탈해하고, 누군가는 불안해하며, 또 누군가는 좌절한다.  시험을 치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학부모들이 더 침울해 보인다.  나는 이번이 두 번째 고3 학부모라 그런지 마음이 담담하다.


  둘째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중학교 입학 직후, 일본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에 매료되어 학교 배구부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친구들과 함께 배구를 연습했고 학교 대표로 배구경기에도 참여했다.  나를 닮지 않은 그 적극성에 감탄하면서도 '저 열정도 금방 식겠지.'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안은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운동회 때 아들 삼 형제가 모두 달리기 꼴찌였다고 한다. (우리 집 최고의 운동 기록이라면, 내가 올해 4월 달리기 클럽에 가입해 주말마다 달리기 연습을 하다가 지난달 4.2km 마라톤에 참가한 것이 전부다.) 

  아이는 배구를 통해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쌓았고,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을 나눴다. 노력한 만큼 어느 정도 실력이 늘어나는 운동의 솔직함에 매료된 것 같았다. 당시엔 아이 학업 성적이 좋았기에, 운동에 빠져 학원 일정을 못 따라갈까 봐 잠시 걱정했을 뿐이었다. 덕분에 집에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특별한 배구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배구공은 온전히 딸아이 눈에만 보이는 명품이었다.

하이큐 애니메이션(OTT에서 상영중)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이에게 어느 학교에 가고 싶은지 물으니 '좋은 학교'라며 빙긋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영재고등학교에 원서를 냈다. 수학, 과학 선행학습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며 말렸지만, 아이는 오히려 엄마가 자신을 단정 짓는다며 화를 냈다. 결국 중학교 담임 선생님의 응원을 받으며 아이는 시험을 봤고, 예상대로 불합격했다. 아이는 시험을 보고 돌아와 "수학이 주관식이어서 놀랐어."라고 했다. 기본 정보도 찾아보지 않고 지원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게 더 놀라웠다. 인터넷만 봐도 영재고 시험이 서술형이고 난이도가 높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어차피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그저 해프닝쯤으로 여겼다.

  이후 아이는 이과 중심 일반고에 진학했다. 초중등 시절 수학을 많이 공부해 둔 덕에 내신만 관리하면 좋은 대학을 가리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코로나에 걸려 아이는 일주일간 등교를 못 했다. 부장 선발과 생기부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 걱정됐다. 그런데 아이는 첫 등교 날부터 체육관에 계신 체육 선생님들을 찾아가 배구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영화 같은 결말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열정 넘치는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테스트는 했지만, 실력이 부족했는지 취미 동아리로만 하라고 했다. 대입을 앞둔 터라 아이의 친구들도 이미 낭만을 접었고, 실제로 배구할 친구도 없었다.


코드는 잡을 줄 아니?


   큰아이 입시를 막 끝낸 터라 이번엔 초짜 고3 엄마가 아니니까 고수는 아니어도 중수 정도의 심정으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날 하교가 늦어져 물어보니 연습실에서 베이스기타를 치고 온다고 했다. 용돈을 모아 몰래 15만 원짜리 베이스기타를 샀단다. '아~정말 지덕체를 제대로 갖추려고 하니? 남들 다 공부하는 마당에 웬 베이스기타냐?' 나는 한숨이 절로 났다. 아이는 학교 교장실까지 찾아가 연습 공간을 요청했고, 덕분에 학교에서는 이 열정 많은 아이와 그 친구의 간청에 화답하듯 밴드 연습실을 만들어주고, 천만 원어치 악기를 갖춰주었다. 내가 잠든 사이 연습했다니, 아이는 온전히 그 세계에 빠져 있는 듯 했다. 나는 이 돌발형 아이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또 한편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2학년 초, 수학 학원에서 아이가 자주 졸고 아예 작정하고 엎드려 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이는 베이스기타를 시켜달라고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이제 와서 음악을?' 싶었지만, 고집 센 성격을 아는지라 수학 학원 근처 음악학원을 보내줬다. 아이는 베이스기타 레슨은 물론, 청음과 화성 같은 생소한 과목도 배웠다. 진로 변경이 늦었다며 더 많은 수업이 필요하다고 해서 잠실의 실용음악학원도 찾았다. 혹시 아이에게 내가 모르는 숨어있는 재능이 있나 싶어 기대와 불안을 안고 아이의 테스트를 지켜봤다. 실용음악 학원 선생님이 "코드는 잡을 줄 아니?"라고 질문하자, 아이가 수줍게 "아니요"라고 답했다. 의외의 답변에 놀라 선생님이 "그럼 어떻게 쳤어?"라고 묻자 아이는 "유튜브 보면서 외웠어요"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낯선 세계를 경험하게 됐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모습에 서글퍼졌다. 특별한 재주 없이 평범한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오히려 협소한 선택지를 걷는 것이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아마도 실력 좋은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 한계를 깨닫고 돌아오리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생각이 아이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다른 학부모들과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보컬 학원을 보냈더니 결국 제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거나 '흔들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등 수많은 근거 없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럴 때, 부모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참 어려운데, 나는 아이의 선택지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이후 큰 변화들이 도미노처럼 밀어붙였다. 아이는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했다. 베이스 기타 실력을 쌓기도 전에 베이시스트의 스타일부터 따라 하기 시작했다. 피어싱을 하고 머리를 탈색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무너졌다. 네일아트 한 번 안 해본 내게는 낯선 세상이었다. 차라리 학교가 복장 규정을 엄격하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감당하기 힘든 '자율'이 원망스러운 적도 있었다. 

  요란한 고등학교 생활에 실망과 배신감이 커져갔다. 점점 딸과 부딪히지 않으려 했고, 거리를  두는 동안, 나 자신을 더 많이 들여다보게 됐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는 동안, 책을 썼다. 그 책이 바로 <엄마를 위한 멘탈 수업>이었고, 그 안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잠시 눈을 감으면 생각이 아이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눈을 살짝 감으니, 처음엔 암흑인 것 같았지만 점점 내 자신이 보였다. 


넷플릭스 상영중 <스포트라이트는 나의 것> : 싱글맘으로 살아온 리펀이 성장한 딸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

  

   딸이 지난주 수능을 봤다. 3학년 때는 아예 공부를 놓은 터라 의미가 있었을까 싶다. 예체능은 내게 낯선 세계라 관여하지 않았다. 베이스기타가 평생의 직업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삶의 한 조각이 되리라 믿었다. 언젠가 힘들 때, 베이스기타를 연주하며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지. 보컬이나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랑 협업을 하다 보면 마음을 맞추고 배우는 것이 있겠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여 해봤으니 후회는 없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과 감정을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지금 17살인 딸도 훗날 이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진 못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효율적인 선택만을 강요했는지 모른다. "좋은 학교에 가야 좋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도 만날 수 있어"라고만 했지,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았다. 

  


너 많이 힘들었겠다.



 혹자는 '건강하게 실패하는 법'이란 어색한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법이다. 지금의 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아이를 안아주는 엄마

 "너 많이 힘들었겠다. 실패라는 건 즐거운 건 아니야. 바닥을 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익숙하고 똑같아야만 하는 건 아니야. 사는 동안 이 안에서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 그때의 감정을 잘 다스려 다시 한 번 도전해보는 것, 그리고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을 찾는 것, 그것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네 목표를 바라보는 거지. 네가 해보고 싶은 게 뭔지, 네가 내는 소리는 어떤 건지 잘 들어봐."


 실패에서 헤어 나오기 전까지는 건강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단지 그것은 후에 의미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건강하게 실패하는 법'이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제한된 실패 경험 안에서만 적당히 아문 상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패는 어찌 되었든 아프다. 그러니 응원만이 필요할 뿐이다.


 로이스 로리 Lois Lowry 가 소설 《기억전달자(The Giver)》는 모든 사람들이 12살이 되면 위원회로부터 직업을 배정받는다. 사람들은 그 직업을 평생 이어가며 살아가고, 사회는 질서와 안정을 중요시한다. 주인공 조나스처럼 과거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기억전달자 외에는 누가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끔찍한가? 아니면 얼마나 느슨하게 중독적인가? 어쩌면 부모로서 아이가 더 우월한 위치를 선택하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바심 내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둘째의 방황과 좌충우돌의 선택지를 지켜보는 동안 내가 그린 그림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늦춘 결과, 지금의 나는 그다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시험이 쉽다 하니 몇 점 차이로 마음의 낙폭이 클 아이들이 참 처연하게 느껴진다. 가수 박진영 씨는 과거 수능을 마친 학생들에게 X에 글을 남겨 주목을 받았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 개의 세상이 엎치락뒤치락 뒤바뀌며/ 그 두 세상이 다시 네 개의 세상으로, 8개의 세상으로, 또 나뉘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략) 20살에 보았던 영원할 것만 같던 그 두 세상은 어느 순간엔가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없는 듯했다./20살,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중략) 자신의 소신과 꿈을 가지고 끝없이 노력했던 사람은 그 두 개의 세상의 경계선을 훌쩍 넘을 수 있다.

- 2013년 박진영 씨가 올린 글/X(구 트위터) 'JY Park' (인사이트 재인용)


  나는 그 글을 읽고, 문득 박진영 씨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다. 부모로서 우리가 아이이게 해주었어야 할 위로를 그가 대신해줬다. 아이 성적 때문에 속상하여 퀭한 눈으로 지내고 있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복잡한 선택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정작 아이들에게는 '수능 성적'이라는 두 갈래 길만을 강요해 왔다. 그리고 그 결과에 아파하는 것은 정작 우리 부모들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 세계 속에서, 두 개의 세계는 점차 네 개, 여덟 개로 퍼져 나가지만, 여전히 두 세계에 갇혀 있는 우리를 깨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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