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것을 많이' 내주는 데 지친 사람들을 위해
유아교육 현장에서는 몇 가지 신념들이 제대로 된 검증이나 질문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 혼자 놀이하는 유아는 외로우니까 함께 놀이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 유아가 장시간 특정 놀이를 하는 것은 놀이에 몰입하여 자신만의 지식을 구축하는 상태이다.
- 놀이의 주제를 제안하며 친구들의 역할을 정하고 놀이를 주도하는 유아는 리더이다.
이 외에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신념 중에 가장 강력한 신념 중 하나가 바로 '유아들은 감각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에 손을 이용한 감각 경험은 뇌를 자극하고 발달시켜 인지적으로 똑똑한 아이가 될 거라는 전형적인 설명이 따라붙는다. 유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색칠하기 활동, 교사가 준비한 요리 재료를 만지고 섞는 활동, 점토를 조물락거리는 모든 경험이 뇌 발달을 촉진하는 감각교육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 활동이 정말 도움이 되나요?
교사였을 때 나도 다양한 경험, '와' 하고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는 새롭고 특별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점차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힘주어 빡빡 색칠하고, 외곽선을 벗어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정말 유아들에게 필요한 감각 경험일까? 이런 활동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반복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이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모든 손동작이 뇌 발달로 이어진다는 믿음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이러한 맹신은 감각 경험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도 막아버리는 방어막이 되었다. "이 활동이 정말 도움이 되나요?"라는 질문은 교육 현장에서 흔히 공격적인 도전으로 오해받곤 한다. 마치 기존의 교육 방식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모든 감각 경험이 똑같이 뇌 발달에 기여할까? 단지 몸을 움직였다는 이유만으로 뇌가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뇌는 어떤 감각 경험을 '배움'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경험은 무의미하게 흘려보낼까?
어른도 책을 통해 지식을 쌓기도 하지만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특히 유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전략이다. 사피엔스가 발달시킨 큰 뇌를 가진 채로는 어머니의 출산 통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뇌의 상당 부분은 태어난 후에 발달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생물학적 사실은 유아기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출생 후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뇌 발달 과정에서 유아가 어떤 감각경험을 하느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 질문이 등장한다
모든 감각경험이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인가?
현장의 교육을 살펴보면,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등의 오감 중에서도 주로 시각과 촉각에 의존하는 활동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려 애쓰는 교사들의 노력은 분명 가치 있지만, 단순히 많은 활동을 제공하는 것과 질 높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다르다.
유아에게 의미 있는 감각 경험을 제공하려면, 먼저 뇌가 손과 몸을 통해 들어온 감각 정보를 어떻게 통합하고, 그것을 사고와 이해, 추론, 문제 해결로 이어가는지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이 활동을 하면 창의성이 발달한다" 같은 피상적인 주장보다, 감각 경험이 뇌의 특정 영역을 어떻게 자극하고 연결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연구가 감각 경험과 인지 발달 간의 상관관계를 증명했지만,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 경험이 어떻게 뇌의 신경망을 형성하고 강화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스토리이다. 이러한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무수한 가짜 감각 경험으로부터 진짜 가치 있는 경험을 구별해 낼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될 것이다.
김대식 교수의 책 <당신의 뇌 미래의 뇌>에서는 우리의 뇌를 두개골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상태로 묘사한다. 이 1.4kg의 두부 같은 물렁한 기관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대신 몸의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신호를 해석하여 바깥세상을 이해한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이라는 비유처럼, 우리의 뇌는 동굴과 같은 감옥 안에 갇혀 있지만 바깥에서 오는 그림자(정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우리 손이 사물을 만지고, 눈이 색을 보고, 귀가 소리를 들을 때, 뇌는 이 모든 감각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다. 대신 전기 신호로 변환된 정보만을 받아들인다.
유아가 점토를 만졌을 때 생각해 보자. 점토의 부드러운 감촉이 그대로 뇌에 '복사'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의 촉각 세포가 감지한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된다. 눈으로 본 점토의 색과 모양도 망막에 맺힌 상이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에 전달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뇌가 모든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뇌는 까다로운 문지기처럼 두 단계에 걸쳐 정보를 걸러낸다. 첫 번째 단계는 감각기관에서 특정 자극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신호 중에서 일정 강도 이상의 신호만을 뇌에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신경세포는 특정 수준(-40에서 -35밀리 볼트) 이상의 자극에만 반응하는 '스파이크'를 일으킨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자극은 무시된다. 이렇게 이중으로 걸러진 정보만이 뇌에 도달해서 의미 있는 패턴으로 인식된다.
물렁한 두부 같은 뇌가 실제로 두부가 아닌 이유는 바로 이 스파이크로 들어오는 신호를 해석하고 통합하는 능력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 있는 감각 경험만이 진정한 학습으로 연결된다. 단순히 점토를 만지면 뇌가 저절로 발달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널리 사용되는 유아용 플래시카드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딸기의 이상적인 모습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카드는 오히려 감각경험을 제한한다. 실제 딸기는 익기 전의 흰색 부분, 표면의 노란 씨앗, 다양한 크기와 형태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단 하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만 반복해 보여주는 플래시카드는 유아의 인식 발달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내 아이는 이 카드로 효과를 봤다"라고 믿는 부모들도 이것이 실제로는 유아의 학습이 아닌 어른의 만족감을 위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동굴에 갇힌 뇌에게 어떤 감각경험을 제공할지는 더 신중하고 비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들은 거대한 소통 네트워크를 이룬다. 이 소통 체계는 세 가지 핵심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나뭇가지처럼 뻗은 수상돌기는 다른 세포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이 정보는 세포 내에서 처리된 후, '축삭'이라는 '전깃줄'을 통해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이 정보 전달은 '시냅스'라는 특별한 연결부에서 이루어진다.
뇌의 작동 방식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시각 정보의 처리이다. 우리 눈의 시각 신경세포들은 마치 특화된 전문가들처럼 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 어떤 세포는 오직 물체의 형태만 감지하고, 다른 세포는 위치만 파악하며, 또 다른 세포는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 알아챈다.
생각해 보자. A라는 시각 신경세포는 오직 45도 각도의 선에만 반응하고, B라는 세포는 원형 패턴에만 반응한다. 이처럼 각 시각 신경세포는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전체 이미지의 작은 일부, 하나의 픽셀만 담당한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우리가 풍경을 볼 때 이런 복잡한 과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천 개의 다른 신경세포들이 보낸 조각 정보들이 뇌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영화 제작 현장과 비슷하다. 조명 담당자, 음향 기사, 의상 디자이너가 각자 맡은 부분만 완벽하게 처리하고, 이 모든 작업이 최종적으로 편집실에서 하나의 영화로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 뇌도 수많은 신경세포의 작업을 종합하여 하나의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낸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두 눈이 협력하는 방식이다. 눈의 바깥쪽(측면) 망막에 맺힌 이미지는 같은 쪽 뇌로 직행하지만, 코 쪽(안쪽) 망막의 정보는 시신경 교차점에서 길을 바꿔 반대쪽 뇌로 향한다. 이렇게 해서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조금씩 다르게 본 두 개의 이미지가 뇌에서 만나 하나로 합쳐진다. 그 결과, 우리는 3D 세계를 보게 되는데, 이 과정은 첨단 영화관의 3D 기술보다 훨씬 정교하다.
이러한 뇌의 놀라운 정보 처리 방식은 유아의 감각경험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유아들이 세상을 경험할 때, 마치 카메라처럼 단순히 외부 정보를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재료, 매체, 놀잇감을 보더라도 감각 경험은 개인마다 다르게 처리되고, 뇌는 그것을 다르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감각'과 '지각'의 차이다. 감각(sensation)이 단순히 "이것은 빨간색이야."라고 단순히 자극을 인지하는 단계라면, 지각(perception)은 "이건 내가 좋아하는 자동차의 색이야."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이고 복잡한 과정이다. 같은 감각 자극에 따라 유아들마다 다른 지각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기억이나 감정, 문화적 배경에 따라 지각 경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색칠하기 활동을 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밌게 놀았던 추억이 있는 아이에게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경험하고 싶은 것이 된다. 이때 교사가 목표로 잡은 '손과 눈의 협응능력'이나 '손의 힘을 기르기'와 무관하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빈틈없이 잘 칠하는 기술보다, 그 활동 속에서 떠오르는 친밀한 사람과의 상호작용이다. 이러한 기억과 감정이 감각을 지각으로 바꾸는 것이다.
유아의 감각경험은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예술이 단순한 물감을 캔버스에 바르는 행위가 아니라 감각, 감정, 사고가 복잡하게 얽힌 창작물인 것처럼, 유아가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손동작 이상이다. 그것은 동굴에 갇힌 뇌가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정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창조하는 복잡한 과정, 즉 뇌에 새겨지는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많은 감각 활동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아의 뇌는 마치 두개골이라는 동굴 속에서 바깥세상의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존재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난 유아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하는 특별한 역할이 주어졌다. 우리는 유아에게 가치 있는 감각 경험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유아가 스스로 탐색할 수 있는 열린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해"라고 방법과 절차를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방식은 유아의 뇌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을 방해한다. 설사 함께 활동을 하더라도, 교사나 부모는 유아가 그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다 알 수 없다. 유아에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탐색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와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여러 감각이 조화롭게 작용하는 통합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오늘은 반짝이, 짧은 빨대, 폼폼이를 주면 아이들이 잘 가지고 놀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유아들을 대형 문구매장에 데려다 놓는 것이 나을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주변 대상과 의미 있게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각 유아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감각 자극에 대한 민감도도 유아마다 다르다. 유전적 연결성도 다르고, 태어나서 10~12년의 결정적 시기에 받아들이는 경험도 다르다. 또한 인간의 뇌 안에 있는 무수한 신경 연결은 성장하면서 필요한 것만 유지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용어는 모든 의미를 포용하지 못하며, 특히 유아들은 자신이 지각한 것을 정확히 표현할 언어적 능력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지각한 것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유아들은 '빨갛다'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빨강'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통합적 매체를 통해 유아가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손으로, 또는 몸으로, 얼굴 표정으로, 돌이나 점토, 끈, 나뭇가지 등 주변의 대상을 빌어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유아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변화도 중요하다. 매일이 똑같다면 그 환경에서의 경험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는 불합리한 상황을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교사와 부모가 익숙한 환경 속에서 유아에게 똑같은 경험만 제공한다면, 유아의 뇌는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낼 기회를 잃게 된다. 대집단으로 같은 물체를 보고 같은 감각 경험을 해도 지각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실의 배치를 바꾸고 동선을 바꾸고, 교구를 제시하는 방식을 바꾸는 등 얼마나 당신의 시도가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리 '꽥꽥' 강아지 '멍멍' 송아지 '음메음메'의 정형화된 방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넷째, 유아의 감각 경험을 사회적, 정서적 맥락과 연결시켜야 한다. 앞서 색칠하기 예시에서 보았듯이, 활동의 의미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정서적 경험에 있을 수 있다. 교사와 부모는 유아가 감각 경험을 통해 어떤 의미를 구성하는지 귀 기울이고, 그 과정을 존중하며 함께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공동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우리 성인에게도 값진 경험이 된다. 우리도 세상의 일부만을 보고 경험하는 제한된 존재이지만, 아직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유아들과 교류하며 우리 자신도 세상을 새롭게 지각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국 감각교육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자극을 주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동굴 속의 뇌에게 단순한 그림자가 아닌, 풍부한 이야기가 담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감각교육의 목표일 것이다. 새로운 눈으로 교실 문을 열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