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발자국, 어디로 가나요?

AI 시대, 새로운 기록을 상상하다

by flyingoreal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교무실은 유난히 조용해진다. 선생님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다음날 ‘놀이 발자국’ 통신문이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급에서 어떤 놀이를 했는지, 아이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 정리해 가정에 보내는 자료다. 바쁘게 움직이는 마우스 클릭 소리가 그날따라 더 또렷하게 들린다. 나는 늘 이 분위기가 조금 낯설다. 놀이를 나누기 위한 작업인데, 이상하리만큼 숙연하다.


선생님들은 모니터를 보면서 교실에서 활동한 사진을 고르고 순서를 배열한다.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또렷하게 보이도록 캔바로 이미지를 편집한다. 어울리는 프레임도 고르고, 이미지도 추가하고, 혹시 빠진 아이는 없는지 다시 확인한다. 부모가 읽기 편한 문장으로 고쳐 쓰기도 한다.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완성해 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렇게 애써 만든 기록이,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닿고 있을까.




유치원에서는 시험이나 점수로 아이를 평가할 수 없다. 놀이 관찰과 작업 결과물,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모아 교육과정을 돌아본다. ‘놀이 발자국’은 그 과정을 부모와 나누기 위한 형식이다. 아이의 발달을 돌아보고, 성장의 의미를 전하려는 노력이다. 그만큼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이 일이 반복될수록, 가끔은 기록이 놀이보다 앞에 서는 듯한 순간을 맞닥뜨린다. 전체 흐름을 정리하다 보면 아이 한 명 한 명의 작은 에피소드는 가려진다. 결국 ‘우리 교실에서는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라는 보고에 가까워지기 쉽다. 편집하는 교사는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읽는 부모에게는 교실의 온기가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 때도 있다.

unnamed (1).jpg 무한 편집, 놀이발자국 ©구글 Nano Banana

통신문을 읽다 보면, 내가 교실 앞을 지나며 들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나 발그레한 얼굴에서 느꼈던 흥분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이 들려주던 생생한 이야기도 글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어쩌면 연애의 우여곡절과 설렘이 빠진 채 남은 결혼 서약서처럼, 정돈되어 있지만 숨결은 덜 느껴지는 기록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Q. 그럼 <놀이 발자국>을 안 쓰면 되지 않나요?

유치원의 교육과정은 초중등과 다르다. 아이들은 배우는 방식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유아기는 아직 머리로만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눈을 마주치고, 손이 가는 것을 만져 보고, 친구와 갈등도 겪고, 울고 웃으며 세상을 익혀 가는 시기다. 수학을 잘하는지, 그림을 잘 그리는지보다 먼저 자라는 것이 있다. “이건 왜 이럴까?” 묻고, 다투고도 다시 손을 잡고, 기쁜 마음을 얼굴로 드러내는 일들이다.


배 속에서 세포가 나뉘며 몸이 자라듯, 아이는 세상에 나온 뒤에도 눈에 보이지 않게 계속 자란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질문에 답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표현하는 일은 무언가를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안에는 감정이 자라고, 관계가 넓어지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함께 들어 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연습한다. 놀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친구와 웃는다. 이 놀이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이 경험을 부모와 어떻게 나누고, 다시 아이와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고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Q. <놀이발자국>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놀이 발자국’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아이의 이야기를 제한된 통신문 한 장에 담기에는 늘 시간이 빠듯하다. 주요 놀이 흐름을 정리하다 보면 개별 아이의 이야기는 쉽게 묻힌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사진 중심의 편집이 되고, 교사의 머릿속에서 한 차례 정리된 이야기는 짜임새는 생기지만 생동감은 줄어든다. 놀이 중심이던 활동이 어느새 ‘잘 정리된 결과’로 남는 순간이 생긴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엉뚱한 질문, 예상치 못한 다툼, 오래 붙잡고 씨름한 문제들, 서로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을 고치는 시간들. 그런 장면들이 쌓여 유치원의 교육이 된다. 그런데 ‘놀이 발자국’이라는 형식을 입는 순간, 아이들의 이야기는 교사의 정리된 언어를 거쳐 마치 수행보고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왜 이 형식을 정답처럼 여겨 왔을까. 놀이의 결과를 나누는 방식은 더 자유로울 수 없을까.



우리 아이는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느꼈나요?


나는 그 질문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혹시 우리가, 교사도 부모도 아이도, 화려한 이미지 안에 너무 쉽게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의 기록을 자꾸 상상하게 된다.


목요일마다 반복되던 그 풍경, 정성껏 만든 놀이 발자국을 다시 들여다보면서도 느껴지지 않던 아이들의 이야기. 그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교사들 역시 놀이 발자국에 대한 부담을 종종 털어놓는다. “평소에도 사진을 보내는데, 굳이 이렇게 주제를 묶어 제한된 분량으로 안내해야 하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금세 열 가지쯤 떠오르지만, 해야 하는 이유 역시 적지 않다.

결국 문제는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닐까. 의미가 있다면, 더 효율적이고 덜 소모적인 방법을 찾는 일이 남는다. 나는 그 답을 찾고 싶었다.



1월부터 나는 AI 구글 스튜디오를 활용해 ‘바이브 코딩’을 시도해 보았다. 놀이 발자국을 완전히 새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조금 더 살아 있는 형태로 전달될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아이마음(가칭)> 바이브코딩 데이터 입력 시연> ©Flyingoreal

해당 기간의 놀이 주제를 전개하면서 아이들이 인상 깊게 나눈 대화, 그 덕분에 성장했다고 느낀 에피소드들을 입력하면, 설계된 구조에 따라 카드뉴스 형식으로 정리해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그동안 “달과 관련된 그림책을 읽고, 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라고 기록되던 문장이 있었다면, 그 안에 실제로 오간 아이들의 말은 무엇이었는지, 엉뚱한 상상에 왜 모두가 웃었는지, 그 과정에서 각 아이가 무엇에 관심을 보였는지까지 더 구체적으로 담아보는 것이다.

<아이마음(가칭)> AI 카드뉴스 놀이발자국 ©Flyingoreal

이렇게 하면 아이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살아서 가정에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교사에게는 종합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부모에게는 ‘우리 아이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보이는 기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AI가 일부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접근성을 낮추고 부담을 덜어 주는 방식이라면 충분히 의미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개인정보 문제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아이들과 관련된 내용을 AI에 입력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그 우려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다만 모든 기록이 동일한 무게의 개인정보는 아니다. 교사의 관찰을 더 잘 정리하기 위한 도구로, 다양한 관점을 참고하고 다시 수정해 가는 과정이라면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사로 마지막 해에 만들던 놀이 발자국을 떠올린다. 그때와 거의 같은 형식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기록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살아 숨 쉬는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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