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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Aug 10. 2022

방학 동안 유치원에서는 무슨 일이?

초보 원감 방학중 유치원 지키기 미션 수행 중

방학 동안 유치원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방학. 교사들이 유치원을 떠난다. 유치원에서 1~2일 근무하는 것을 제외하면 교사들은 방학 동안 공식적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특별한 출장 외에는 41조 연수를 내거나 연가를 다. 일반 직업군에서야 학기 중에도 휴가를 내고 여행을 할 수 있지만 교사들은 수업이 우선이므로  방학이 되어야 휴가를 쓸 수가 있다.

  방학일은 무척 분주하다. 교사들은 방학식을 마치고 유아들이 귀가한 뒤에 교실 정리를 한다. 학급에서 사용했던 교구를 자료실에 돌려놓고, 다음 학기를 위해 미리 교구 바구니를 세척하고 소독이 필요한 교구도 정리한다. 방학 동안 관리가 필요한 화분은 화단으로 옮기고 세탁이 필요한 카펫을 모은다. 혹시 방학중에 업무와 관련된 일로 유치원을 오가는 일을 피하려고 꼼꼼하게 체크한다. 교육지원청에 보고해야 하는 내용이 있는지, 방학중에도 방과후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문제가 될 만한 요인은 없는지, 학부모에게 놓친 안내사항은 없는지 점검한다. 그런 뒤에야 충전과 휴식, 자기 연찬 등을 목적으로 연수계획서를 제출하고, 나이스에도 복무를 단다.  나는 바쁘게 짐을 정리하는 교사들을 잠시나마 부러운 듯 바라본다. 그러나 부럽다고만 할 수 없는 미묘한 마음이 든다. 한 학기 동안 각 교실에서 아웅다웅하며 지도하느라 애쓴 교사들을 생각하면 방학을 통해 충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슬며시 걱정이 고개를 내민다.


  방학에 교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해서 유치원이 off가 되는 것은 아니다. 70명이 넘는 방학중 방과후과정 유아들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관리자는 마음이 무겁다. 비록 근무조로 하루에 1명씩 교사가 나오긴 하지만, 방학중 방과후과정은 오전 운영인력과 오후 방과후과정 교사의 협업으로 운영된다. 방학중 방과후과정 운영인력은 방학기간 중 오전에만 방과후과정 유아를 돌보기 위해 채용된 분이므로 아무래도 우리 유치원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유아들과도 새롭게 만나는 분이니까 염려가 된다. 원감은 학기말을 앞두고 방학중 방과후과정 운영인력 계획, 공고, 채용까지 더 분주하다. 모든 유치원의 원감이 운영인력 채용 업무를 하는 건 아니지만 교사들이 인력채용업무의 부담을 덜고 수업에 집중했으면 하는 원장 선생님의 요청으로 거의 모든 인사업무는 내가 맡고 있다. (처음 맡을 때가 힘들지, 두 번째 하니 그냥 내 업무려니 싶다.ㅜㅜ) 업무에 비해 운영인력의 임금 수준이 높지 않고, 실업급여에도 미치지 못하니 단기간 운영인력에 대해 지원 선호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운영인력 모집뿐만 아니라 사전연수도 철저히 한다. 운영인력에게 아동학대 방지 연수를 하고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지만 늘 조심스럽다.


 교사였을 때는 잘 몰랐지만 원감이 되고 보니, 방학기간은 학기 중 업무를 이어나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방과후과정 유아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이 크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다치면서 큰다'는 낙천적인 생각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놀이하면서 생겨나는 작은 상처나 부상에 대해 가볍게 지나갔다. 그러나 요즘처럼 저출산 시대에는 유아들의 안전사고는 작은 것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급적 안전사고가 없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오늘도 한 유아가 강당에서 놀이하다가 놀이기구에 손가락을 찧어서 빨갛게 부어올랐다. 내 자녀였다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정도의 상처였다. 유아의 부모와 연락해보니 직장에 있어 일찍 나오기 어렵다고 한다. 유아를 지도했던 운영인력은 부모와 전화하면서 긴장했는지 전화를 끊으며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죄송합니다"가 적절한 말이 아니었는지 전화를 끊고 난 운영인력에게 고쳐 말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으련만 이러한 상황에서 예민해져서 까칠하게 말하는 초보 원감이다. 원치 않은 상황에 대한 전화를 받을 때, 하나하나 부모에게는 불편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해야 응대해야 한다. 아마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 텐데, 긴장한 상황에서는 자동적으로 입력된 말들을 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부모는 유아의 상태를 볼 수 없는 상태여서 우선 e-알리미로 유아의 손가락 상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사진을 보내주었다.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고 미연의 문제로부터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정형외과에 데리고 갔다. 유아는 내 차를 타고서는 "우리 아빠 차는 이것보다 더 큰데."라면서 좀 실망했다는 투로 말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게도 멋진 차가 있으면 좋으련만 내게 차는 '이동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장거리를 원 없이 다녔고 그러다가 벌써 주행거리 10만 km를 채웠다. 선생님 차라 기대를 했을 텐데, 약간 민망한 마음으로 유치원에서 가까운 정형외과에 갔다. 유아의 안전을 위해 공무직원이 아이와 동석했다. 병원에서 X-Ray를 찍어보니 의사는 다행히도 뼈에 이상은 없고 손톱 주변 감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알코올로 소독하는 정도를 권했다. 다행이다. 집중호우가 계속된 날, 경미한 안전사고로 병원을 갔으니 좋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만했으니 다행이다. 아이는 병원에 다녀와서 마음이 좀 누그러졌는지 돌아오는 차에서 말수가 늘었다. 나는 뜬금없이 "선생님 차는 열 살이야. 그런데 나이는 많아도 어디든 잘 갈 수 있어. 그래서 예랑(가명)이랑 병원도 다녀왔지."라고 말하자 아이는 "우리 엄마 차는 나이가 더 많고 차에 곰팡이도 생겨서 버리고 아빠 차만 타요. 그런데 차는 어디에다 버리는 거지?"라며 나를 위로해주는 것인지 삼천포로 빠졌는지 모를 말을 이어간다. 연식이 오래됐다는 표현을 '열 살'이라고 표현했는데, 금세 알아듣고 대화를 이어가는 유아가 귀엽게 느껴졌다. 유아가 진료를 받는 동안, 의사의 동의를 구해 병원 간판과 치료장면을 사진으로 찍었고 유치원에 돌아와 부모에게 e-알리미로 보내주었다. 유아를 동반하여 병원에 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원감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원만하게 문제 상황을 해결했다는데 안도했다. 



  방학기간 동안 교사들에게는 충전의 시간이 주어진 만큼 돌아왔을 때 좀 더 여유 있고 많이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오길 바란다. 책에만 갇혀있는 그런 지식 말고, 깊이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수업에 대한 고민들을 더 발효시켜오길 바란다. 그러기까지 나를 포함하여 방학기간 동안 유치원을 지키는 사람들은 방학중 방과후과정 유아들이 유치원에서 안전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어진 일들을 해나갈 것이다. 어려움이 많긴 하지만 기다릴 수 있다. 암, 기다릴 수 있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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