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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Jan 24. 2023

귀를 열고, 마음은 덜어내길

위로로 시작하는 한 해

 참으로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글을 올린 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냐는 완곡한 브런치 알림이 여러 번 왔을 때마다 약간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글을 올려서 스스로 마음의 부담이 될까 봐 차라리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원래 나의 의도는 공립유치원에 대해 안내해 주려는 것이었다. 도대체 유치원 안에 근무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어떠한 마음으로 각자의 일을 충실히 해내는지, 아이들을 가까이 바라보면서 어떠한 생각들을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낭만적이었다.



 원감으로서 1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그런 막연한 생각은 점차 흐릿해지고 마치 색종이 접듯 나의 의욕을 하나둘 접어가기 시작했다. 교사였을 때는 선배이자 같은 동료로서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었고, 온전히 교실 속에서 펼쳐갈 수 있었던 활동들이 관리자가 되었을 때는 머나먼 이야기가 되었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잘해주기만을 바랄 뿐, 강력하게 제안하면 부담을 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교육청에서 관리자의 갑질예방 가이드를 안내했던데, 더욱 낮추고 낮추란 뜻이겠다. 그러니 좋은 관리자는 가급적 입을 열기보다는 귀를 열어주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선을 넘지 않는 일이 최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배우는 것 같다. 일이 잘 되는 것은 또 다른 '복잡한' 문제이다.



 지난 학기, 아이들을 기관에 맡기고, 불안하고 걱정스러워할 어머니들을 위해 그림책 소모임을 열었다. 아이들이 어리고 초보 엄마니까 불안할 수 있지, 조금 더 여유로운 눈으로 '나'와 '아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원거리 발령을 받아 하루 2시간 30분을 출퇴근 시간으로 버리며, 지옥철에 휩쓸린 사람처럼 초보 엄마의 시기를 후딱 보내버렸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무엇이 중요했는지 옥석이 가려지기에 후배인 셈이 되는 어머니들과 나누고 싶어 소모임을 가졌다. 참여한 어머니들은 만족스러워하는 듯했지만 그런 위안의 시간이 불안을 낮춰주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실내에 CCTV를 달아서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운 상황이 있을 때, 언제든 확인하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전화는 간간이 왔다. CCTV가 사고를 예방해주지는 않지만 상황파악을 위한 자료로는 사용될 수 있다. CCTV가 학부모의 요구 때문만도 아니고 교사들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일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상황이 촬영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정에도 CCTV를 설치한 경우도 있다 하니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교육이 여전히 신뢰의 문제라고 여겨져서 서글프고 답답하다. 그런 날은 내가 예전에 만났던 어떤 어머니를 참 떠오르게 한다. 참 좋으셨던 분.


 한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카메라를 숨겨 촬영하고, 연예인의 자녀들의 반응을 살피고 귀엽다며 환호했고 나 또한 그 팬 중의 하나였던 것이 참 후회가 된다. 10년 전, 한 엄마는 직장에서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가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걱정되어 CCTV를 설치했는데, 그 때문에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거나 CCTV의 방향을 돌려놓고 안 보이는 위치에서 생활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때, 첨단 설비를 발 빠르게 들여놓은 그 엄마의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내 아이가 숨통이 좀 더 트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다.



 공립유치원에서 원감으로 생활해 봤지만 나는 아직 생존기의 초보다. 그래서 교사로서, 엄마로서 나의 경험에 관리자 선배님들의 조언을 귀동냥하여 올 한 해를 또 그려나가게 될 것이다. 올 한 해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며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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