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말 원감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는 다음해 업무분장이다. 교사마다 입장과 이해가 다르고, 경험과 강점도 차이가 있다. 2월초 교사의 전보(이동) 결과에 따라 다음해 유치원에서 일하게 되는 구성원이 바뀌기 때문에 미리 업무분장을 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한 차에 타고, 일년살이 여행길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함께 차에 올라타러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서로 다른 짐을 들고 타야 하는데, 저 사람이 나보다 더 가벼운 짐을 들었다거나 나는 멀미가 심한데 이런 자리를 주면 어떻게 하느냐느니, 늦게 왔다고 서서 가는 게 말이 되냐고, 기사가 바뀌고나서 운전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가벼워보이는 짐을 서로 들겠다고 해서 난처해지는 것은 이제 일상이다. 그렇다고 업무분장을 위해 가위바위보나 뽑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어쩌면 실제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곳도 있을까?)
학년과 업무를 배정하는데 예민한 것은 당연하다. 업무의 성격과 비중이 무거운 경우, 학급 유아를 관리해야 하는 담임교사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나도 평교사 시절을 겪었으니 교사들이 가진 딜레마를 모르진 않는다. 수업만 하면 참 잘하겠는데, 수업이 끝나면 연구도 하고 싶은데, 교육 현장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료집계 보고를 해야 하고, 다음날 행사를 위해 업체에 확인을 해야 하고, 아이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주문하는 일도 해야 한다. 아이를 교육하는 일과 아예 상관없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을 처리하다보면 교사라기보다 회사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연락없이 결석한 아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확인도 하고, 내일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숨을 돌릴라치면 퇴근시간이 가까워온다. 상황이 이런데 업무를 안 할 수는 없으니 가급적 가벼운 일을 맡아야 일에 허덕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남은 자리를 두고 어떤 의자를 앉을 것인가, 어느 쪽 방향으로 뛰어야 할까, 스트레스와 피로함으로부터 안전할까 머리 속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업무분장은 원장이나 원감이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다. 보통 원하는 학년이나 업무 중 한 가지는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분장을 한다. 업무 중에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해야 하는 업무도 있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자료집계를 하거나 보고하는 업무도 있고,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교육공동체 전체를 움직이는 업무도 있다. 교사의 성격이나 경험치에 따라 선호하는 업무들이 나눠진다. 초중고에 비해 유치원은 학급수도 적고, 교사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하나의 주요한 업무에 부수적인 업무들이 끼어있다. 학년말에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업무 중에 난이도가 높은 것, 다른 사람이 맡은 업무 중에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 재배치가 필요하거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견을 기록하여 공유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업무를 맡은 사람의 시선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이 덧붙여져서 유치원 업무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과 '옳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서 또한번 원장, 원감의 위치에서 반영할 의견과 반영이 어려운 의견을 가려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업무 담당자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한다.
원감이 되고 나서 교사때와 달라진 것이라면 교사의 입장 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와 사람들에 대해 좀더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의 업무에 대한 이해가 더 생겼다. 반면, 교사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려 하지만 아무래도 라떼를 들먹거리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려고 정말 정말 노력한다.) 수업에 들어가느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어떻게 교사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채웠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감 첫 발령을 받아 함께 지냈던 원장선생님은 늘 교직원들 앞에서 '역지사지'를 강조하셨다. 한마디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것인데, 결코 쉽지 않았다.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고 주장할 수 있어야 똑똑하다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이번엔 그냥 내가 하지."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귀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한 번 하면 다음번에도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해질까봐 어설프게 발 담그는 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는 마음을 함부로 풀어낸 결과로서 '의무'와 '책임'으로 변하고, 덕분에 일을 덜게 된 사람은 어느새 '감사'를 잊어버린다. 그 서운함이 첩첩이 쌓이면 그 공동체의 온기는 사라진다. 업무에 대한 두려움, 업무는 교육보다 덜 중요하다는 과소평가가 오히려 업무에 대한 경계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감의 설득력에 의존하기에는 업무분장은 불편한 숙제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는
마음을 함부로 풀어낸 결과로서 '의무'와 '책임'으로 변하고,
덕분에 일을 덜게 된 사람은 어느새 '감사'를 잊어버린다.
그 서운함이 첩첩이 쌓이면 그 공동체의 온기는 사라진다.
요새 느리게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책이다. 글이 어려워서 느리게 읽는 것이 아니라 한장 한장 곱씹으며 읽다보니 다른 책에 비해 읽는데 오래 걸리는 것 같다. 그 중 한가지 이야기를 전해 본다. 캐나다 북부 인근마을에서 한 사람이 임신한 딸을 데리고 차를 운전해서 가고, 또다른 한 사람은 편찮으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차를 몰고 간다. 거대한 나무가 눈길에 쓰러져있어 그들은 멈춰섰으나 서로의 사정을 듣고 곧바로 차키를 바꿔서 운전함으로써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공감과 치유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문제는 꼭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면 아주 쉽게 풀린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조정을 거쳐 좀더 민주적으로 협의를 잘 할 수 있을까? 새해에는 그런 업무 분장을 꿈꿔 본다.
(* 후일담. 그리고보니 아버지를 업고 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를 돌보러 혼자 가는 거였는데, 마치 서로 방향의 반대쪽에 병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그리고 보니. 이래서 책을 더욱더 천천히 읽어야 하는 건가보다. 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