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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식 멍하러 갑니다

- 지금 당신에게 식물 생활이 필요한 이유 ep.01

by 알레

식물 생활을 하면 무엇이 좋을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난 왜 식물 생활에 빠지게 된 걸까 질문을 던져보았다. 결국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소위 흙 파먹고 살던 시절의 추억과 흙을 만질 때 느껴지는 평온함이 가장 큰 이유였음을 깨달았다.


베란다 한쪽 편에 쪼그리고 앉아 흙을 조물조물 거리며 분갈이를 하는 것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던 나에게는 여전히 큰 위안이 되어준다. 손톱 사이는 까매지고 먼지는 폴폴 올라오지만 그 시간만큼 다른 것을 다 잊고 오롯이 그 행위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낀다.


식물 집사로 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원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하나씩 식물을 집에 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체 가만히 두고 보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 친구들에게도 어울리는 집을 마련해 주고 싶어서 토기 화분을 구입했다. 막상 화분을 구입해보니 분갈이를 할 줄을 몰라서 클래스를 등록하게 되었다. 화분에 돌을 깔고 흙을 넣어주고 잘 다독여준 후 시원하게 물을 뿌려줄 때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둥글넓적한 잎사귀에 토독토독 물이 닿을 때면 어쩐지 이 친구들도 기분 좋아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삶의 치열함 가운데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바빴던 어느 날 점점 희미해진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식물들과 함께 하는 삶을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다. 결혼 후 처음 들인 식물은 천리향이었다. 그윽한 꽃향기가 천리까지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을 가진 천리향은 어린 시절의 기분 좋은 기억을 담고 있는 식물이다. 어머니께서 가꾸셨던 많은 식물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식물이기도 하고 그 향이 너무 좋아서 더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추운 겨울 차가운 기운을 잔뜩 받고 나면 어느새 꽃봉오리가 올라와 새초롬한 분홍빛 꽃을 틔우며 향기와 함께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아내와 함께 매해 겨울이 되면 늘 천리향의 꽃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천리향을 집에 들일 때만 해도 내가 식물 집사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식물 생활


식물 집사 생활을 하다 보니 어떨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 체 멍하니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맞을 때 영롱하게 빛나는 연둣빛 빛깔은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담아두고 싶어 나의 모든 시신경을 집중하게 만든다. 예전에 식물을 볼 때는 그저 쓱 하고 훑어보고 마는 것이 전부였다면 초록이 들과 함께 살아가는 요즘은 잎, 잎맥, 줄기, 생장점, 색깔, 모양, 질감, 흙의 상태까지 찬찬히 살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식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같은 초록이 절대 같지 않은 초록이라고 이야기하면 참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다른 걸 어쩌겠나.

가끔 TV에 이제까지의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훌쩍 떠나 전원생활을 즐기며 여유로움을 되찾았다는 누군가들의 이야기가 소개될 때면 한없이 부럽기만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나도 언제고 다 정리하고 떠날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에도 조그마한 산이 있고 공원 하나쯤은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헛헛함이 남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내 안에 늘 자리했던 갈망의 본질은 혼자 머무를 수 있고 사색할 수 있는 '나만의' 정원,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에 대한 갈망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식물 생활은 조금은 그 마음을 충족시켜주었다. 언제든 바라볼 수 있고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만들 수 있는 초록 식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선택한 절충안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침의 일도 잊어버릴 정도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에게 '잠시 멈춤'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것도 식물들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는 우리들의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땅히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당신도 식물 생활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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