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당신에게 식물 생활이 필요한 이유 ep.02
식물 생활을 하다보면 주변에서 종종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 있다. "식물을 잘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되?" "난 식물 똥손이라 맨날 죽이는데, 안 죽일 수 있는 노하우 좀 알려줘" "물은 언제 줘야 되?"
이러저러한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나도 모른다가 정답이다. 답을 회피하고자 하는 귀차니즘이 아니라 정말 정답이 없다. 실제로 식물 수입 업무를 하면서 해외 업체에 재배법을 문의하면 매뉴얼을 보내주기도 하는데 항상 이런 코멘트를 덧붙이며 보내주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매뉴얼은 네덜란드 000지역 환경에 준하여 작성된 것이니 당신네 현지 기후에 맞춰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함." 어찌 보면 참으로 무책임한 표현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국가마다, 또 한 국가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환경이 다르니 정답을 제공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 정답인 셈이다.
사랑하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하면 더 사랑하게 된다
식물을 집 안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도 단순히 물주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고 창이 어느 방향으로 나있는지에 따라 빛의 양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위의 질문들에 대해서 수학 문제의 정답 같이 알려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막힌 대안이 있다. 한번 열심히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자. 학창시절 호감이 가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반응했는가 잘 떠올려보자.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공통점은 상대방을 열심히 관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사람의 스타일을 유심히 보게 되고, 상황에 따라 어떤 표정으로 반응하는지 보게 된다.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농담을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영화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음악적 취향은 무엇인지,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지 우유가 들어간 종류를 좋아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고 기억하려 애쓰게 된다. 때로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한 번 더 갖기 위해 동선을 파악하기까지도 하지 않나.
식물도 마찬가지이다. 자꾸 들여다보면 우리 집 반려식물의 상태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흙을 자꾸 만져보다 보면 물을 줘야 할 시기인지 더 기다려줘야 하는지 알게 된다. 잎이 동그랗게 말렸는지 아래로 쳐졌는지, 노랗게 변했는지 갈색으로 말라가고 있는지, 잎의 뒷면에 수상한 벌레가 돌아다니지는 않는지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시간을 들여 관찰하게 되면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 방안을 습득하게 되고 자연스레 식물 금손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식물이 나를 기르고 있었다
식물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많은 초록 식물들과 함께 하며 나의 삶은 자연스레 반려식물들에게 맞춰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른 아침 해가 좋다고 하여 자연스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게 된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살짝 열어 환기를 시켜주면서 아침 해를 잔뜩 머금을 수 있도록 해준다. 너무 한쪽면만 해를 향하게 하면 식물이 기울어질 수 있어서 때때로 방향을 돌려주기도 한다.
화분의 흙을 만져본 후 건조하다 싶으면 물을 준다. 물 조리개에 담아 마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듯 물을 담아 주다보면 물이 차오르다 화분 아래로 쭉 빠져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두어 번 정도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나면 이번엔 분무기에 물을 담아 잎에 살포시 뿌려준다. 실내가 건조하다보니 잎에 습도를 유지해주면 더 생기가 있는 모습을 오래 유지할 수 있기에 자주는 아니어도 생각날 때마다 습도를 유지시켜준다.
그렇게 하루를 열어 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밤사이 굳어졌던 몸이 풀려있음을 알게 된다. 공복감을 유지한 만큼 몸도 가볍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였더니 평소 주말 같았으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에 이미 정신이 말짱하다. 커피를 내리고 식빵을 토스트하여 크림치즈와 잼을 발라 한 조각 먹는다. 주말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식물을 기르는 것은 나다. 그런데 오히려 삶이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지는 것 또한 나 자신이다. 참 아이러니 하다.
식물 집사로 살아가는 나는 내가 식물을 기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은 식물이 나를 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식물생활은 나 자신의 습관을 바꾸어 주었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부족한 몸놀림의 시간을 자연스레 채워주는 것은 물론 주말이라고 마냥 늘어지던 생활을 미라클하게 바꿔주었다. 그리고 애정을 쏟으며 보낸 시간을 통해 무엇이든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외적인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들뿐만이 아니라 나의 내면까지도 세세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늘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동안 나 자신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식물생활은 적어도 나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내 옆의 누군가에게, 삶이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당신에게 얼른 식물 생활에 입문할 것을 추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