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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 하루

by 알레

요즘 새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몇 편 있다. 워낙 드라마를 좋아하니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이면 챙겨 보는 편이다. 오늘 본 건 <태풍상사>라는 드라마다. 97년도 IMF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위기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드라마의 분위기상 결국 위기는 극복될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오렌지족으로 등장하는 주연 배우 역시 성장하는 이야기가 그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의 상황을 견뎌본 사람들은 시련을 당한 이들에게 '인생지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고진감래' 등 어려운 시절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딛고 일어나 새 날을 맞이할 것이기에 눈앞의 시련이 고달파도 희망을 놓지 말라는 위로의 말들을 전한다.


인생을 길게 살아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죽을 만큼 큰 위기의 순간을 경험해 본 적도 없기에 그만한 역경을 겪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폭풍우가 몰아치는 순간을 지날 때만큼은 그 어떤 말도 쉽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살면서 취업 실패나 공장 폐업 정도의 위기는 경험해 봤다. 그때 깨달은 건 최소한 위로의 말들이 들릴 정도면 위기가 한 풀 꺾인 다음이라는 것이었다.


크기와 상관없이 삶에는 저마다 '위기'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심지어 5살 배기 아들에게도 주중 아침의 단잠을 깨우는 아빠의 목소리는 위기로 다가올 것 같다. 특별히 목요일, 금요일 아침에 더 힘들어하는데, 아무래도 아이는 주 3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수요일이 지나면 왜 계속 유치원을 가야 하는지 묻는 걸 보니.


생각해 보면 위기를 겪지 않는 인생은 없는 듯하다. 또한 위기 없는 성장도 없었던 것 같다. 더 정확히는 위기를 겪고 난 뒤 쌓이는 내공을 ‘성장’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위기 상황도 처음엔 심장이 쿵쾅 거리고 온몸이 흥분상태가 되지만 두 번 세 번 겪고 나면 평온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마음에도 굳은살이 배긴다. 그리고 또한 그만큼 무뎌지는 법이다.


추석 연휴 내내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더니 어제오늘 파란 하늘이 보여 기분이 좋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삶이 잘 안 풀린다고 느껴질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는데 오랜만에 올려다본 파란 하늘에 오래간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밤 사이 내린 비 때문인지 유난히 맑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여서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가을은 새롭게 다가올 봄을 만나기 전 꼭 지나야 만 하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라고. 태어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매 순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는 언제고 닥칠지 모를 추운 겨울을 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뒤에는 어김없이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품으면서 말이다.


유난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 별 생각이 다 드는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이래저래 글쓰기 좋은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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