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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이별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by 알레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가 떠나는 게 꼭 내 탓 같이 느껴질 때. 물론 내 잘못이 아닌 게 자명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또 그렇지 않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더 안타깝고 한 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결국 몸담았던 곳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함께 있을 때 엄청 편했던 사이도 아니고 친밀한 교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꼭 그의 결심에 내가 불을 지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사실 진즉 계획에 있었다고는 했지만 막상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좀 더 살갑게 대해 줄 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처음은 아니지만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같은 만남을 가졌다. 카페에서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둘 다 크리스천인지라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나의 근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분명 이견은 있었다. 그러나 납득하지 못할 내용은 아니었다. 아니 나도 처음엔 같은 마음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어진 시간에는 생채기만 남았다.


시간이 꽤 지나버린 지금 가끔은 되묻곤 한다. '내가 추구하는 정의는 무엇이었지?' '이 상황에 옳고 그름이 있긴 한 걸까?' 처음엔 너무나 선명했던 것들이 뭉개진 파스텔처럼 흐릿해져 버린 기분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모든 걸 되돌린다는 건 선뜻 받아들이기도 힘든 걸 느끼면서, '어쩌면 이제 나는 애써 명분을 부여잡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대체로 갈등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편이다. 갈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 싫다. 아마도 현재 겪고 있는 일은 인생 최대의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이번만큼 직접적으로 부딪힌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아팠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가끔은 후회가 스며들곤 한다. '내가 좀 더 중재하는 역할을 해볼걸', '차라리 내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의 역할을 해볼걸.'


쓸데없는 생각들이 유독 피어나는 걸 보니 가을이 깊어가긴 하나보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가 보다.


떠나는 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왔다.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사실상 거의 없다는 걸 알기에 손을 움켜쥐며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음을 애써 추스르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내버려 뒀다.


'꽤 희석된 줄 알았는데 슬픔은 여전히 마음 한 편에 남아 있었던 걸까?' 싶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아니다. 그냥 그와의 작별이 생각보다 가슴 아팠던 걸로 하자.' 가을은 참 사람 속을 이래저래 촉촉하게 만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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