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올려다본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주말새 기온은 떨어졌고 부는 바람에 단풍 진 잎들도 후두두 떨어진다. 거리의 낙엽이 쌓일 때면 치우는 사람은 고생스럽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겐 가을이 선사하는 낭만에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계절에 머무를 수 있다는 건 진정한 삶의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삶은 생각보다 인생을 어딘가에 머무르도록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걸음을 멈추고 일상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유난히 파란 하늘은 노랑도 빨강도 더 짙게 만든다. 동네에 빨강은 잘 보이지 않아 무척 아쉽지만 아쉬운 데로 잠시 노랑과 파랑에 머물러 본다. '혹시 이게 바로 노파심인가?' 순간 시답잖은 말장난이 떠오르며 피식 웃고 다시 걸음을 떼었다.
자연의 변화는 매번 경이롭다. 한없이 짙고 푸르던 녹음이 빛을 바라면 이토록 노랗고 빨간빛이 발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같은 초록일 땐 느낄 수 없었던 저마다의 색이 이제야 드러난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청춘일 땐 푸릇푸릇한 에너지를 발하며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 수록 푸르름은 빛을 바라간다. 그것이 씁쓸할 때도 있지만 어쩌면 그제야 비로소 나의 색이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괜스레 인생을 떠올려 본다는 건 나이가 좀 들었다는 소리겠지만, 뭐 이 또한 무르익어감의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에 머물러본다. 덕분에 글감도 얻었으니 일거양득이다.
주말 사이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직접 겪지도 않았지만 그저 들은 이야기 만으로도 사람에 대한 환멸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온 힘을 다해 가을의 색에 머무르게 된다. 조물주가 자연을 창조한 건 어쩌면 어느 순간에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은 다시 평온해졌다.
퇴사 후 꽤 긴 시간 마음에 여유가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출퇴근이 없는 삶이야 여유로운 일상 그 자체였지만 분주함이 떠난 빈자리엔 조급함과 불안감이 무단 점거한 뒤 수년간 시위 중이었다. 퇴사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가 삶의 여유였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여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게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진정한 여유는 마음의 여유라는 걸 깨달았다. 그걸 이제야 깨닫나 싶다가도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지 싶다.
오늘부터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에는 일상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조각 모음 되어있다. 한 페이지에 담긴 짧은 생각들이지만 결국 그들의 공통점은 '일상'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기초이며 출발점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선 결국 일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되새겨 보았다. 오늘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가을 풍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머물렀던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그러나 10분이 남긴 여운은 이후 몇 시간째 이어지는 것처럼, 나를 위한 잠깐의 머무름은 하루의 흐름을 뒤바꿀 만큼 힘이 있음을 느꼈다.
다시 시작된 월요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한 주를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라도 내가 몰두하고 있는 분주함의 반대편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잠깐의 머무름이 어쩌면 오늘 하루 큰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