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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닮아 느긋한 일상,
가을을 담아 평온한 마음

by 알레

바라보다 걸음을 옮기고, 멈춰 서서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 가을은 그 어느 계절보다 내 삶에 중력이 크게 작용하는 계절이다.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지지만 그래서 더 느리게 걷는다. 빠르게 바래가는 계절의 빛깔을 한 움큼이라도 더 마음에 담기 위해선 느려질 수밖에 없다.


나는 맥박이 비교적 천천히 뛰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변화무쌍한 것보다는 분주하지 않은 삶을 선호하는 편이다. AI처럼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 쏟아지는 세상도 흥미를 느끼지만 본연의 나는 느긋하고 차분한 사람이다. 내가 가을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가을'은 단어 그 자체로 느긋함을 자아낸다는 느낌 때문이다.


'느긋한 가을'과 묘하게 잘 어울린다고 느끼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일상'이 그렇다. 일상은 단조롭고, 차분하며, 편안함의 정서를 머금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딱 이 부분이 내가 느끼는 가을의 정서와 닿아있다. 그래서 가을엔 모든 것에서 차분해진다. 여름과 달리 마음도 딱히 들뜨지 않는다. 요 근래처럼 누군가 잔뜩 헤집어 놓아도 이내 가라앉는다. 이것이야 말로 가을의 마법인 것 같다.


집에서 일상을 보낼 때는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는다. 느긋한 가을엔 역시 나긋나긋한 재즈 보컬이 제격이다. 콕 집어 누구라고 떠오르는 뮤지션은 없지만 인트로부터 부드럽고 차분한 음악을 만나면 알아서 플레이가 되도록 놓아둔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 잔, 토스트 한 조각, 그리고 요구르트를 먹으며 시작하는 하루는 지극히 단조로운 그러나 그래서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나의 일상이다.


계절이 안정감과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사계절을 통틀어 내 삶의 리듬이 가장 평온해지는 때가 가을이기에 지금이야말로 무엇인가에 몰입하기 딱 좋은 시기다. 아하! 어쩌면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렇기 미루고 있었는데, 마치 내가 언제 미루고 있었냐는 듯 너무 자연스럽게 시작한 게 신기했다. 이제야 이유가 명확해진다. 가을이어서 그랬다! 앞으로 나의 1년은 가을에 시작하는 걸로 해야겠다. 그럼 뭐 하나라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따라 가을 예찬론자가 된 기분이다. 글도 쓰다 보니 온통 가을에 대한 찬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오늘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 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일상에 대한 책이다 보니 공감하는 내용도 많았고, 짤막하지만 서정적인 글귀가 영감의 샘을 채워주는 듯했다. 그러나 쓰다 보니 일상에 들어찬 가을을 이야기하는 글이 돼버렸다. 잠시 외출하며 바라본 가을의 풍경이 마음속을 알록달록하게 만들었나 보다.


어떤 글을 쓰든 아무렴 어떤가. 지나가는 계절이 곧 일상이니 계절을 이야기하는 게 곧 일상을 주절거리는 것과 매한가지일 테니 가을 예찬이 곧 일상 기록이라고 아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것에 이유를 굳이 굳이 이야기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수능이라고 한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그 시절 수능과는 사뭇 달라진 계절감이 학생들에겐 차라리 잘 된 일이겠거니 생각해 본다. 가을의 포근함이 더해져 모두 차분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고 나오길, 그리고 평온한 마음으로 뒤이은 삶을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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