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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고장난걸까?

by 알레

영 몸이 좋지 않다. '밤사이 감기기운이 찾아온 걸까?' '아니면 비염 약을 먹어서 그런가?' 오전 내내 잠이 깨질 않는다. 겨우 아이 등원을 시키고 돌아와 그대로 다시 누워버렸다.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대충 그냥 그대로 잠들었다. 몸이 으스스한 상태로 잠에서 깼다. 너무 대충 누웠던지 방 안의 냉기가 제대로 여미지 않은 옷 틈 새로 마구 침투 중이었다. 아내가 덮어준 이불은 어느새 옆으로 거둬낸 상태였다. 이대로 계속 잘 수가 없어서 멍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을 건너뛰었음에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여전히 피곤함이 식욕마저 누르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더 늦어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밥을 먹었다. 먹으면 좀 컨디션이 나아지려나 싶어 밀린 드라마를 틀고 아내와 점심을 먹었다. 역시 먹으니 한결 낫다. 몸을 둘러쌓던 냉기가 가시는 게 느껴졌다.


밥을 다 먹었으니 이제 커피를 마실 차례다. 늘 그랬듯 드립 커피 두 잔을 내려 디저트와 함께 먹었다. 이 정도 했으면 잠이 깰 만도 한데, 오늘은 좀 독한 놈이 달라붙었나 보다. 영 잠이 안 깬다. 잠이 깨질 않으니 영 기분도 별로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와야 하는데 기분이 가라앉으니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어쩌면 마음이 고장 난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잠을 잘 자지 못한 게 한 몫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또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요 몇 달 동안 교회를 상대로 진행 중인 일이 마음에 꽤 큰 짐이 되었나 보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인정하게 된다. 마음이 참 무른 사람이란 걸. '너무 곱게 컸나?' '아니면 삶이 너무 순탄했던가?' '그것도 아니면 사실 내가 모르는 사이 마음은 이미 서서히 고장 나고 있었던 걸까?' 이유가 뭐가 되었든 지금은 확실히 좋은 컨디션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삶을 살다 보면 각자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의 문제가 들이닥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엔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요즘 하는 일이라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이를 돌보는 게 전부다.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그 어느 때보다 호사스러운 삶이라 할 수 있는데 마음은 꼭 그렇게 받아들이지도 않는 듯하다. 꽤 오랜 시간 마음에 집중하며 살다 보니 조금은 알겠는 건 마음의 편안함은 몸의 편안함과 별개라는 것이었다. 몸이 편하다고 마음이 편했으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역시나 마음의 바람과 지금의 삶의 괴리가 아무래도 더 커진듯하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야 뭐 살다 보면 어쩌다가 불쑥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상처가 날 때도 있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새살이 돋으며 점점 잊힐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내 마음의 진짜 바람을 들어주지 못한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 그냥 결정을 내릴걸', '그때 내 마음을 존중해 줄걸'하는 후회도 남는다.


지금 와서 다시 돌이키기란 어려운 상황이고 뭐 부딪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부디 마음이 견뎌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나온 청계천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댄다. 역동적인 공간에서 에너지 잔뜩 담아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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