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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by 알레

가끔 친구들과 참으로 시답잖은 소리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완벽해 보이는 연예인에 대해 우스갯소리로 발냄새라도 나지 않겠냐고 말이다. 비하 발언을 하고자 함이 아닌 그냥 장난스러운 수다였다. 그런데 그때의 수다가 문득 떠오른 건 '완벽'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사람이 정말 완벽할 수 있을까? 완벽 중에서도 완벽한 존재를 심지어 갓벽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하는데, 사람이 정말 그럴 수 있는 존재일까?


결론은 '아니요'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린 함께여야 완전해진다. 문제는 불완전함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나의 기준은 언제나 저 꼭대기에 있으니 매일 닿지 못하는 나의 걸음은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부족하기만 하다. 완벽주의. 그것은 살아가는데 대체로 불편함을 건네주는 밑 빠진 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혼신을 다하는 것과 완벽주의는 다르다. 완벽주의는 정말 도달하지 못할 기준을 가진 것이다. 그러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완벽주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참 불편한 건 자신의 존재마저도 잘 용납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 때문이다. 불완전한 나를 그대로 수용해주지 못하니 나는 늘 존재가 아닌 행동으로 나의 가치가 인정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미친 듯이 뭔가를 만들어 내고 보여주기 위해 애쓴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나는 늘 '나'로서 충분하다 여기지 않았다. 나의 '어떤 것(조건)'이 곧 '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삶의 기준은 내가 아닌 남이었고 그때그때 기준의 척도는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지 못할까 봐, 기준에 이르지 못할까 봐 늘 불안했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물론 그 덕분에 누구보다 성실했고, 꾸준했으며 나름의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결코 내가 스스로 원했던 나의 삶이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정 반대다. 이제는 나의 구성하는 조건들이 '나'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다. 존재하는 그 자체로 나는 충분하다. 그래서 편안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편안하게 만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조건을 채우고 싶은 부분도 있다. 일이 그렇다. 때론 글쓰기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그 에너지를 쏟아붓는 한계점은 내가 설정한다. 더 이상 기준이 남이 아닌 나에게 있으니 가능하다.


과거와 지금의 나는 행동이 아닌 존재로 자신을 인정해 준다는 것에서 큰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가장 먼저 나 자신에게 관대해졌다. 보다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게 되었고 바라는 삶을 향해 새로운 점을 찍어 나가는 중이다. 나의 마음을 꺼내는 것에 더 자유로워졌고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미숙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이다. 어렵겠지만, 힘들겠지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을 멈춰보자.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에서 잡티만 보던 시선을 아름다운 조화를 느낄 수 있는 안목으로 바꿔보자. 더뎌도 우리는 바뀔 수 있다.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니까. 이미 우리는 빛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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