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장님만 모르고 계시는 것에 대하여
오피스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강남 한복판에서 만약 지나가는 아무 직장인을 붙잡고 '직장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계신가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실제 조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면 반 이상은 '글쎄요'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까.
뭔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에서 본 한 문장이다. 책에서의 표현은 직장인들의 답이 아닌 어떤 병원을 이용한 환자분들이 담당 의사로부터 받는 느낌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지난 8~9년의 시간을 거쳐온 직장생활을 돌아보니, 아쉽지만 내가 머물렀던 직장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인간 존중', '존중받는다는 느낌.' 생각해보면 직원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몸담고 있는 조직으로부터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지 않을까.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마지막에 근무했던 회사는 업게의 분위기마저 여전히 80-9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마인드를 가진 사장님들이 많았다. 그 덕에 21세기에도 심심치 않게 '야, 너'는 기본이고 '미스김, 미스리', '까라면 까는 거지', '빠져가지고' 등의 표현을 종종 들었다.
인간 존중의 문화가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연세가 지긋이 드셨던 회장님께서는 당신의 심기가 불편하신 날에는 어김없이 사무실에 찾아와 직원들을 향한 불만을 표출하셨다.
직원들이 다 도둑놈이야!
회사가 살아야 봉급도 올라가고 승진도 하는 거지!
말이라는 것이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자칫 오해를 하기 쉽다. 그래서 첨언을 하자면, 회장님께서 강한 불만을 표현하실 때는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될 만한 상황들이 발생한 뒤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놈'은 좀 너무하신 것 같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이 씨가 되어 직원들을 진짜 월급 루팡으로 만드신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장님에 비하면 사장님은 조금 더 젠틀한 편이었다. 적어도 직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스타일이어서 일부 직원들과는 사적인 대화도 잘 나누셨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좋은 리더상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회장님과 같은 기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듣게 된 것이지만 회장님, 사장님 뿐만 아니라 사모님도, 그리고 오너 일가들이 대체로 직원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이 분들에게 직원이란 그저 '회사에 빌붙어 탕진하는 존재들' 정도 어디쯤으로 정의되는 듯싶었다.
이쯤 되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없다. 회사에서 직원들이 바라는 '인간 존중'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사장님만 모르고 계시는 것 같은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직원들은 성장에 대한 욕구와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성장욕구가 있다. 신체적 성장, 경제적 성장, 생각의 성장, 인간관계의 성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나이가 어려질수록 이러한 욕구는 더 분명하게 표출되고 충족 여부에 따라 회사를 떠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장님도 직원들에게 열심히 해서 성장하지 않으면 결국 조직이 무너진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런데 정작 회사에서는 어떤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 있었나. NOTHING!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성장론'과 더불어 등장하는 것은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주의였다.
동의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업무적으로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는 방안이나 또는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 하는 것은 회사의 몫이 아닐까. 직원들도 학교생활을 또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시간을 들인 만큼 커리어의 전문성이 향상되는 경험을 쌓고 싶을 뿐이다.
둘째, 직원들이 바라는 성장은 급여 인상이 전부가 아니다. 매튜 룬 저, <픽사 스토리텔링>에 보면 픽사의 혁신적 조직문화에는 이런 환경이 전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창의력 넘치는 업무 환경을 만들려면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 요소는 물리적 환경의 변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제거, 혁신을 격려하는 문화다.
사무실 이전 계획이 발표되고 난 후 직원들 사이에는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디자인적으로 무엇 하나 통일감이 없었던 중고 사무집기로 꾸며진 기존 사무실과 달리 새 사무실에서는 조금은 더 나아진 환경을 기대했다. 그러면서 사무가구 업체 영업 담당자와 만나 실제 도면에 따른 가구 배치를 이미지로 받아보았다. 모두가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그때 사모님의 등장으로 모든 것의 산통이 깨져버렸다.
이유인즉슨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브랜드 사무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쓸데없이 비용만 발생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다 진행할 거니까 직원들은 관심을 갖지 말라고 선을 그으셨다. 결과는 어땠을까? 기존 사무실보다야 통일감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심지어 모든 지출을 합산해보니 그냥 업체에 맡기는 게 더 저렴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심지어 책상의 사이즈도 평소 사용하던 것보다 작아져 직원들은 일부 서류들을 책꽂이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왔다 갔다 하며 꺼내봐야 하는 불편마저 생겨났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제거, 혁신을 격려하는 문화'는 고사하고 물리적 환경이라도 조금만 나아져도 한편으로는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무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고 매일 직원들을 지켜보는 환경에서 어느 누가 회사를 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매 순간 감시당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셋째, 전략적 회피는 결코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 최근 퇴사한 회사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본 사장님의 특징적인 모습 중의 하나는 매년 초가 되면 1) 윽박지름과 2) 회피하기 신공을 펼치신다는 것이다. 유사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미 눈치챘을 거라 생각한다. 맞다. 연봉협상의 이슈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연말 즈음이 되면 직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성과를 도드라지게 만들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업무가 겹치는 일부 직원들끼리는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한다. KPI도 성과지표도 없는 작은 회사였기에 각자 자신들만의 스타일대로 자료를 만든다. 새해가 되고 한 달, 두 달, 어느새 설이 지난다. 또다시 차일피일. 결국 사장님은 선임자 둘을 불러 매우 짜증스러움을 표출하시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의견을 묻는다.
여태 기다리던 직원들은 이제 각자의 업무로 바쁘다. 모든 기대치를 버리고 각자의 업무로 복귀할 무렵 마치 '옛다'하는 느낌으로 소폭의 연봉 인상 소식을 관리부서를 통해 전달받는다. 좋지만 고마움은 없다. 오히려 나의 성과들이 무시당해버린 기분마저 든다. 코로나 이후로는 그마저도 동결이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결국 하나 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확히 제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에 보았던 책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중소기업이나 소기업 대표님들은 언제나 인재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내부의 인재를 육성해낼 생각은 안 한다. 성급하게 일반화시켜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직장의 경우를 대입해보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었다.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만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해서까지 가성비를 따지는 마인드로는 소위 말하는 일 잘러를 채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연히 얻어걸린다 해도 결국 떠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무엇이 되었든, 어떤 방법이 되었든 결국 '인간 존중 문화'로 다시 귀결된다. 방법이야 각각의 업체가 처해있는 환경과 여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합리적으로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과 회사 간에 괴리감이 커지면 그 직원은 떠나는 것이 답이다. 모든 것을 다 맞춰줄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서 대체로 보이는 것은 소소한 것에서 조차 존중받고 있지 못함을 느낄 때, 그리고 그것이 하나 둘 쌓여가면서 마음도 뜬다는 사실이다. 혹, 여전히 직원들이 급여 인상만을 바란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분들이 계시다면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길 바랄 뿐이다. 조직의 결속력과 충성도를 해치는 것은 의외로 사소하게 보이는 것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라본다.
부디 우리 사장님이 아셨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