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책인데 사놓고 잊어버렸던 책을 들고 나왔다. 최근이라 해도 몇 개월 전이긴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책 수집가답게 책장엔 읽을거리가 넘쳐난다. 더 이상 꽂아놓을 공간도 없으면서 새 책을 구입했던 건 그만큼 삶에 대한 갈증이 컸기 때문이다. 정작 책이 도착하면 한참이 지나서야 펼쳐보는 게 문제 이긴 하지만 덕분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는 웃픈 경험을 하기도 한다.
최근 몇 달간 정말 넋을 놓고 살았던 것 같다. 한번 틀어진 감정의 파장이 이렇게까지 여파가 있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 유리멘털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여실히 알게 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고도 다시 이전의 흐름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왜곡된 흐름을 되돌리기란 마치 평생 잘못된 젓가락질을 고치는 것과 같으며, 이상한 자세로 펜을 쥐는 버릇을 바로 잡는 것과 같았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패턴을 끊어내기 위해선 익숙한 패턴이 이어지도록 만드는 환경에서 벗어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다시 카페로 향했다. 날은 춥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제이미 컨 리마의 <나의 가치>라는 책을 정확히 왜 구입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직관적인 제목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장 오래도록 헤매고 있는 부분이 떡하니 책 제목으로 소개가 되어 끌렸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오늘 새로이 알게 된 건 출판사 이름이 '알레'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읽고 있던 책들도 있지만 새 책을 들고 나온 이유는 다시 이 지점부터 점검해야만 할 것 같다는 본능적인 이끌림 때문이었다. 근래 흐트러진 감정 상태도 결국 나에 대한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생의 숙제가 매일 옥죌 때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시간을 들여보지만 근원적인 무언가가 해결되지 않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 책의 서문을 읽는 동안 그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의 가치를 올바르게 정의하지 않는 한 무엇을 해도 결국 공허함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문을 읽는 동안 저자가 마치 내 모든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었다면 두 손을 부여잡고 지금 나의 멘토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속 깊이 와닿았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문장을 발견했다.
당신은 가능하다고 믿는 만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수준까지 추락하게 된다.
이 문장은 지금껏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나는 줄곧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믿는 만큼 이룰 수 있다고 여기며 살았다. 물론 이 생각도 틀렸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완전히 뒤집힌 나의 생각은 출발점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금껏 나는 누구나 '0'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저마다 믿는 만큼 올라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나에게 출발점은 '0'이 아닌 '100'이라고, 즉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시작하여 오히려 스스로 믿는 수준까지 추락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로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나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솔직히 그동안 라이프 코칭을 받으면서도 살짝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의미를 완전히 다 소화하지는 못하고 살았다. 그래서 막연했고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오늘에서야 그 모자란 부분이 완전히 채워지는 걸 느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존재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나를 믿어주는 건 본연의 내가 서있던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가장 자신감이 넘치고 자존감이 충만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자기 선언이다.
아무리 삶을 열심히 살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계속 올라야 한다면 삶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애초에 시작이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완전한 지점이라면, 굳이 오르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때부턴 무한한 가능성과 꿈을 실현하는 삶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다.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존재의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 목적은 씨앗처럼 각 사람의 가슴속에 심겨 있어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세상엔 그것을 발견하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도 있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살아보니 어떤 삶도 쉽지는 않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2025년 한 해를 정리하기에 딱 좋은 12월이다. 이미 한 주가 흘렀지만, 아직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이 있는 삶을 꿈꾸면서 정작 목적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은 할애하지 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현실의 불안감이 집중력을 흩트리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며 다음 해를 준비해 볼 필요를 느꼈다.
때마침 시기적절한 책을 만난 것 같다. 과연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